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항공사들에게 미치는 영향
<2020.03.11에 작성된 글입니다>
근하신년 카톡을 돌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이란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흘러가는지 무서울 정도다. 특히 매 12일 쳇바퀴 돌듯 그다음 달 스케줄을 비딩 하기 때문에 늘 길게만 느껴졌던 일 년이 '12번만 비딩 하면 한 해가 훌쩍 지나가네'라는 생각을 하면 한없이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19년의 끝자락에 해가 바뀌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굴렀었는데 막상 새해가 오고 들리는 소식은 그저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뉴스들의 연속이다.
1월에 처음 중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졌다는 뉴스를 접했을 땐 다른 세상 얘기 같고 '중국 어떡하냐, 큰일이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2월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한국"의 정세가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하더니 한국은 이젠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코로나 19로부터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국가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2월, 사촌언니의 결혼식을 이유로 한국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코로나 19의 기세가 좀 꺾이던 때여서 행인들 중에서도 마스크를 안 쓴 사람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이젠 구할 수가 없어서 못 썼으면 못 썼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고 한다.
미국도 이제야 정체를 드러내는 코로나 19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체감하기로는 그런 질병이 유행하고 있는지 뭔지 알 길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태평하다. 온갖 마트와 대형마트엔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다 소진되어 구경도 못하고 물과 쌀까지 매진되어 유통업계가 비상 상황에 걸렸다고 얘기는 듣는데 정작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 스타벅스만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마스크는 아픈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는 문화적 인식 때문인지 나 같은 동양인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힐끔힐끔 이상하게 쳐다보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있고 마스크를 쓰고 싶아도 괜한 인종차별을 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실정이다.
이런 혼란과 혼돈, 그 중심에 있는 게 바로 항공업계.
가장 크게 타격을 입어 정부 차원에서 구제 좀 해달라고 항공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정부에 손을 내밀 정도로 치명적인 적자 운영을 몇 주, 몇 달째 하고 있다 보니 이 항공사 저 항공사에서 직원들을 권고사직, 권고 휴직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우후죽순 들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며칠 전 했던 SFO (샌프란시스코) - ORD (시카고) 섹터는 승객이 19명뿐이었고 SFO-FRA (프랑크푸르트) 비행에 이코노미 승객은 40명 정도가 전부였다.
과거에 비행기가 연착되어 기존 탑승객이 다른 항공편으로 옮겨 타느라 승객 수가 저 정도로 적었던 적은 있어도 이런 light load가 계속되는 것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이런 새로운 양상의 비행이 지속되다 보니 일의 강도는 확연히 줄어들어 몸은 편하지만 마음 한편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우리 항공사 이대로 괜찮은 건지 말이다. 근데 이런 상황이 우리 항공사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니 큰일이다, 큰일. 온전히 돈으로 움직이는 (특히 미국) 항공업계가 언제까지 이런 적자 운영을 지속할 수 있을지, 아니 지속하려 할지 말이다. 이러다가 개미 목숨이나 다름없는 내 목까지 날아가는 건 아닐는지 모든 상황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3월에 엄마 아빠 결혼 30주년을 앞두고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던 엄마 아빠와 나는 2월까지만 해도 계획을 고수하다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유럽 내 확진자 수를 보고 계획을 캐나다로, 그리고 그것마저 무산되어 미국 동부로 플랜을 바꾸고 말았다. 끝내 바꾼 그 플랜마저 지금은 불투명하게 되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지만 어찌할꼬, 이 시국에 여행 가서 코로나는 아닐지라도 감기라도 걸려오면.. 그러면 정말 천하의 민폐녀가 될 테니 it's better safe than sorry.
앞서 말했듯 무산될지도 모르는 여행보다도 더 큰 문제는 전 세계 항공업계의 불안한 실정이다. 한-일 관계는 이젠 코로나 19를 뛰어넘어 정치적인 문제로까지 번졌고 오늘 미국의 두 대형 항공사가 4월까지 중단되었던 중국 직항 운항을 10월까지로 연장하여 금지하기로 했다. 다행히 미국 3사 중 우리 항공사만 유일하게 중국 직항 운항 중단을 4월까지로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도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
미국 내에서 가장 크고 공격적으로 중국 시장을 겨냥했던 게 우리 항공사였는데, 한마디로 중국은 우리 항공사의 주력 마켓이었는데 하필 이 망할 답도 없는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터져버렸고 회사는 역시나 우린 여전히 건재한 척, 당황하지 않은 척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매일매일 업데이트되는 회사 소식을 보고 있자니 저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골머리를 썩고 있을지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다.
다음 달 비행은 국제선 20%, 국내선 10%가 감소될 거라고 한다. 예정되어있던 임원진 월급 인상은 연기되었고 기내 서비스 시 장갑 착용을 허용한다는 사내 이메일도 받았다. 한창 진행 중이던 신입 승무원 채용은 중단되었고 전 승무원에게 1-2개월 무급 휴직을 오퍼 하던 회사는 이제 6개월까지 휴직할 인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게 시작이 아닌 끝이길,
정말 이 모든 게 꿈이길,
꿈에서 깨면 모든 게 끝나 있길,
진정으로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초행길은 언제나 멀게 느껴진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같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더 짧게 느껴진다. 반복되는 풍경, 언젠가 한 번은 가본 길. 그래서 내 눈과 몸이 기억하는 익숙한 그 거리.
우리 사는 모습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리고 행하는 일들 또한 그런 패턴을 지니고 있다.
이미 겪어본 일들엔 요령이 생겨 비교적 쉽게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고 관계에서 오는 통증엔 내성이 생겨 전처럼 앓지 않고도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문득 어릴 때 '엄마는 어떻게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라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물론 반항기 충만했던 내 어린 시절엔 엄마의 답이 나의 답이 되진 않았다. 근데 내가 이제 겨우 30년을 살고도 세상을 보는 지경이 이만큼이나 더 넓어진 것을 보니 이 길을 이미 걸어온 엄마는 어린 나의 눈높이에서만 할 수 있던 시야 좁은 질문들에 답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정답이 없고 늘 변수가 기다리고 있는 게 인생이라지만 같은 실수 반복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가장 무난하고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다. 끝없이 답을 갈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