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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바이러스

빛과 그림자 _ 8

by 루메제니

학창 시절 나는 꽤나 활발한 아이였다. 별명이 '해피바이러스'일 정도였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어도 웃고 즐겁게 노는 게 좋았다. 나 하나 망가져도 모두가 즐거우면 되다고 생각했다. 시험을 망친 날에도 망친 내 시험점수를 친구들과 시답잖은 농담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씁쓸한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 켜켜이 쌓이고 있었다. 늘 밝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애쓰다 보니, 점점 진짜 내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돌이켜보면, 실은 미움받는 것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항상 만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무거워졌다. 내 감정보다 남의 기분을 고려하는 내가 답답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매번 다른 친구 문제로 내가 하소연을 하던 친구에게 "적당히 좀 해, 지친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친구는 적잖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가 이 일로 나를 미워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큰일 날 줄 알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보다 진실된 나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글귀가 그제야 와닿았다. 그 계기로 내 마음에는 미움받을 용기가 싹텄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 이후로는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너 변했어."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한 번은 친구가 나를 소재로 던진 농담에 웃지 않고 진지하게 되받아 물으니 매우 당황해했다. 그러더니 예전에는 나를 만나면 항상 재밌고 즐거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 순간, 이 친구는 나를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로 생각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기대를 부응하려는 노력은 개인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유머가 있는 사람은 더 재미있게, 배려가 있는 사람은 더 착하게, 리더십 있는 사람은 더 챙기게 만든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마치 본인의 본질인 것처럼. 우리는 각자 사람들이 나에게 무엇을 우너하고 기대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것에 부응하는 내 모습은 나의 사회적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심리학적으로 '가면'을 의미한다. 이 가면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외적인 모습으로, 진정한 자아와는 다를 수 있다. 나답게 행동한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굴어서는 안 되지만, 가면 쓴 모습만을 원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공허하다. 위에서 언급한 친구와의 관계만 보아도 가면 뒤에 진짜 나를 보지 못한 관계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가면 아래 나를 먼저 돌보고, 필요할 때 가면을 쓸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누군가를 꼭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안절부절못하지 않는다. 조금 덜 착해도, 덜 챙겨도, 덜 웃겨도, 덜 예뻐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내 감정을 수용하고 스스로 나의 첫 번째 친구가 되어보자. 나다운 모습으로 온전할 때 다른 사람들과도 깊고 진정한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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