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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포도나무

빛과 그림자 _ 7

by 루메제니

오랜 친구 미영의 딸 돌잔치 날이었다. 미영은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했고, 나는 그중 한명이었다. 초대받은 세 명 중 한 명은 미영과 각별히 친한 친구 혜원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돌잔치가 끝난 후, 미영은 반갑다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자고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밤에 밖에 나갈 일이 드물어서일까? 모두 한껏 신나 있었고, 결혼생활과 육아 이야기로 대화는 금세 물이 올랐다. 하지만 혜원이는 미혼이라 대화에 끼기 어려워 보였다.


미영과 헤원이는 허래허식 없는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어쩐지 두 사람의 대화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미영이 다른 친구와 함께 혜원이에게 '악성 재고'라고 칭하며 빨리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혜원이는 미영이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속에서는 묘한 갈등이 일고 있음이 내게 전달되었다. 친구를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자신이 이 자리에서 점점 작아지는 느낌을 받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와 혜원이는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나까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혜원이를 대변하고 싶은 마음이 연신 일렁였다. 누군가 상대의 현재 결핍을 타박하며 자랑이 지나칠 때면 포도나무 이야기를 떠올린다.


[ 어느 마을에 각자 다른 나무를 키우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한 사람은 포도나무를, 다른 사람은 감나무를, 또 다른 사람은 매실나무를 키웠다. 포도나무 주인은 매년 포도가 얼마나 달고 풍성한지 자랑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각자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를 돌보느라 그 자랑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포도나무 주인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자랑을 계속했다.

어느 날, 포도나무 주인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포도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열매를 돌보는 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그제야 포도나무 주인은 깨달았다. 각자의 나무에는 각자의 열매가 달리고, 그것을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 이야기 속에서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만 자꾸만 자기네 집 포도나무에 포도가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얼마나 맛있는지 말하는 것을 '자랑'이라고 부른다. 또, 아무도 맛보지 못한 포도를 계속 자랑하는 것을 '허세'라고 표현한다. 그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사람마다 취향도 다르고 입맛도 달라서 어떤 사람은 포도를 줘도 안 먹는다. 각자의 나무에는 다른 열매가 달려 있고, 각각 열매를 맺는 시기도 다르다. 그러니 남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다며 자랑하는 말들은 모두 망언일 뿐이다.


나는 미영의 포도나무 이야기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길 바랐다. 혜원이가 가진 열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서로가 가진 것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차이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나눌 수 있기를. 어쩌면 미영도 자신의 포도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열매의 맛을 보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작은 대화 속에서 서로의 나무를 더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결혼과 육아 이야기로 가득 찬 자리에서도, 각자의 삶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자라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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