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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옆집에 구신이 산다

        

  칠월 개우랑 해에 황소 뿔이 녹는다더니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팔월 볕이 오히려 더 쨍하다. 그러잖아도 덥고, 그러잖아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매미 때문에 시끄러운데, 옆집의 구신까지 가세해 짜증지수를 한껏 올리고 있다. 덕분에 창밖을 힐끗 내다보던 내 입이 또다시 구신을 들먹거린다.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저놈의 구신 안 잡아가고.”


  구신을 처음 만난 것은 봄비가 내리던 올해 오월이었다.


  아침부터 바깥이 부산스러워 창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에 이사를 오는지 사다리차가 냉장고를 한창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이 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었고, 그 주인 또한 그것들과 하나인 듯, 조금은 잦아진 보슬비를 맞으며 바닥에 박스 하나를 펼쳐놓고서 철퍼덕 앉아있었다. 그러나 몸뚱이만 쉬고 있을 뿐 입은 윙윙거리는 사다리차보다 더 큰 소리로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이사비용 흥정을 다시 해볼 심산이었는지 십만 원이 덜 들어왔네, 까짓 거 깎아주면 될 것을 너무 깐깐하네, 옥신각신 싸우는 모양새가 여간내기가 아닌 듯싶었다. 내 눈에 비친 구신의 첫 모습이었다. 설핏 스치기만 했는데도 왠지 조용한 동네는 이제 물 건너 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릿속을 스쳤다.


  역시나 구신은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얼추 이사가 다 끝났을 시간인데도 바깥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이번에는 쓰레기 문제였다. 건물 앞에 음식쓰레기를 버리려던 아주머니와 구신이 대판 싸우는 중이었다. 입에서는 쌍시옷이 오르내렸고, 하릴없는 손가락이 놀 새라 알뜰하게 삿대질까지 건네며 아주머니를 다그치던 구신은 기어이 쓰레기봉투를 들고 돌아서는 아주머니를 향해 캬악 퉤, 가래침을 뱉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요일이면 굳이 따로 정하지 않아도 건물 앞에 쓰레기를 모아두는데 하필이면 해가 지기 전이었고, 하필이면 구신의 미처 다 올리지 못한 이삿짐 옆이었다. 그곳이 쓰레기가 모아지는 곳이었기에 버렸을 뿐인데, 괜히 바지런을 떠느라 일찍 나섰던 아주머니가 혼자 독박을 쓰고 말았다.


  캄캄한 밤이 되었을 때에야 온갖 소음으로 고생한 하루를 드디어 마무리 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이번에는 또 술 취한 구신이 노래를 했다. 딩가딩가 노래를 하다가, 비틀거리는 구신을 부축해주는 여인에게 괜한 화를 냈다가, 두런두런 알 수 없는 욕을 했다가, 다시 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노래를 했다. 민원을 넣어볼까. 창문을 벌컥 열어젖히고서 조용히 하라고 나도 똑같이 냅다 소리를 질러볼까. 오만 생각을 했지만 연세 지긋한 분에게 차마 그리 할 수 없어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부글거리는 속을 어쩌지 못하고 꽁한 마음을 담아 그의 별명을 지어주었다. 옛 구舊 몸 신身을 써서 구신. 처신이 딱히 올바르지 않아 보이니 어르신이라는 호칭은 과한 듯했고, 노인네라고 부르자니 천박한 어감이 썩 내키지 않아서였다. 


  언제나 구신은 내 눈앞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었다. 이사비용을 깎아서 그런 건지, 구신의 의도 하에 그런 건지 모르지만 시커먼 색에 등받이가 길고 커다란 의자 하나가 집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건물 앞에, 그것도 우리 집 창문을 마주하고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다름 아닌 구신의 자리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차장 처마 밑으로 살짝 들어가긴 했지만 동이 트기 무섭게 신문 하나를 챙겨들고 앉아 해가 다 기울도록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하릴없이 신문만 볼까. 골목길을 오가는 사람과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가 거두며 구시렁구시렁. 세련된 차림의 아가씨가 지나가면 치마가 짧네, 젊은 남자가 담배를 물고 걸어가면 어린 것들이 버르장머리가 없네, 싹수가 누렇네, 세상이 말세네, 구신 혼자 평을 하느라 바빴다.   


