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도 수리가 필요해

빛과 그림자 _ 6

by 루메제니

얼마 전 커튼 수리를 받았다. 우리 집 커튼은 리모컨으로 조작하는 전동식인데, 몇 달 전부터 영 말썽이었다. 증상은 가지각색이었다. 리모컨 버튼을 몇 번이나 꾹꾹 눌러야 작동되기도 하고, 커튼이 내려오다 말기도 하고, 버벅거리며 양쪽의 높낮이가 다르게 내려오기도 했다. 나는 리모컨을 퍽퍽치며 수명을 다 한 애물단지 취급 했다.


수리 기사가 말했다. "커튼의 문제가 아니라, 커튼과 연결되어 있던 셋탑박스(인터넷 연결 장치)의 문제네요." 아! 기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전 셋탑박스에 문제가 생겨 기계를 변경했던 기억이 났다. 커튼은 사라져버린 기계의 신호를 찾느라 계속 버벅거렸던 거였다.


원인은 따로 있는데, 나는 커튼이 오래되엇 그런거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애꿎은 리모컨 버튼만 꽉꽉 누르면서 말이다. 커튼은 새로운 기계와 연결이 필요했다. 제대로 연결하니 애먹이던 증상은 말끔이 고쳐졌다.


나도 친구도 종종 버퍼링에 걸린 기계처럼 버벅거린다. 그럴 때면 나이가 들어서, 오래 살아서 그렇다고 애꿎은 미소를 짖는다. 나는 어쩌면 우리도 이미 곁을 떠난 것을 애타게 찾느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 삶에서 사라진 첫 사랑, 직장, 단골집, 단짝 친구... 이미 오래 전 떠난 것들.. 그때의 그 마음을 다시 찾아보아도 곱씹는 일이 전부다. 사람도 커튼처럼 연결만 새로하면 말끔히 고쳐지면 좋으련만 그럴리 만무하다.


그래도 사람답게 살아야 하니까, 곱씹고 그리워 하느라 생긴 고장을 조금씩 셀프 수리하며 살아야 한다. 지금 내게 맞는 신호가 무엇인지 찾아보는 시간으로. 내 주변을 살펴보는 일로. 현재에 집중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보여서 오늘도 잘 살았다.

keyword
이전 05화그런 사람도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