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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Oct 13. 2020

욕하는 엄마

  구르뿌로 힘주어 말아놓은 머리, 육십 대는 훌쩍 넘어 보이는데 마스카라까지 완벽한 화장을 한 여자. 차림새야 그러그러했지만 어찌 보면 굉장히 우아해 보이고, 또 어찌 보면 꽤나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쟁반 위로 도넛을 하나 둘, 한참을 고민하면서 집게로 몇 개를 더 얹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으로 줄을 섰다. 새치기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를 한 번 슬쩍 보더니 고개를 휙 돌려 다짜고짜 아르바이트생을 향해 반말을 했다.


  “얼마야?”


  “잠시만요. 음, 만 사백 원이요.”


  “뭐야. 어떻게 만 사백 원이나 나와?”


  “아까 아드님 커피까지 두 잔, 육천 원이고요. 이 도넛은 천오백 원, 이건 육백 원, 그리고…, 이렇게 전부 다 해서 만 사백 원입니다.”


  “자, 카드.”


  그녀는 미처 커피 값은 생각을 못했는지 이내 수긍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우아해 보인다고 생각했던, 있어 보인다고 생각했던 그녀가 삽시간에 진상손님으로 변하여 내 앞에 서있었다. 동그란 눈이 사슴 같은 아르바이트생은 다짜고짜 반말을 해대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카드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그런데 받아든 카드를 터치스크린에 몇 번이나 긁어보다가 머리를 갸웃갸웃했다.


  “아 뭐해, 차 시간 다 돼 간다고!”


  “손님, 죄송한데 카드 승인이 안 떨어져요.”


  “그럼 다시 긁어보면 될 거 아냐.”


  “두 번이나 했는데 안 돼서요. 다른 카드는 없으세요?”


  “아 씨, 바빠 죽겠는데 별 게 다 말썽이네. 좀 전까지 썼던 카드라고, 그런데 그게 왜 안 돼. 어이가 없네. 니가 멍청해서 못하고 있는 거 아냐?”


  아르바이트생은 막말을 퍼붓는 그녀에게 보란 듯이 카드를 두어 번 더 긁어보였고, 카드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녀다. 처음부터 말 한마디를 조용히 내뱉는 법이 없던 그녀가 한층 더 커다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지하철역 안에 내려가 있던 아들까지 불러와 겨우 계산을 마쳤다. 그리고서 저와 똑 닮은 아들놈과 수군거리며 지하철역 안으로 사라졌다.


  카랑카랑하면서도 보통사람들보다 한 톤은 높고 큰 목소리, 우아한 생김새와는 달리 천박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행동에 넋이 나가버린 아르바이트생. 그 때 내가 기껏 한 짓이라고는 저렇게 인성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그러니 저런 사람들은 잊어버리는 게 수라며, 되지도 않는 말로 아이를 달래어 주문을 마저 한 것뿐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웃어 보이는 아르바이트생 앞으로 곧이어 다른 손님들이 줄을 더 이었다. 그러나 일은 얼마지 않아 터지고 말았다.


  좀 전에 나갔던 그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주문받은 커피를 내리느라 돌아서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야, 너 뭐야. 왜 카드를 네 번이나 긁어?”


  “아까 손님이 다시 긁어보라고 하셔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


  “그니까 왜 결제가 네 번이나 됐냐고.”


  “죄송해요. 손님, 아무래도 지금 이 기계가 문제인 것 같으니까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취소하고 나서 전화 드릴게요.”


  “내가 널 뭘 믿고 내 전화번호를 줘?”


  “그럼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당장 사장 번호 대. 멍청한 너는 해결 못해도 사장은 할 수 있을 거 아냐?”


  “…….”


  “왜 사장 번호를 못 대. 너 잘릴까봐 그래?”


  “…….”


