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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니나 Feb 17. 2021

슬기로운 사막생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일해야 했지만 우리 셋은 다정하게 사진을 찍기도 하며 쾌활하게 일했다. 야니스는 웃통까지 벗은 채 진흙을 섞는 일에 몰두했으며, 마테오는 모래더미 속에서 발견한 두건 조각을 이마에 동여매고선 아흐마드가 키우는 개들과 바닥을 뒹굴었다. 아흐마드는 총 다섯 마리의 개를 키웠는데, 그중에는 사하라 사막에서 떠돌던 야생 개들도 있었다. 잘 길들인 덕분인지 야생 개 치고는 순했지만 원하는 장난이 너무 지나쳤다. 우리가 미처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몸통을 흔들며 바짓가랑이를 물어뜯을 뿐만 아니라 자꾸만 중요 부위를 가격하였기 때문에 몸이 지쳐있을 땐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악명 높은 사하라의 기후 속에서도 쾌활하게 작업했던 우리
마테오와 야니스 / 곤히 잠든 사막 개



아직 모로코의 뜨거운 기후에 익숙해지지 않아선지 타는 듯한 흙집 속에 앉아있는 게 무척 괴로웠다. 흙집 속에 앉아 더위에 쩔쩔매고 있는데, 마테오가 찾아와 수영장에 가자고 제안했다. 한참을 걸어 마을로 나가면 호텔에 딸린 수영장에 30디르함(한화 약 4,000원)을 내고 입장이 가능하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시원한 물에 들어가니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 수영에 능숙하지 못한 탓에 물속에서 통통 뛰어다니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마테오와 야니스는 수영 강사를 자처했다. 친구들이 번갈아 가며 열성적으로 가르쳐 준 덕분인지, 처음에는 그리 진전이 없어 보이던 것도 나중에는 미숙하게나마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



“얘들아, 사실 이전에 나한테 수영 가르쳐 준다던 친구들 다 실패했어.”

“그래? 그럼 ‘내가’ 꼭 네게 수영을 가르쳐 주겠어.”

“‘수아 수영 가르치기 프로젝트’라는 TV 시리즈를 만들어도 되겠는데? 널 가르치는 게 너무 흥미진진해.”



마미드(M'hamid)에 있는 작은 수영장



야니스와 마테오는 자세며 호흡,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방법들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게   얼마나 다행인지! 아무리 덥고 고되어도 친구들과 어울려 낄낄대다 보면 어느새 우리만의 세계로 빠져들어 피로를 잊었다.  친구는 평소 사소한 것에도 감탄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나의 습성을 무척 좋아하여 자주 따라 하곤 했다.  역시 이에 뒤지지 않고 야니스가 ‘헤이하며 사막의 개들을 부르거나 ‘, , 하며 타이르는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따라 했다.


 붙어 다녔던 우리는, 무엇을 함께 하든지 간에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갑작스레 나타난 벌레  마리를 발견하고 피해 다니는 것마저 우리에겐 하나의 즐거운 놀이였다. 휑한 모래 말고는 보이는  없는 사막 한복판에서 어린아이처럼 웃고 떠들고 있으니, 마치  세상에 우리 셋만 존재하는 듯했다.



사막을 벗어나 한참을 걸으면 마을이 보였다.



일하지 않는 주말에는 종일 두 친구와 놀았다. 어느 날은 아침을 먹고선 바로 사막 밖으로 나와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나는 ‘베르베르식 오믈렛’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음식을 주문했는데, 뜨거운 판에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스크램블이 올려져 나왔다. 25디르함(한화 약 3,300원)으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여유를 즐기면서 두 친구가 정치적 이슈를 놓고 뜨거운 토론을 벌이는 걸 듣거나, 가벼운 잡담을 나누었다. 야니스와 마테오 두 친구는 언제 어디서든 본인의 의견을 내놓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을 뿐 아니라, 유럽 연합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적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다. 각각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온 그들에 비해 나는 유럽 연합과 관련된 이슈들을 잘 알지 못해 토론에 진지하게 참여할 순 없었지만, 대화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베르베르식 오믈렛(Omelette Berber)을 주문했다.



