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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Feb 18. 2021

끝없는 모래 위에서


사막 쪽으로 향하는 친구들



친구들과 함께 집 뒤에 있는 사막의 모래 언덕들을 산책하러 나왔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모래가 섞여 있어 눈을 뜨는 게 쉽지 않았지만, 정신이 몽롱하도록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석양이 질 때까지 친구들과 모래 언덕 위를 걸었다. 진한 황토색의 모래는 해변의 백사장처럼 부드럽고 따뜻해 포근한 기분을 선사했으며, 끈적끈적 달라붙는 게 아니라 툭툭 털어내면 말끔히 사라지는 질감이라 몸이 더러워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이빙하듯 펄쩍 뛰어올라 언덕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려도 지면이 푹신한 덕에 아프지 않았다. 마치 모래로 이루어진 수영장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풍경에 셔터를 눌러댔지만, 사진 안에 담긴 네모난 사막은 눈으로 직접 맞닥뜨린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어떤 사진도 눈에 보이는 것만 못했다.





석양이 질 때쯤 우리 셋은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마테오는 나와 야니스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명상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가부좌를 틀고 발을 안쪽으로 깊숙이 넣어. 허리는 꼿꼿이 세우고 머리는 정면을 봐야 해. 마치 긴 창이 정수리와 몸통을 관통해 꽂혀있는 것처럼 허리를 똑바로 펴야 하지. 그 상태로 명상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머릿속을 비워나가 봐.”



모래 언덕 위에 앉아 있는 마테오



모래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사막의 언덕에서 10분간 조용히 명상하고선, 친구들과 함께 각자가 알고 있는 명상법을 나누었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잡생각들을 지우기 위해선 다양한 상상들이 동원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나는 시냇물이 졸졸 흘러가는 모습을 그리는 와중 잡생각이 나타나면 자루에 넣어 낭떠러지로 던지는 상상을 했다. 마테오는 주로 풀포기를 하나씩 뽑는 상상을 하며 잡생각을 없앤다고 했다.





야니스는 몸의 신경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정신을 통일시키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내 다리가 점점 무거워져 더는 움직일 수 없다’는 상상을 하다가 서서히 가벼워져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명상을 마무리하면 세상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무력의 상태에서 다시 능력을 얻어 자유로워지는 것을 상상함으로써 주어진 삶을 음미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였다. 명상을 끝낸 뒤 마테오가 말했다.


“명상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면 내가 아니라 ‘나보다 더 큰 존재’가 내 안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친구들은 무엇보다 명상이 일상적인 행위라는 데 동의했다. 명상한다는 건 방을 청소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을 청소하는 중요한 작업이며, 각자 자신에게 알맞은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각 사람이 의지를 지닌 채 그 자신이 몰두 가능한 방법을 찾아낸다면, 명상의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아질 수 있다.


사막의 일몰을 바라보며 명상을 마친 이후에도 모래 위에 앉아 대화를 이어 가다 보니 날이 캄캄해져 왔고, 우리는 왔던 길을 더듬어 다시 아흐마드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친분을 쌓은 사막 개들이 컹컹대며 뛰쳐나왔다. 흙집으로 돌아와도 딱히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기에, 저녁을 간단히 차려 먹은 뒤 잠들기 전까지 또 다른 대화에 빠져들었다.



우리를 마중나온 사막 개들과 함께 (왼쪽: 나, 오른쪽: 야니스)
야니스, 마테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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