  사장의 전화번호를 대라는 그녀의 말에 아르바이트생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곧 그 커다란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고, 이런 일을 처음 당하는지 손은 달달 떨고 있었다. 그렇게 집을 잃고 헤매는 어린 강아지 같은, 꼭 내 아이 같은 아이를 감싸느라 주변에서 이래저래 그녀를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더구나 이번엔 옆에서 가만 듣고만 있던 그녀의 아들놈까지 나섰다.


  “이거 다룰 줄 몰라요? 할 줄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왜 우리 엄마한테 대들어요?”


 서러움이 극에 달했는지 급기야 아르바이트생의 눈에서 눈물이 흐드득 떨어지며 이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자는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고 했는데 그녀, 아줌마는 더 악랄해져서 말이 험악해졌다.


  “야, 내가 널 때리기를 했니, 욕을 했니. 왜 처울고 지랄이야. 울면 다 해결 돼?”


  “그게 아니라요, 손님. 흐윽. 지금 이 기계가 안 되니까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흐윽.”


  이건 뭐, 모자사기단도 아니고 모자진상꾼들이었다. 어미는 욕을 하고, 아들놈은 옆에서 깐족거리고, 그런데도 누구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용기 있게 나서서 전은 이렇고 후는 이러하니 이러저러 해결을 봅시다, 하는 사람은 없고 그저 옆 사람들을 힐끗거리며 수군수군. 줄서서 기다리던 손님들 모두 그 에미에 그 자식이네, 시답잖은 눈빛을 건네며 뒷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야 당하고만 있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표현되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 나도, 나도 속해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삼만 원을 손해 본 채로 가라는 얘기잖아.”


  “아뇨, 전화번호 남겨주시면 취소하고 전화 드린다잖아요.”


  꽤 오랜 시간 그 삼만 원에 대한 실랑이가 오가자 주위 사람들의 띠꺼운 기운을 눈치 챘는지 아들놈이 창피하다며, 그만하라며, 엄마를 말려보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그 아들놈도 그 어미와 똑같은 진상으로 낙인찍힌 뒤였다. 나는 그녀에게 이제 그만 하라고, 아이가 당신의 이러한 행동에 무엇을 보고 배우겠냐고, 메시지를 담아 강렬한 눈빛을 쏘아주었다. 그래도 가만 앉아있는 채였다. 여전히 나서서 해결하는, 다른 사람은 없었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줄선 사람들의 짜증 섞인 투덜거림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남기고 그녀와 그녀의 아들놈이 떠났다. 그러나 더 이상 주문을 받지도, 주문 받은 음료를 내지도 못했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카운터 너머로 쭈그리고 앉아 펑펑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욕질, 갑질, 꼴값을 떨어대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기껏 나의 품위 지키자고 나서지 않고서 그저 지켜만 보았다. 용기가 없어서였다. 속으로는 욕도 해주고, 대신 나서서 삿대질하며 싸워도 주었지만 그저 ‘속으로만’이었다.


  집에 돌아와 아들아이에게 밖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들아이는 동질감을 느낀다며 나를 원망했다. 

  “엄마가 좀 나서주지 그랬어요. 그럴 때 욕해줄 줄 아는 엄마라면 더 멋있을 거 같아요. 남을 위해서 욕을 해줄 줄 아는 엄마, 멋지지 않아요?”


 그 말에 그녀를 다시 곰곰이 떠올리며 갑질하는 엄마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다음에 그런 일이 또 내 눈앞에서 벌어진다면, 그럴 때 쌍욕을 날려주는 멋진 엄마가 된 나를 상상해본다.


 “이런 시베리아에서 얼어 죽을 개나리 쌍쌍바 조카크레파스 십팔색을 보았나. 니 자식 같아서 그랬다고 하지 마. 아마 그 아이도 너 같은 여편네를 엄마로 두고 싶진 않을 테니까. 다시 한 번 이렇게 함부로 나불거리는 모습 내 눈에 띄기만 해봐. 네 주둥이 안에 있는 옥수수를 싹 다 털어내고 임플란트로 바꿔 줄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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