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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독수리 날다

  

  밀레니엄이라며 떠들썩했던 2000년 어느 날. 모두가 잠들어 고요하고도 깊은 밤 우리 부부는 뜻하지 않은 순간에 눈과 마음이 맞아버렸다. 마음과 몸이 맞았으면 제법 뜨거운 밤을 보내고 둘째로 밀레니엄베이비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홈쇼핑을 보다가 그만 둘 다 컴퓨터에 꽂히고 만 것이다. 통 크게 마음먹고 거금 899,000원이나 하는 컴퓨터를 주문했다. 목적은 단 하나, 고스톱을 치기 위함이었다.


  화투짝 한 장 없이, 땡전 한 푼 없이 고스톱이 가능하다니. 어렸을 때 민화투를 치는 동네 어르신들 틈에서 짝이나 맞출 줄 아는 게 전부였던 나다. 그런데도 어찌나 설레던지 도박중독도 아니건만 자려고 눕기만 하면 화투짝이 눈앞에 아른아른하는 것이, 주문한 컴퓨터가 도착하기까지 며칠이나 뜬눈으로 지새우고 말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쥐알탱이만 한 컴퓨터 하나 들어오는데 냉장고보다 자리를 더 많이 차지했으며, 귀하신 몸이니 밥상 위에 올려놓을 순 없어 책상까지 준비해야 했다. 책상이 있으면 당연히 의자도 있어야 하니, 이래저래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깟 몇 십만 원이 대수일까. 컴퓨터가 생긴다는데.


  드디어 컴퓨터님이 도착하셨다. 커다란 종이박스를 뜯고 꼼꼼하게 포장된 스티로폼과 비닐을 벗기니 우아한 상아색 몸체가 드러났다. 책상을 창가에 두길 잘했지. 마침 지는 해를 등에 업고 후광까지 발광하시는 컴퓨터님을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영접했다. 짱구처럼 앞뒤로 뽈록 튀어나온 대갈통은 더없이 스마트해 보였고, 더구나 속기용이라는 자판은 가운데가 살짝 꺾여있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속기사가 될 듯했다. 


  배달원을 따라온 전문기사는 인터넷을 창을 열어 아이디 가입 방법까지만 알려주고서, 행여 두 컴맹들이 더 가르쳐달라 붙들까봐 겁이 났던지 서둘러 자리를 털고 떠나버렸다. 배웅하며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우리는 부리나케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한발 늦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의자는 당연히 남편 차지. 나는 무릎을 길게 세워 앉아 옆에서 구경만 해야 했다.


  “k, k가 어디 있지?” “요기 있네, 요기.” 남편도 컴퓨터가 처음이었기에 가운데손가락을 이용해서 한 글자 입력하고 모니터 보고, 또 한 글자 입력하고 모니터 보고를 반복했다. 내내 손가락을 움찔거리면서도 구경만 해야 했기에 답답하던 차에 내가 먼저 나서서 팔을 길게 뻗어 자판 위치를 찾아 꾹꾹 눌러주었다. 두둥. 그러고 나자 총천연색 화면이 떠올랐다. 


