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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Mar 08. 2021

오해해서 미안해


나는 아흐마드의 집에서 일정량의 노동을 제공하는 대신 몸을 누일 수 있는 흙집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미드(M’hamid)에 있는 동안만큼은 숙박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 여기에다 아흐마드는 하루 50디르함(한화 약 6,500원)이라는 저렴한 금액에 세 끼니를 제공해 주었다. 식사 제공에 대한 답례로 아흐마드에게 줄 현금을 뽑아야 했으나, 작은 시골 마을인 마미드에는 ATM기가 없었기에 이웃 마을인 타구니트(Tagounite)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흐마드의 소박한 부엌



타구니트로 가기 위해 기사를 제외한 현지인 다섯 명과 함께 택시에 탔다. 이곳 사람들은 한 대의 택시에 기본 여섯 좌석이 있는 것으로 쳤기에 앞칸에 두 사람, 뒤 칸에 네 사람이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한 사람당 내야 하는 요금은 10디르함(한화 약 1,300원)이었으나, 만일 여섯 개의 자리가 다 차지 않을 시에는 택시에 탄 인원이 돈을 모아 60디르함을 내야 했다. 즉 승차 인원에 따라 내야 하는 금액이 다르며, 홀로 승차할 경우 가격이 6배(60디르함)로 뛰는 요금 체계였다.


마미드에서는 타구니트로 가려는 사람들이 많아 5명의 동승자를 손쉽게 구할 수 있었다. 타구니트의 ATM기에 들러 현금을 찾은 나는 다시 택시에 올랐지만, 기사는 좀처럼  마미드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 이외에도 다섯 명이 더 탈 수 있는 자리가 남은 만큼 시내 한복판에서 다른 고객들을 기다리려는 성싶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동승자가 나타나지 않아 기사와 협상을 진행했고, 결국 50디르함에 다시 마미드로 돌아가기로 했다. 


돈을 내고서 막 출발하려는 순간 돌연 세 명의 모로코인이 승차했다. 승차 인원이 한 명에서 네 명으로 는 만큼, 본래 요금 체계에 따라 네 명이 60디르함을 분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기사는 내게서 받아 갔던 50디르함을 돌려주려 하지 않았고, 모로코인 손님들에게는 10디르함씩만 받았다. 불합리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마미드에 도착하자마자 기사에게 항의를 표하며 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세 명이 더 탔으니, 제게서 더 받아 가신 돈을 돌려주셔야죠.”





프랑스어로 원활히 소통할 수 없었던 아저씨는 근처 상점에 들어가더니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직원을 찾아 나와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결국 20디르함을 돌려받긴 했지만, 여전히 계산은 합당치 않았다.


“네 명이 60디르함을 내는 건데 저 혼자 30디르함을 내는 건 옳지 않죠.”

“처음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처음에는 50디르함을 내야 할 상황이었는데, 지금은 30디르함만 내면 되잖아요. 처음보다 더 낫지 않나요?”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죠! 저는 왜 외국인인 제가 다른 모로코인 승객들보다 더 많은 금액을 내야 하는지를 따지는 거예요.”


한참 동안 설전을 벌이다 보니 금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택시기사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는 가게 직원과도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처음 상황보다 훨씬 나은 게 아니냐며 자꾸만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는 한편, 어둠이 짙게 깔려오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20디르함만 돌려받고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눈앞에 보였던 풍경. 사막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할지 막막해졌다.



아흐마드네 집에 가기 위해서는 마을에서 사막 쪽으로 1km 정도 가로질러 걸어야 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가는 길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마치 사막 전체에 검은 장막이 덮여 있는 것과 같았다. 날이 밝아도 매번 길을 잃어버리는 형편에 섣불리 발을 내디뎠다가는 다시 나오는 길도 찾기 어렵게 될 것이며, 검은 장막에 발을 매이면 서늘한 사막 속에서 무방비상태로 밤을 나야 했다. 평평한 모래벌판과 길의 경계는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미묘했고, 길 주변에 표지 삼아 쌓아둔 돌무더기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일단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긴 하였으나, 도저히 더 걸어갈 자신이 없어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침착하게 머리를 굴려 보니 마을 사람들이 아흐마드네 집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 한구석에 서 있던 탁탁(오토바이와 마차를 결합한 형태의 간이 택시) 기사에게 다가갔다. 어두운 피부색에 짧은 곱슬머리를 지닌, 앳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혹시 아흐마드네 집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네, 알아요. 태워다 드려요?”



