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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친절한 금희 씨

  걷기 좋은 날씨다. 가을을 가리키는 달력의 숫자가 무색하게도 햇볕은 아직까지 쟁쟁하다. 그래도 그늘을 찾으면 한 번씩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탓에 그녀와 나는 마냥 걸어보기로 한다. 몇 달을 집근처에 있는 호암산에 오르내렸더니 무릎에 이상이 온 것 같다며, 무릎을 통통 두드리며 징징대는 나를 위한 그녀의 배려다. 


  신대방역에서 시작하여 목동야구장 근처까지 갈 생각으로 개천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몇 걸음 떼자마자 잘 정돈된 개천 변 벤치 주변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아이들 다섯 명이 잠들어있다. 덕지덕지 때가 낀 채 다 낡아빠진 점퍼를 얼굴 위에 뒤집어쓰기도 하고, 혹은 꾸깃한 신문지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낸 아이들은 쌔근거리며 잘도 잔다. 가출한 아이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자 아이들 근처로 가는 것도 겁이 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꾀죄죄한 몰골에 오랫동안 씻지 못했는지 퀴퀴한 냄새까지 풍긴다. 


  굳이 그곳으로 다가간 금희 씨. 너덜너덜해진 신문지를 꾹꾹 눌러 바람에 날리지 않게 단도리 해주고, 채 가려지지 않은 얼굴에 점퍼자락을 늘여 진한 햇빛을 피하지 못한 아이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준다. 그럴 때면 으레 나는 가납사니가 되어 손대지 말라고 그녀를 말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끌끌 차며 아이들 곁에 쭈그려 앉기까지 한다. 이윽고 한 아이의 기름으로 떡이 진 머리칼에 손을 뻗어 가만 쓰다듬는다. 


  그녀는 한참이나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그냥 자리를 뜨기가 아쉬웠던지 먼지도 앉지 않은 바지를 툴툴 털며 일어섰다. 마음먹은 곳까지 마저 걸으면서 그저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나는 편치 않은 마음에 스스로 변명거리를 찾는다. 그녀가 이런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조금 전 말리던 나를 오늘은 또 무어라 야단칠지 그녀를 흘긋거렸다. 내내 아이들이 있던 그곳을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안전을 확인하던 그녀가 큼큼 마른침을 삼키더니 먼저 말을 꺼낸다. 


  “아이 씨발, 세상이 왜 이러냐. 딱 우리 애들 또래 같지 않냐. 저런 애들이 왜 굳이 기어 나와서 한뎃잠을 자야 하냐고. 다 부모 잘못 만나 그런 거야. 문제부모 밑에 문제아 나온다는 말도 있잖냐. 그렇다고 그 애들이 정말 문제가 있냐하면 다 그런 것도 아니거든.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하면 애들은 저절로 바르게 자랄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너도 삐뚤어진 세상의 눈으로만 보려 하지 말고 엄마의 마음으로 저 애들을 봐봐. 가엽잖아. 이따가 돌아가는 길에도 저 애들 자고 있으면 빵이라도 하나 씩 사줘야겠다. 배를 엄청시리 곯은 거 같던데.” 


  그 와중에 아이들을 퍽이나 자세히 살폈나 보다. 역시나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제과점에 들러 꽤 많은 양의 빵을 산다. 아이들이 아직 그대로 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갔지만 여전히 꿈속을 헤매고 있는 아이들. 밤새 어딜 그리 헤맸기에 옆에 누가 온 줄도 모르고 이리도 곤히 잠들어 있는 걸까. 그녀의 말처럼 엄마의 눈으로 바라보니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새 아이들은 불편한 잠자리 덕에 얼마나 뒤척였는지 또 새어 들어오는 볕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아무 말도 않고 그녀의 단도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마지막으로 누가 가져갈세라 빵과 우유를 봉지 째 점퍼 안쪽에 넣어준다. 그리곤 안쓰러운 그 아이들을 보며 내뱉는 말에 또 욕을 섞는다. 