  ‘아-싸 고도리-’, 화면과 함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가슴까지 둥둥 울리게 했다. 처음 해보는 인터넷 고스톱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흔들고오-’ ‘따닥-’, 손에 화투짝을 쥐지만 않았을 뿐 소리 하나만으로도 우리 부부를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말아먹고 있었다. 남편과의 야한 밤보다 훨씬 흥분되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요, 세말하면 입 아프다. 그래서 여섯 시 땡, 칼퇴근을 서슴지 않으며 매일 밤마다 우리 부부의 신세계 여행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그리 즐겁기만 할 거라 생각했던 고스톱으로 인해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면서 우리는 슬슬 고민에 고민이 더해졌다. 게임 화면 옆에 작은 대화창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간단한 인사나 잘못 냈을 때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 오가기도 했다. 그런데 거의 끝 무렵에 화투 한 장을 고민하다가 냈더니 그 작은 창으로 쉴 새 없이 욕이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렇게 많은 욕이 존재하고 있었구나. 하지만 옆에 있지도 않은 엄마와 돌아가신 아버지까지 들먹이며 하는 욕이 고깝기 그지없었다.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닌데, 세상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을 먹는 기분이라니. 잠까지 설쳐가며 그리도 애타게 기다리던 고스톱이건만 화투 한 장 잘못 냈다고 그리 욕을 하나. 아무리 귀가 아닌 눈으로 듣는 욕이라지만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강세와 억양이 읽어졌다. 나 또한 더 심한 욕으로 맞서고 싶어도 대거리할 타자 실력이 되지 않으니 그것이 더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화투도 쳐야 하고 욕도 받아쳐야 하니 눈이 세 개 네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결국 부부는 일심동체, 2인1조 방식을 택했다. 남편은 마우스로 화투를 치고, 나는 타자로 욕을 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마저도 독수리타법으로는 그들의 속도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머저리와 바보의 조합으로, 둘이 합체한다고 하여 열 개의 손가락을 두 개의 손가락이 이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 또한 먹히지 않으니 다시 두 번째 방법에 돌입했다. 가게가 조금 한가해지는 시간이면 내가 집에 돌아와 타자연습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글타자연습 창을 열고 어떤 키에 어떤 손가락이 맞는 것인지 부터 시작해 ‘소나기’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한 단어씩 천천히 내려오다가 나중에는 폭우가 쏟아지듯, 그야말로 ‘단어 비’가 내리는 것을 모두 다 타자로 쳐내야 하니 타자속도는 내가 느끼지 못한 순간에 점차 늘고 있었다.


  중국무술영화를 보면 커다란 놋쇠그릇에 모래를 가득 담고 그것을 뜨겁게 가열하면서 얍 얍, 기합소리와 함께 양손을 번갈아가며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는 철사장이라는 훈련이 있다. 쿵푸대회를 나갈 것도 아니면서 나는 매일같이 그 철사장에 버금가는 연습으로 손가락을 단련했다. 피와 땀으로 이루어낸 결과, 나는 겨우 일주일 만에 당당히 1분에 200타를 넘기는 기록을 세웠다. 


  그 날 저녁, 이번엔 천하무적이다. 욕을 해볼 테면 해 보아라. 덤빌 테면 덤벼보아라. 나는 제법 큰 경기에 임하는 선수처럼 앞뒤좌우로 까딱거려 목도 풀고, 양손을 깍지 껴서 팔을 쭈욱 뻗어 손가락도 풀어주었다. 자, 시작해볼까. 방식은 여전히 2인1조로.   

 

  1분, 200타, 성공적. 아직까지는 그들보다 좀 느리긴 했지만 욕을 먹는 대로 대거리를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그런지 남편은 승승장구 했다. 연속해서 쓰리 고에 따따블. 그 날 하루 번 돈이 현금으로는 일생동안 만져보기도 힘든 돈, 20조를 넘게 벌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가늘고 긴 손가락이 피아노 치듯 도르륵도르륵 자판 위를 유영한다. 날개가 달린 것도 아니요, 지느러미가 달린 것도 아니건만, 자판 위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듯 물속을 헤엄치듯 열 개의 손가락은 눈길 한 번 받지 않고서도 잘도 움직거린다. 그래, 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럽다. 지금은 그렇게 쌓인 실력으로 이렇게 글을 쓰는 내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여전히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욕을 하기 위해 배운 타자라 그럴까. 화가 날 때마다 뭉툭한 가운데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모양새만으로도 자연스레 욕을 날리고 있는 나는 아직도 독수리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래도 자꾸자꾸 연습하면 언젠가는 그들처럼 나도 자판 위를 날 수 있겠지.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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