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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똥값

  부지런히 창고정리를 마치고 가게 앞까지 비질을 하느라 바짝 숙인 고개 앞으로 반질반질한 구두 한 켤레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숙여진 내 정수리를 향해 구두주인이 머뭇머뭇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혹시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고개를 들어 위아래로 스윽 훑어보아도 뭐 하나 빠지지 않는 매무새, 검정 모직코트에 비율을 잘 맞춰 빗은 머리까지. 오십대 정도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무엇 하나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신사다. 그러나 오히려 허름하지 않은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보통의 사기꾼들이 그러하지 않은가. 말쑥하게 잘 차려입고 현란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런 사람들 치고 후줄근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선뜻 그러세요, 하지 않는 나에게 애원하는 듯한 그의 말이 다시 흘러나왔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뭘 잘못 먹었는지 갑자기 뱃속에서 전쟁이 났네요. 마수걸이도 하기 전에 이런 사람 들이기가 썩 내키진 않겠지만 사정 좀 봐주세요.” 


  전문적으로 소매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서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선뜻 그에게 괜찮아요, 라는 말을 건네기가 어려웠다. 창고를 겸한 매장이 있고 그 안으로 사무실, 그리고 더 안쪽에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얼굴을 찬찬히 훑었다. 점잖게 말하는 중에도 그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바래지고 있었다.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며 애원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세요. 저기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맨 끝이 화장실이에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장실을 향해 그가 뛰었다.


  그러나 십 분, 이십 분, 한참이 지나도 그가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을 이용했으니 사용료를 내라 할 것도 아닌데 그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것이 수상했다. 슬슬 의심이라는 못된 마음씨가 삐죽삐죽 자라났다. 혹시 금고에 손을 대는 것은 아닐까. 자리를 비운 직원들의 컴퓨터를 켜고 기밀문서라도 빼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리 넋 놓고 가만있을 게 아니라 정말 그가 화장실에 쭈그리고 앉아있는지 화장실문을 노크해봐야 하는 건 아닐까. 소리에 냄새에, 그가 무안할 거라는 생각으로 사무실 근처도 못가고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밖에서 마음만 졸였다.


  오만 생각으로 가슴이 자작자작 졸여질 때쯤에야 한결 밝아진 얼굴로 그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연거푸 감사의 인사를 중얼거리며 허리를 몇 번이나 굽히고는 때마침 오는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다. 


  그가 버스에 오르는 순간, 나는 부리나케 화장실을 향해 뛰었다. 무엇보다 먼저 정말 화장실을 이용한 것이 맞는지 문을 열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것과 그의 말쑥한 차림새가 정확하게 맞물리며 순간 무서움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말 나는 아침부터 도둑놈을 친히 내 손으로 사무실 안까지 들여놓은 것인가. 다정도 병이라더니 쓸데없이 친절이랍시고 오지랖을 떨어 이 사달을 만들었나 싶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천정을 올려다보니 사무실을 제외하고 창고 모서리마다 설치된 넉 대의 CCTV가 나를 대신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것을 보니 다시금 힘이 솟았다. 행여 도둑을 맞았더라도 도둑놈 얼굴은 찍혔을 테니 잡을 수는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볼펜 한 자루라도 없어졌기만 해봐, 내 너를 잡아 아작을 내주리라. 


  다행히도 그가 다녀가기 전과 후에 차이 나는 것이라곤 두루마리휴지 몇 칸이 전부였다. 말짱한 모습으로 아침부터 남의 화장실을 이용하고서 냄새하나 남기지 않고 갔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져버린 그. 일은 그가 보고 갔는데 뒤처리를 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은 오롯이 내 것이었다. 친절을 베풀긴 했지만 결국 의심으로 끝내버렸기 때문이다.


  그 도둑놈, 아니 신사가 다시 가게에 찾아온 것은 며칠이 지난 후다. 한겨울에 수박이라니, 그가 아기 볼기짝만한 수박 한 덩이를 품고 내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덥석 그것을 안겨주며 고르고 하얀 이를 다 드러낸 채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똥값이에요.”


  수박을 건네받고도 멀뚱하게 서있기만 하는 내게, 


  “그땐 고마웠어요. 출근길이라 감사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왔었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안 계시더라고요.”


  “그래도 화장실 이용료 치고 이건 너무 비싸요.”


  “저 아래쪽 마트에서 수박을 똥값에 판다며 세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딱 제가 사고 싶은 물건이다 싶어서 하나 사왔어요. 꼭 받아주세요.”


  내 얼굴이 잘 익은 수박 속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 의심으로 끝내버린 내 친절에 대한 보상이라기엔 너무 과한 선물이었다. 콕콕 양심이 찔려와 더는 숨길 수 없어 솔직하게 말했다.


  “죄송한데, 실은 도둑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었어요.”


  “하하, 이해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침부터 똥 싸도 된다며 사람 들이는 곳이 얼마나 되겠어요. 재수 없다며 소금 뿌리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요.”


  어쭙잖은 친절이었기에 받을 수 없다고 손사래 쳤지만 고마웠다며 그날 아침처럼 몇 번이나 더 허리를 굽히고는 똥값이라는 수박만 남겨놓고서 그가 유유히 멀어져갔다. 하릴없이 정류장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할머니들 몇 분을 불러 모아 수박을 나눴다. 친절에 대한 보답으로 받은 것이니 정으로 나눠야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에게 거들어주겠다고 하고서 그대로 그것을 들고 튀어버린다.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빌려주면 그것도 들고 도망 가버린다. 그래서 친절을 베풀고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아예 그 모든 상황에 처하면 무조건 외면부터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세상이 나를 변하게 했는지, 나 같은 사람이 하나둘 모여 세상을 변하게 했는지 알 수 없다. 내 어릴 적 그때의 정서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따뜻한 마음을 건넬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수 없을까. 나부터라도 변해보자. 그래서 마트에서 수박을 세일한 것처럼 나도 친절이라는 옷을 입은 정을 헐값에 내놓아본다. 


  “여기 친절 있어요. 정 있어요. 세일이에요. 친절과 정이 똥값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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