  “아흐, 씨발. 불쌍해 죽겠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누구든 한 사람 쯤은 금희 씨처럼 용기를 내야 한다. 나처럼 친절을 베풀고 나면 화로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고마움으로 끝나는 세상. 오지랖으로 치부되지 않고 친절이 그저 친절이 되는 세상. 그녀는 욕으로 사랑을 나누고, 욕으로 친절을 베푼다. 


  여자치곤 꽤 큰 키에 쌍꺼풀수술로 커다래진 눈, 화장할 필요도 없을 만큼 진한 문신으로 또렷한 눈썹과 아이라인. 사나워 보이는 얼굴 생김새답게 그녀의 입은 늘 욕을 달고 산다. 그녀는 항상 마중 나와 있는 입으로 쌍시옷을 넣어 욕을 한다. 길을 걸을 때 남 상관치 않고 시끄럽게 수다를 떠는 아줌마를 볼 때도, 길가에 침을 뱉는 아저씨들을 볼 때도 면전에 대고 욕을 한다. 심지어 전날 텔레비전에 나온 정치인을 들먹일 때도 욕을 한다. 씨발, 이라고. 그래놓고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간다.


  “일주일 내내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서 회개하지?”   


  하고 비아냥거리면, 


  “지랄하네. 욕먹을 만한 사람한테 욕해주는데 회개를 왜 하냐?”


  그녀의 시원스런 대답이다. 무언가 이치에 맞지 않는 듯한 대답이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논리에 수긍해 버리고 만다. 말투며 억양만 보자면 항상 무언가에 불만이 많은 것 같지만 가만 들어보면 옳고 그름을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고, 누구나 서로 다름이 있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의 욕은 그릇된 세상에 대한 항변이 용기를 입고 나오는 것 같다.


  그녀와 내가 친구가 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어쩌다 오가며 눈인사는 나누는 사이였지만 한 건물에 살면서 우리가 동갑이라는 것도, 남편과 아이까지 동갑이라는 것도 이삿날을 며칠 앞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러한 동질감이 급작스레 친근감을 불러왔다. 이후 나는 살던 집 근처로 이사했지만 그녀는 독산동으로 이사하게 되어 이제는 자주 못 보겠구나, 했는데 그녀의 우리 동네 나들이는 이사한 후로도 매일 실행되었다.


  차 한 잔 하려고 들렀다고, 이 동네 시장이 거기보다 훨씬 커서 장 보고 돌아가는 길에 들렀다고, 같이 운동하러 가자고 핑계 대며 하루가 멀다 하고 문지방이 닳아 없어질 만큼 그녀의 출입이 잦았다. 덕분에 나는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언제 들를지 모르는 그녀 때문에 게으름도 피지 못한 채 청소를 하고,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마트를 들러 맛있는 차와 과일을 준비했다. 부지런해지려면 친구를 초대하라더니 내가 딱 그 모양새였다.


  처음에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존대를 했으나 그녀의 화끈한 성격에 맞지 않았는지 갑작스레 말을 놓기 시작하더니, 또 갑작스레 대화 중에 욕을 섞었다. 도저히 적응이 될 것 같지 않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면서 이상하게 그녀와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속이 다 후련해졌다. 아마도 주변의 눈초리나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 나는 그녀가 욕을 대신 해주어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었던 듯싶다. 그녀의 나이답지 않게 맑은 눈을 바라보자면 사랑이 넘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도 난 여전히 그녀가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가끔은 존경심이 일어 말은 놓아도 이름 뒤에 ‘씨’를 꼬박꼬박 붙이고 있다.


  이제 뜨거운 게 아니라 따뜻해진 볕은 자꾸만 눈꺼풀을 무겁게 한다. 전화벨이 울리는데도 꿈쩍하기 싫다. 그래도 끈질기게 울린다. 더듬더듬, 눈은 감은 채 전화기를 찾아 귀에 댄다.


  “야, 씨발. 또 낮잠 자고 있었냐? 전화하면 바로바로 받아라, 좀. 네가 세상모르고 자는 시간에 남들은 먹고 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한다고.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 팔자 편한 년들끼리 공원이나 한 바퀴 휘 돌고 오자.”


  집에 틀어박혀 밖에 잘 나오려 들지 않는 나를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금희 씨의 친절은 욕이 섞인 채 날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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