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드가 아침 식사를 차려 주겠다던 여덟 시에 맞춰 그가 거주하는 흙집으로 들어서니, 빵과 치즈, 삶은 달걀 그리고 요플레를 내어주었다. 밤에 도착했을 땐 미처 느끼지 못했는데, 날이 밝고 해가 떠오르니 몹시 더웠다. 뜨거운 기운을 품은 산들바람에 숨이 막히고, 비 오듯 땀이 흘러 눈 뜨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나와 야니스는 상황 파악이 아직 덜 된 상태였다. 망부석처럼 앉아있는 우릴 멀끔히 보던 아흐마드는 이윽고 바깥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몇 발짝 걸어 다른 흙집 앞에 도착하니 땅속에 깊게 파인 우물이 있었다. 아흐마드는 기계와 호스를 이용하여 물을 끌어올린 뒤, 큼지막한 플라스틱 통들에 가득 채웠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 쓰일 물이었다. 직접 물을 부어 용변을 처리해야 하는 수동 변기뿐만 아니라 샤워기를 사용할 때도 같은 물이 활용되었다. 전혀 여과되지 않은 물이 그대로 샤워기에 연결되기 때문에, 샤워를 마친 후에도 몸에 소금기가 남을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 그리고 샤워 부스를 위한 물을 모두 채운 뒤에는 물이 뿜어져 나오는 호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이 작은 웅덩이를 이룰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 아흐마드가 오늘 할 작업을 설명했다.
삽과 손수레가 작업 용구로 주어졌다. 나와 야니스는 아흐마드가 설명한 대로 모래와 진흙을 손수레에 퍼 올렸다. 모래는 웅덩이의 바깥쪽, 진흙은 안쪽을 파내면 되었다. 아흐마드의 움막 근처에 세워진 담은 이미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된 상태였고, 나와 야니스는 두 줄의 벽돌을 알맞게 올려 마무리 작업을 했다. 흙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큼직한 벽돌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사이사이에는 짓이겨놓은 흙을 덧발랐다.
키가 2m에 육박하는 야니스가 힘든 일을 도맡아 했다. 열심히 일을 도우려는 마음과는 달리, 나는 팔 힘과 체력의 한계로 인해 무거운 벽돌을 높은 곳까지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야니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니, 그는 ‘신경 쓰지 말라’며 호쾌한 모습을 보였다. 일은 꽤 고되었지만, 야니스와 힘을 합쳐 작업하는 과정에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야니스는 만 18세의 어린 청년이었고, 영어 실력이 출중했다. 독일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에서처럼 각자 흥미 있는 과목을 선택해 중점적으로 배우는데, 야니스는 영어를 전공과목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더욱 전문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도 우리는 쾌활한 표정으로 작업에 임했다. 무엇보다 낯선 곳을 함께 낯설어할 이방인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게 좋았다.
숨을 헐떡이며 작업을 마치자, 아흐마드가 점심 식사를 차려 주었다. 할당된 일은 점심 이전까지만 하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리의 첫 점심 식사는 호박과 함께 삶아낸 잠두콩이었다. 빵을 가른 뒤 속에 콩을 채워 여러 번 먹었다.
집주인 아흐마드는 사하라사막 한복판에서 태어난 원주민이지만, 열 살이 되던 해부터 마을로 나와 생활하기 시작했다. 학교에 다니기 위한 목적이었다. 비교적 설비가 잘 갖추어진 마을에서 살며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으나, 이미 사막 생활에 적응해버린 그는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을 떠나 살기에는 여러 불편함이 있었다. 고심 끝에 그는 이에 대한 타협점으로 사막과 마을 중간에 흙집을 지어 놓고 사는 것을 택했다.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풀어 놓던 아흐마드는 가슴 한쪽을 탁탁 치며 “내 마음속엔 늘 사막이 있다”고 강조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것도 잠시, 대화가 진척될수록 그와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흐마드는 내게 모로코 남자들이 외국인 연인을 애타게 물색하는 이유를 알려 주면서 은근히 작업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여자를 사탕에 비유하는 그의 기상천외한 생각에 크게 당황한 나머지,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의 노골적인 말이 부담스러워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 그러나 딱히 할 일도 없을뿐더러 날이 무척 더워서, 흙집에 누워있는 것도 힘에 부쳤다. 아흐마드와의 대화에 더럭 겁을 집어먹은 이후로는 도무지 그가 있는 움막 쪽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소금물로 샤워를 해야 하고, 사람 발소리를 내는 벌레가 20cm씩 통통 튀어 오를 뿐 아니라, 느끼한 모로코 남자가 작업을 걸어오는 곳이라니! 인적이 드문 사막 입구까지 온 게 잘한 일인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한숨을 쉬었다. 골치 아픈 생각들에 떠밀려 다니다 보니 어느새 짙은 어둠이 깔려오기 시작했다. 침낭에 들어가 질끈 눈을 감았다. 일단 자고 나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