물론 그들이 늘 진지한 토론에만 몰두한 건 아니며, 대부분은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각국에서 동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은 한국에서 개가 짖는 소리를 ‘멍멍’으로 표현하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했다.



“‘멍멍’이라니, 전혀 개가 내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아!”



원숭이를 흉내 내는 소리인 ‘끼끼’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멍멍’과 ‘끼끼’를 두고 한참이나 웃었다. 한편, 아흐마드의 집에 있는 수동식 변기를 어떻게 사용하는 줄 몰라 며칠 동안 큰일 보는 걸 미루던 나는,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슬쩍 물었다.



“너희 여기 와서 큰일 본 적 있어?”



배를 잡고 웃는 친구들 앞에서 수줍게 웃으니 친구들이 각자의 ‘큰일’ 경험담을 공유하기 시작했는데, 그 사소한 이야기들이 어찌나 재밌었는지 온 저녁이 웃음으로 채워졌다. 프랑스어로 대변을 뜻하는 ‘까까(caca)’가 한국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과자를 줄 때 쓰는 표현이라는 걸 알려주자 다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 뒤부터 과자를 먹을 때마다 꼭 ‘까까’가 언급되곤 했다.



우리가 자주 가던 카페의 전경



쾌적한 야외 테이블에서 모처럼 더위를 식히던 와중, 가방에서 엽서를 꺼냈다.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것으로, 엽서 위에는 한국의 명소들이 아름다운 색채로 그려져 있었다. 친구들에게 각자 마음에 드는 걸 한 장씩 고르라고 한 뒤 즉석에서 편지를 써 건넸다. 야니스와 마테오는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자기 카드가 더 예쁘다며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든든한 친구들을 만난 덕에 안전하고 즐겁게 사막에 머물 수 있게 되어 늘 고마웠는데 작은 엽서로나마 고마움을 표할 수 있어 기뻤다.



우리가 즐겨 모였던 야외 탁자



하루는 갑작스레 울적해지는 바람에 친구들과 떨어져 시간을 보냈으나, 기분은 더욱 가라앉기만 할 뿐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친구들과 속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야니스와 마테오 곁에 앉았다.



“있지, 난 혼자 있을 때면 가끔 우울해지곤 해. 프랑스에 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자살을 시도하려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적이 있는데, 혼자 있으면 자꾸 그때가 생각나.”



두 친구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마테오가 말했다.



죽음을 눈앞에서 맞닥뜨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 내 이야기를 해줄까. 어느 날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다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어. 놀라긴 했지만 일단 강아지를 데려다주고 무언가 조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집으로 돌아갔지. 그런데 다시 그 사람이 있는 쪽으로 돌아가 보니 이미 죽어 있는 거야. 나 때문에 그자가 죽었다는 생각에, 그 후 오랫동안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렸어.”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수, 내가 겪은 일은 물론 너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둘 다 죽음과 관련되어 있어. 네게 위로가 될까 싶어 말을 꺼낸 거야. 넌 그 상황에 대해 아무 잘못도 없어. 그 친구 지금 프랑스에서 멀쩡하게 살아 있잖아? 설령 그때의 일들이 자꾸만 생각나더라도 ‘왜 자꾸 생각이 나는 거지? 난 그 일을 생각하기 싫다고!’ 하며 부정해 버리면 오히려 그 일에 밑줄을 긋는 셈이 돼. 차라리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를 때 그에 주목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게 네게 도움이 될 거야.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해준 것에 고마움을 전하자,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네 고민을 서슴없이 털어놓아 주어서 고맙다”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이 황량한 사막에서 야니스와 마테오처럼 좋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의 모로코 여행은 외로움으로 점철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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