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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Mar 21. 2021

새로운 친구의 등장


새 친구가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는 아흐마드가 새로운 여행자를 데리러 간 동안 기대에 부풀어 어떤 국적의 친구일지를 짐작했다. 고심하여 추측하는 친구들 앞에서 대수롭지 않게 “프랑스인이 아닐까?” 하고 내뱉었는데, 놀랍게도 그 예상이 적중했다. 아흐마드의 오토바이 뒷좌석에서 내려 어색하게 인사를 건넨 사나이는, 듬성듬성 두피가 훤히 비칠 정도로 머리를 짧게 깎은 프랑스인이었다. 이름은 라파엘, 직업은 프로 사진작가. 민소매 옷을 헐렁하게 걸친 채 우리 쪽으로 다가온 그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것에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모양인지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머물렀던 보르도(Bordeaux), 심지어 내가 일했던 레스토랑 바로 옆에 사는 이였으며, 동남아 및 이란을 두루 여행한 후 막 모로코에 입국한 참이었다. 나이는 마테오와 같은 28세였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온 프로 사진작가, 라파엘



얼마 지나지 않아 스페인에서 온 두 여인, 라우라신티야도 도착했다. 카탈루냐 지방에서 온 라우라와는 달리 신티야의 모국은 페루이지만, 스페인 남자를 배우자로 삼은 이래 스페인에서 살고 있었다. 아흐마드네에 머무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아흐마드의 사촌인 사이드의 집에 짐을 풀었으나, 아흐마드와 사이드가 워낙 가깝게 지내는 데다 집 간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아 종종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라우라, 신티야, 마테오, 야니스, 나



라파엘이 도착한 이래 일손이 하나 더 늘었지만, 무더운 날씨 탓인지 일은 여전히 고되었다. 늘 해오던 대로 진흙과 모래를 잘 섞어 주변의 땅바닥을 포장했다. 안경이 작업에 방해되어 렌즈를 끼려고 했으나, 끊임없이 불어오는 더운 바람에 모래가 섞여 있을 뿐 아니라 흙집 곳곳에도 모래가 들어차 있어 손으로 렌즈를 만질 수가 없었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에도 소금기가 진하게 묻어 나와 손을 깨끗이 헹궈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깨끗한 방식으로 렌즈를 끼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노라면,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가 지내는 흙집을 찾아오곤 했다. 렌즈를 끼느라 오래도록 되돌아오지 않다 보니 혹시 내 몸 상태에 문제가 있진 않은지 확인하러 온 것이다.



작업 풍경



작업은 오전에만 진행하였으나, 한증막처럼 더운 김을 품어내는 흙집 속에서는 도저히 휴식을 취하기 어려웠으므로 오후에는 늘 마을로 나왔다. 물론 마을도 덥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모래 한복판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마을에 유일하게 존재하다시피 하는 호텔의 수영장에서 한참을 놀다가 어둑어둑해질 때쯤에야 다시 사막에 있는 아흐마드의 집으로 돌아왔다. 야니스와 마테오의 반복적인 강습으로 기초 수영을 익히게 된 나는 물을 잔뜩 먹으며 밝은 표정으로 헤엄쳤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을에 있는 유일한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한 때



불빛 하나 없는 길을 함께 걸어오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넌 진짜 용감한 친구야.”


더 나아가 야니스는 ‘용감함’의 정의를 내렸다.


“수, ‘용감하다’는 게 무슨 의미인 줄 알아?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넌 용감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틀린 말이었다. 사실  겁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아는  없는 낯선 땅을 홀로 여행하기 위해선 의식적으로라도  용기를 품어야 했으며, 두려움을 느껴도 그저 그뿐이려니 생각해야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편이 맞겠다. 모든  익숙한 모국을 떠나 물결처럼 휩쓸리며 이곳저곳을 방랑하기 위해선, 두려움에 정면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상황을 재보기라도 할라치면   불안함에 휩쓸리게  것이란  알았기에, 별다른 생각 없이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나아가 즐기려고 노력해볼 따름이었다. 용감하다는  결국, 두려움을 느낄 만한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러한 감정을 극복하려는 정신적 노력을 승리로 이끄는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황량한 사막에서 만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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