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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씨 Nov 18. 2024

회사가 폐업했다 (4)

그것도 정규직 전환 2주 만에

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20살 이후로 생활비, 학비, 핸드폰 요금, 보험료까지 자급자족 했던 터라 일을 쉬어본 적 없었다.

다음 달 수입이 없는 건 비상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당장 관리비를 포함하여 달달이 100만 원에 가까운 월세를 내며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우선 한 달의 여유가 있었다.


나는 부산에서보다 더 절실하게 구직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면 컴퓨터를 켜고

3개월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구직공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고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자소서를 쓰기 시작했다.


지난주에는 이 자리에 앉아서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회의를 하고 업무를 봤었는데, 

똑같은 자리에서

자소서만 타닥타닥 쓰는 내 모습이,

그리고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참 이질감이 들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팀원들을 걱정했다.


나야 3개월 차 신입사원이지만, 

20년 차가 넘는 팀장님의 생계는?

겨우 1년 차가 된 디자이너님의 커리어는?

이 회사에 뼈를 묻고 대표가 될 거라던 파트장님의 꿈은?


나보다 다들 더 안되었다고 생각했다.

나야 젊고 신입으로 직장 구하면 된다지만 그들은 어떡하나... 진심으로 걱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두 번째 뒤통수를 맞았다.


H언니에 의하면 

당시 우리 회사의 가장 큰 경쟁사였던 규모가 더 큰 N회사에서 

거래처를 모두 들고 오는 조건으로 팀원들을 영입하겠다는 제안이 왔다고 했다.


팀장님은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고, 

우리 회사에 있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더 좋은 조건으로 N회사로 이직하게 된 셈이었다.


대신, 이 조건은 근속연수 1년 이상인 직원들에 한해서만 적용된다고 했다.

그랬기에 이 제안은 신입사원인 우리들에겐 비밀이었다고 했다.


H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아, 나의 알량한 걱정들이 얼마나 쓸모없고 무의미했는지,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얼마나 가여웠을지,

누구든 믿어선 안되었는데,

내가 이토록 순진무구한 사회초년생이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H언니가 이 비밀이야기를 알게 된 경위도 참 웃기고 슬픈데,

그 작았던 규모의 회사 내에도 파벌이라는 존재했고

이직 무리에 끼지 못했던 한 과장급 팀원이 이 사실을 H언니에게 모조리 말해버린 것이었다.




폐업 소식을 듣고 난 후에 모종의 동질감을 느꼈던 파트 사람들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N회사의 제안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입사한 지 3개월 하고도 2주 된 신입사원을 굳이 돈을 들여가며 N회사에서는 받아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회식자리에서 다 같이 한탄했던 것들도 모두 가식이었구나.

어쩐지 다들 직장을 잃은 것치곤 여유롭더니 역시 거짓말하고 있었구나.

나만 또 이곳에서 절실했구나. 


한 달 전까지 같은 배를 타고 항해했던 선원들이었는데 나만 무리에서 튕겨져 바다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너는 쓸모가 없고 시장에서 가치가 없다는 것을 내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배신감, 분노, 위선에 대한 경멸 등의 감정들이 흘러넘쳤다.


숨길 수가 없었다. 


파트원들과 대화를 일절 하지 않았다.

남은 근무 일수 동안

9시 딱 맞추어 출근했으며 

6시보다 1분도 늦게 퇴근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투명인간처럼 취업준비만 하다가 아무 말 없이 집으로 갔다




퇴사 일주일 전,

파트장님이 대화를 신청했다.


혹시 무슨 일 있냐는 그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감정을 폭포수 마냥 쏟아냈다.

쏟아 내었다기 보단 버튼을 눌린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감정을 해소할 곳이 필요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겠다.

죄송하다.

숨겨서 미안하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

등의 말들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변명을 해주었다.


이 변명들은 내 상황을 완화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상처받은 내 자아를 위로하고 한 줌 남은 자존심을 지키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내가 그때 그들의 상황에 놓여있더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실은 누구에게나 냉정하고 절박한 상황에서 인간은 모두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회사 폐업을 공식적으로 알게 된 3주 차.


누구보다 치열하게 3주를 보냈던 나는

당시 회사와 전혀 관련 없는 업종, 전혀 관련 없는 업무의 포지션의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말해두고 

을지로가 아닌 다른 회사로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은

더 이상 춥지 않았다.


긴장감에 답변을 망쳤다고 생각했던 

1차 면접에 합격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덤덤하게 공식적인 퇴사절차를 마쳤다.


퇴사한 지 7일째 되는 날 치른 2차 면접에서 

나는 합격을 확신했다.




퇴사한 지 13일째가 되는 날,


나는 이직했다.


HR업계에서 착실히 커리어를 쌓아가겠다는 3개월 전 다짐은 

이미 연기처럼 사라진 지 오래였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몸을 데우고 재정비했다. 


상경 후 6개월, 

한 번의 퇴사와 두 번의 입사를 경험하며 

나는 제대로 된 서울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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