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신입사원이라면 튀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 첫 출근 날의 아침이 밝았다.
폭풍우 같았던 지난 4개월이 전생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일은 모두 묻어두고 그저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엔 결코 실패하지 않으리라.
직전의 실패가 내 불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으나,
어쨌거나 첫 번째 단추를 잘 못 꿰었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운도 실력이다', '환경도 결국엔 내가 자초한 것이다'
따위의 문장들을 계속 되뇌면서 다시금 붕 뜬 마음에 찬 물을 끼얹으며 차분함을 찾으려 했다.
옷매무새를 계속 점검하고,
화장도 어느 때보다 공들여하고,
잘하자. 잘해보자. 를 10번 정도 마음속으로 외친 후
더 이상 한강이 보이는 2호선이 아닌
끝날 것 같지 않은 지하 깊숙이 위치한 5호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출근하게 된 회사는 여행업계의 대기업이었다.
여행업.
사실 여행업은 나에게 생소함 보단 동경에 가까운 어떤 것이었다.
학부시절,
도피하듯 떠난 독일 교환학생 6개월의 기간 동안
나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막연히 해외취업에 대한 로망을 키웠던 바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느낀 자유로움은 스무 살 이후 끊임없이 돈을 벌었던 나에게 처음으로 모든 형태의 '일'에서 벗어난 첫 경험이 교환학생 당시였기에 나에게 극대화되어 와닿았던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해외에서 사는 그 6개월의 경험이 좋았다.
해방감.
그래, 해방감이었다.
사랑의 모양을 하고선 그 무엇보다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엄마의 기대,
내가 사랑하는 것 들은 돈벌이와는 지겹게도 멀어있다는 현실,
세 개의 과외 아르바이트와 영화관 마감 아르바이트 후 9시 수업을 겨우 겨우 출석하며 쏟았던 코피.
이런 현실에 대한 해방.
독일에서의 6개월간의 홀로서기는
나로 하여금 해외 생활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고,
언어를 전공하고 있으며 외국인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던 나는
자연스럽게 외항사 승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안타깝게도,
이 작은 희망의 불씨는 활활 타오르기도 전에 코로나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꺼지고 말았다.
그 후로 여행업계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실은 외면했다. 다시 하고 싶어질까 봐)
첫 취업의 실패 이후 갑자기 내 인생에 다시 등장했다.
새 회사는 여행업계 중에서도 B2B특화 사업이 주력 사업이었고,
나의 포지션은 유럽 상품을 고객사에 파는 중개업이었다.
이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팀장님은 스무 명이 넘는 지원자 중 나를 팀원으로 최종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두 가지만 말씀하셨다.
첫 번째는 유럽 배낭여행을 많이 한 내 경험이 업무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고,
두 번째는 질문 답변 시에 면접자 중 누구보다 절실해 보였다고 했다.
1차 면접 때의 면접공간이 꽤 넓었고 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혹시나 면접관들이 내 목소리를 잘 못 들을까 봐 상체를 앞으로 숙여가며 대답했는데
이런 내 태도가 좋아 보였다나.
석 달만에 폐업을 통보받은 내 절박한 상황이 수면 위로 여실히 드러난 것 같아
머쓱하기도 부끄럽기도 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고난과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아 당시에는 고맙기도 했다.
처음 마주한 사무실의 풍경은 생경하면서도 친숙했다.
다소 스타트업 같았던(스타트업은 아니었지만 규모가 작아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직전 회사와는 정반대로, 언젠가 보다 말았던 드라마 <미생>에 등장했던 사무실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책상.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
대화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는 직원들의 공허한 눈.
이런 첫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별로 싫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봤던 직장인의 모습,
내 머릿속에 그려진 소위 '진짜' 직장인의 모습과 가까웠고,
안정적이지 못했던 지난 4개월의 경험을 가진 나에겐 그 삭막한 풍경이 그 무엇보다 아늑해 보였다.
첫 출근날 오전에는 인사팀 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각자 팀으로 배정되어 팀 교육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출근 후 회의실에 앉아 인사팀 과장님께
회사생활 관련 기본 사항, 연봉과 복리후생, 승진 및 평가 등을 오전 내내 교육받았다.
말투는 친절했으나 눈빛은 누구보다 건조한 인사팀 과장님의 교육을 받으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꼈다.
인사팀 교육이 끝난 후 담당 팀으로 배정이 되었고,
처음 보는 수십 개의 얼굴들에게 나를 잘 부탁드린다며 정신없이 인사했다.
팀원분들과 함께 무슨 맛이었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밥을 억지로 삼키고 와서는
팀별 교육이 시작되었다.
나의 사수는 팀장님 다음으로 직급이 높은 40대 H차장님이었다.
H차장님과의 1:1 교육을 위해 소화가 되지 않는 속을 애써 외면하며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으니 말을 놔도 되겠지?"
신입사원이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아니 어쩌면 거절하면 안 되는
정답이 하나뿐인 이 질문에
당황했지만 그런 기색을 숨겼다.
"네 그럼요"라고 대답하면서 나는 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반강제적인 말 놓음 이후,
H차장님은 몇 가지 주의사항에 대해 알려주겠다고 했다.
아, 업무에 필요한 중요한 몇 가지 자질이 있나 보다 생각했지만,
이러한 내 예측은 신입사원의 긴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보기 좋게 빗나갔다.
H차장님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튀지 말라"였다.
요지는 이러했다.
우리 회사는 대기업이라 보수적인 사내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특히 '여초회사'이므로 소문이 매우 빠르다는 것.
모두가 너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너를 주시할 것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하며 신경 쓰도록 하고
되도록이면 '튀지 말라'는 것.
의아했다.
내가 25년간 경험한 어쩌면 짧은 인생에서 '튀는 것'은 부정적인 정의에만 속하는 개념은 아니었다.
'튀는 사람'은 대개 창의적이거나, 공부나 일을 특출 나게 잘하거나, 어떤 한 특정 부분이 비상한 것에 해당하는 것 아니었던가?
혼란을 느끼면서도 나는 또 어김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대답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사회생활,
그리고 첫 번째 대기업 신입사원 생활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