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돼. 아이를 키울 때 웬만하면 하지 말아야 할 말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장 많이 하게 되는 말이다. 아이가 그 말을 듣고 멈추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오히려 더 애절하게 원하고 징징거리며 찾는다.
나도 그런 말을 자주 듣고 자란 건지 자꾸만 하지 말라는 말에 더 달려든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고, 가지 말라고 하면 더 가고 싶고, 밟지 말라고 하면 더 밟아보고 싶다. 나이가 들어도 그건 왠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월요일, 아들과 아침 일찍 수원화성을 찾았다. 팔달문에서 시작해 장안문 화홍문 창룡문까지 걸어 내리라는 심산으로, 팔달문 안내소를 지나 안개비가 부스스 내리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탓인지 재작년만 해도 수월하게 올라지던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더위 핑계를 대어 네 개의 성문을 다 돌 계획이었던 것을 서장대까지만 올랐다가 곧장 장안문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수정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내 맘대로 하면 어때서, 하는 마음이었다.
기껏 시작해놓고 목표를 채우지 못한 것이 아들 앞에서 못내 부끄러웠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내려오자마자 곧장 먹거리를 찾았다. 날이 더우니 시원한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볼까, 이열치열로 뜨끈한 갈비탕을 먹어볼까, 아들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전에 갔던 그 집, 기와집 수제돈가스. 영화「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아저씨, 계란 하나 드실라우?” 하던 옥희가 살던 집 근처로 꽤 소문난 맛집이다.
한창때는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그 집. 운 좋게 기다리지도 않고 두어 번 맛 본 뒤로는 착한 가격과 깔끔한 맛이 가끔 생각나곤 했는데, 오늘은 월요일이라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들르기로 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맛은 좀 전까지 천근만근이던 다리를 날아갈 듯 가볍게 했고, 별일 없던 뱃속도 갑자기 꼬르륵거리며 요란을 떨어댔다.
그런데 이럴 수가, 몇 걸음 더 떼다 만 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월요일은 정기휴무일입니다.’ 나를 세운 것은 노란 벽 사이 유리문에 떡하니 붙어있는 문구였다. 그 말인즉슨 오늘은 돈가스를 먹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 말라고 했을 때 더 하고 싶어지는 내 심보를 모르는 주인장의 실수다.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먹지 ‘못한’ 것이 되니 더더욱 먹고 싶어졌다.
사람이란 게 참으로 간사하다. 맛있는 것을 생각만 했는데 배가 고파지고, 애초에 그것을 먹어야지 마음먹지 않았는데도 한 번 먹겠다 생각하고 나니 다른 음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더위를 식히느라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시켜놓고 앉았을 때도 그 돈가스가 약이라도 올리는 듯 눈앞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그깟 돈가스 하나 먹지 못해 입이 댓 발이나 나와 있는 기분을 풀어주려 아들이 재롱을 떨어대도 심드렁하기만 했다. 어찌 보면 내 의지가 아니니 당연했다.
나이가 들면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살아갈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하지 못하는 것들은 더 많이 생겨난다.
결혼할 때도 나와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는 이유로 친정집의 반대는 심했다. 뿐이랴, 심지어 내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남자마저도 나를 멀리하려 들었다. 이유는 둘도 아니고 딱 하나, 나이 차이.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고, 싫다고 하니 더 갖고 싶었다. 그래서 뿌득뿌득 우겨 결혼했고, 그 남자를 내 남자로 만들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한 것 중에 가장 큰 일이다.
작년 건강검진에서 의사는 나에게 고혈압 진단을 내렸다. 워낙 살집이 있으니 그럴 수 있지, 인정했다. 이제부터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덧붙여 하는 말이 인스턴트 음식, 밀가루 음식, 술과 붉은 고기를 되도록 먹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신기하게도 그리 즐겨하지 않던 술 한 잔이 간절해지고, 안주로는 짭조름하게 끓인 라면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검진 받은 날 저녁에 언니를 불러내어 인스턴트라면 대신 돼지갈비 안주에 소주를 거하게 한잔 하고 말았다. 먹지 말라는 것만 골라 먹어서인지 소주 한 잔의 시원함과 돼지갈비의 깊은 맛을 새삼 느낀 날이었다.
요즘도 하지 말라는 것에 불쑥불쑥 반발심이 일곤 한다.
‘해바라기 꽃을 따지 마세요.’ 안양천변을 운동 삼아 걸을 때 보이는 푯말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애써 보지 않으면 그게 해바라기인지 잡초인지 구분도 안 될 지경인데 굳이 벌써부터 그런 푯말을 써놓았을까 싶다가도, 금세 비뚤어진 마음이 올라와 아직 멍울만 생긴 그 꽃 목을 따고 싶어진다.
‘밟지 마시오.’ 주변 아파트 상가에 계단이 망가졌는지 시멘트를 발라놓고 밟지 말라는 푯말을 걸어두었다. 금줄 너머로 바라보니 밟지 말라는 그곳에는 이미 개와 고양이, 비둘기까지 추상화처럼 멋들어지게 발자국을 남겨놓았다. 아마 그것들도 나와 같은 심보를 가진 모양이다. 나도 슬쩍 신고 있는 신발바닥 무늬가 궁금해진다.
그렇게나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은 중에 요즘은 해야 할,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마스크를 꼭 착용해 주세요.’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하는 것이지만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아 가끔 고성이 오가는 싸움이 생기곤 한다. 버스도 지하철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탈 수 없다. 그런데도 고집을 피우며 쓰지 않는다. 뉴스를 보며, 하라면 하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이럴 때 나는 묵묵히 그 방침을 따르고 있다.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아니라, 어쩌면 늘 들어오던 ‘하지 마라’가 아닌 ‘해라’여서일지도 모르겠다.
가만, 그때 그리도 말리던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옆에는 현빈이나 장동건이 그 섹시한 낯짝으로 나만 바라보며 살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