정처 없이 밤거리를 헤매던 중, 한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나를 마차 칸에 태우더니 망설임 없이 오토바이에 올랐다.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탁탁은 쉴 새 없이 덜컹거리며 둔탁한 소리를 울렸다.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달리던 탁탁이 멈추고, 기사가 내렸다.


“지금부터는 탁탁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 내려서 걸어가야 해요. 따라오세요.”


사방이 온통 어두워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는 와중, 혹시나 기사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진 않을지 두려워졌다. 일단 어둠으로 들어가면 그 누구도 내가 무슨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없게 될 것이나, 이제 와서 마을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마을은 이미 저만치 멀어져 망망대해 위 어렴풋이 보이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그나마 등불이 켜져 있는 탁탁 근처에 버티고 서서 왜 걸어가야 하는지, 왜 탁탁이 갈 수 없는 곳인지 따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어둠을 등진 채 언제까지고 버틸 수는 없었기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불안해하는 내 옆에서 묵묵히 걷던 젊은 기사는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저 멀리 환하게 밝혀진 불빛을 가리켰다. 아흐마드의 집이었다. 우리가 내는 인기척 소리를 들은 아흐마드와 야니스, 마테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뛰쳐나와서는, 내가 도착한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지어 보였다. 아흐마드는 밤이 깊도록 도착하지 않는 날 찾기 위해 마을로 나가보려던 참이었으며, 야니스와 마테오 역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잔뜩 마음을 졸이고 있던 중이었다.


“네가 용감하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걱정을 무척 많이 했어.”


나는 쾌활한 표정을 지으며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흐마드가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어떤 방식으로 아흐마드의 집에 돌아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이방의 낯선 거리를 쏘다니는데도, 걱정은커녕 초연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곱씹어 보았다. 물론 낯선 청년과 함께 칠흑 속을 걸어갈 때는 긴장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착함을 잃지는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한 채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매 순간 초연해지는 데 이른 것으로 여겨졌다. 한편, 좋은 의도를 가지고 기꺼이 안내를 자처한 청년을 의심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아흐마드의 집



머지않아 청년에 대한 미안함을 떨쳐 낼 기회가 찾아왔다. 친구들과 함께 택시 한 대를 잡아타고 이웃 마을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다시 므하미드로 돌아온 순간 젊은 기사가 거리에 서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뛰어가 인사를 건네는 한편, 곧 떠나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와 나누는 마지막 인사가 될 터였다. 곧 헤어지게 되더라도 그와 친구가 되기로 함으로써 얼마 전 그를 의심했던 데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기로 했다. 이제 그는 이름 모를 탁탁 기사가 아니라, 아브도라는 이름을 가진 순박한 청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작별 인사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사막에 있는 아흐마드의 집 쪽으로 걸어가는데, 뒤쪽에서 탁탁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브도는 돌연 내 앞에 탁탁을 세우더니, “타!” 하며 오토바이 뒤에 달린 마차 칸을 가리켰다. 어리둥절한 기색을 보이는 내게 아브도는 “선물”이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돈을 받지 않고 탁탁을 태워주겠다고 했다. 아흐마드의 집에 도착하여 다시 한번 작별의 인사를 건네려는데, 아브도가 수줍은 표정으로 갈색빛이 도는 종이봉투를 건넸다. 모로코 사람들이 자주 먹는 꿀 바른 과자가 잔뜩 들어있었다.



아브도가 준 선물



소라 모양의 과자는 약과처럼 끈끈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났다. 아흐마드는 아브도가 건넨 종이봉투를 들여다보더니 “네게 이걸 선물로 줬다고? 너랑 결혼하고 싶다는 말이네” 하며 놀리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아브도는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 오기 시작했다. 겨우 뜻을 알아볼 수 있는 프랑스어로 걸핏하면 대화를 걸었고, 하트나 꽃다발이 그려진 사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보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음성 메시지를 보내 사랑을 고백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작별 인사를 건넸던 나로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으며, 마미드라는 작은 마을에 다시 방문할 기약도 없었기에 애써 외면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 그는 그 이후 오랫동안,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은인으로 남았다.



"선물"이라며 무료로 탁탁을 태워준 아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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