  구신은 언제나, 무슨 일이든, 조용히,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었다. 자신의 의견을 조곤조곤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얼굴을 붉히며 싸우려 드는 바람에, 벼르고 덤벼들었다가 된통 혼꾸녕만 맞고 초라하게 돌아선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구신의 행동이 늘 올바르고 정직한 것만은 아니어서 더 할 말을 잃게 했다. 텁텁하고 쿰쿰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해서 내다보면 담배를 물고 있었고, 그것은 지금 막 하나 문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 바닥에 꽁초가 수북했다. 거기다 컬컬한 목이 답답했는지 캬악 퉤, 뱉어내는 가래침 또한 의자 밑에 흥건했다. 


  그런데 그리도 미운 짓만 하던 그가 어느 날 부턴가 귀신 같이 사라져버렸다. 언제나 저 얼굴 안 보고 하루를 온전히 보내는 날이 올까, 했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구신이 정말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끼익끽 낡은 의자의 앓는 소리, 촤라락 접힌 신문지를 펼치는 소리, 커억컥 가래 긁어모으는 소리, 쿵얼쿵얼 욕을 중얼거리는 소리. 꼬박꼬박 헤아려보진 않았지만 벌써 서너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구신이 내는 온갖 소리와 함께 열었던 아침이었다. 그랬던 그가 보이지 않는 아침은 후텁지근한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상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화상. 저놈의 구신. 도대체 귀신은 뭐하느라 저놈의 구신을 잡아가지 않는 걸까. 처녀귀신 총각귀신 연애하느라 바빠 태만한 근무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속으로 그가 했던 것보다 더 심한 온갖 욕을 퍼부으며 하루라도 빨리 그가 사라지기를 그토록 바랐는데. 지금의 고요함이 혹 꿈일까 하여 눈만 뜨면 창을 열고 그의 부재를 매번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간 그로 인해 시끌벅적했던 동네가 다시금 조용해지니 내가 이렇게 좋은 곳에 살고 있었구나, 별것도 아닌 일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렇게 일주일, 또 일주일을 더 보내고 나니 이제 슬슬 그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돌아가셨나. 금세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나. 이도저도 아니라면 나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치오른 누군가가 참지 못하고 기어이 그를 멀리로 쫓아내기라도 했나. 얼마지 않아 텅 빈 채로 낡은 의자나마 그의 빈자리를 고집스럽게 채우고 있었는데 누가 치워버렸는지 그것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밥알 빠진 식혜를  맛보듯, 생강 빠진 수정과를 맛보듯 맨숭맨숭한 것이 무언가 허전했다. 


  촤라락 탁탁. 신문지 펼치는 소리다. 환청인가. 냉큼 일어나 얼른 창문을 열었다. 엇 구신이다. 그가 다시 나타났다.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처럼 그가 다시 의자에 앉아 가래를 끌어올리며 신문을 펼치고 앉아 있다. 의자까지 새로 장만했는지 검정 가죽 때깔이 곱기도 하다. 신수도 훤해졌다. 하얗게 쇤 머리에 앞니도 몇 개 숭덩숭덩 빠져있었는데, 까맣게 염색한 머리와 가지런히 반짝이는 틀니를 언뜻언뜻 보이며 언제나처럼 오가는 사람의 흠을 짚어내고 있다. 어디서 주워왔는지 의자 아래에는 재떨이 대용으로 보이는 근처 중국집 짬뽕그릇도 하나 두었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개과천선한 모습이다. 그래도 여전히 더럽게 가래침을 뱉고 시끄럽게 욕을 하는 구신이다.


  나는 또 그동안 걱정했던 것은 깡그리 잊고 창문을 소리 나게 닫으며 한소리 한다. ‘에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의 구신 안 잡아가고.’, 그리 말하면서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감도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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