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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앤지 Sep 13. 2021

호주에 있어요. 이 시국에...

이 시국에 호주에 있는 이유

코로나 블루를 겪고 있는 중이다.

그 어디에서도, 그 무엇에서도 의미와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생활을 정리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 이 시기에 한국을 돌아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돌아가면 가족들의 환영은커녕, 짐짝 같은 존재가 될게 뻔하니 당장 먹고살 수 있는 거리가 있는 이곳에 있는 것보다 나은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코로나의 저주에 걸리기 전 내가 좋아했던 호주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돈만 많으면 어디든 살기 좋지.


라고 하기엔 개인적으로 호주는 돈이 많다면 딱히 살기 좋은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으면 돈을 쓰기 좋은 환경 속에서 지내는 것이 보람 있을 텐데 호주는 일단 돈을 쓸 곳이 그렇게 많지 않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패션에 민감하지도 않고 먹을 것들이 다양한 것도 아니고 자연과 관련된 것을 제외하면 할 것이 많은 것도 아니다. 워라밸을 워낙 중요시하는 정서라 쇼핑몰도 일주일에 한 번, 쇼핑데이를 제외하고는 오후 4~5시면 폐점이다. 우버 잇츠 같은 배달 서비스도 생기기는 했지만 시티 근처 거주자가 아니고서는 딱히 골라먹을 재미를 낼만한 종류도 없고 너무 멀어서 거의 없는 서비스 셈 쳐야 하는 환경.   

고객 서비스를 논하자면 Within 10 business days는 호주의 생활 서비스를 대표할 수 있는 말이다. 인터넷을 신청해도 물건을 주문해도 뭐가 고장이 나도 나의 타 들어가는 마음과는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2주는 기다릴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운전면허 신청하는 창구에서 접수를 마치면 바로 옆으로 가세요 하고 10분도 안돼서 바로 나오던데 여기는 예외 없이 Within 10 business days.)


이런 세상 여유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더할 나위 없이 평안한 인품에 감탄하며 지내기도 했었지만 코로나 초반에 이성을 잃은 사재기나, 그로 인한 싸움박질들이나 아시안 혐오 등의 사건사고들은 결국 이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이런 곳에 태어나 인생의 매운맛을 못 봐서 온순한 모양을 하고 있는 것뿐이지 이들이 우리나라에 태어났다면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 나라에 태어났다면 모두 다 그 상황에 적응된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짓게 해 주었다.


결국 '사람 사는   똑같아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호주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있다.




“ 야, 다 떠나서 같은 조건에 한 달 이상 휴가를 쓸 수 있는 회사에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부럽다.”

언젠가 휴가 차 한국에서 6주 동안 머물렀을 때 친구가 그랬다.


일하는 동안  Annual leave라는 것이 매주 시간 단위로 쌓이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쌓이면 원하는 시기에 유급 휴가로 사용할 수 있고  사용되지 않는 시간은 퇴사 시 퇴직금 개념으로 계산되어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120시간의 annual leave가 쌓여 있으면 하루에 8시간 근무로 계산되어 15일의 휴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회사 측에서는 나중에 큰돈 나가는 것보다 미리 휴가비로 지급하는 것을 더 선호해서 중간중간에 시간이 많이 쌓인 사람들에게 오히려 휴가 사용을 권고하기도 한다. 내가 현재 일하는 호텔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호주 내에 거의 모든 회사들이 그렇다.

상사들의 개인 성향이 있긴 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보스들은 휴가를 상의하는 것에 인상 쓰거나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여기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운전을 다 매너 있게 하네. "

가족들이 호주에 놀러 왔을 때 운전을 하던 형부가 감탄하며 했던 말이다.


이곳 사람들의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는 운전 매너들이 좋다는 것이다. 차선 변경 시 깜빡이만 잘 켜면 뒤차는 속도를 줄여가면서까지 나를 기다려주고 웬만해서는 '빵빵'소리를 거의 들을 수가 없다.


또 round about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신호등 대신으로 호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도로가 있는데 여기서는 ‘무조건 오른쪽 먼저’라는 교통 규칙과 round about 내 방향 지시등이 아주 아름답게 지켜지고 있어서 차가 아무리 많아도 아주 순조롭고 질서 정연하게 진행이 된다. 그래서 어떤 곳에서는 신호등보다 유용하고 잘 활용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구글 이미지에서 검색한 호주 round about


호주에서는 꼬리 물기를 거의 볼 수 없다. 앞의 신호 때문에 차들로 막혀 내 차가 가면 중간에 걸치게 될 듯하여 파란불이어도 가지 않고 멈춰서도 뒤에 차들을 그 어떤 불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들 그럴 때는 가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꼬리 물기로 인해 신호가 바뀌어도 차들로 꽉 막혀 있는 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호주에서 운전을 하면서 종종 이런 선진 교통문화를 가진 사람들 속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나 역시 되게 괜찮은 사람 같이 느껴진 적이 꽤 많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어줘.

오며 가며 수도 없이 스치게 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의 시선에서 서로 웃음으로 등질 수 있다는 것은 이 나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진 심적 여유의 정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서 한국은 모르는 사람들과 웬만하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설령 눈이 마주쳤다고 해도 아닌 척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돌리는 것이 각박한 도시생활 속 보이지 않는 매너 같이 느껴졌었는데 미소라니…  혼날라고…


KFC에서 치킨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서 주문한 음식을 받아가는 한 호주 언니가 본인이 주문한 콜라를 계산대에 두고 그냥 가려고 하길래

콜라 가져가셔야죠.”라고 말을 해주었다.


우리의 다음 행동은 어땠을까?

아마 그 상황에서 나였다면  “어머!” 하고 내 손의 음식을 확인하고 콜라를 받으러 갔었을 것이다.


그 언니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그 무엇도 하기 전에 내 눈을 또렷이 보고 ,

Thank you.” 말하고 자신의 손을 확인 한 뒤 뒤돌아서 콜라를 다시 가지러 갔다. 그리고 콜라까지 챙기고 지나가면서 다시 나의 눈을 보고 한번 더 찡긋 웃는다.


뭐야… 나 이거 영화에서 본 장면 같아.


공공기관에 뭘 신청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내 옆에서 폼을 작성하던 사람이 안경을 두고 가길래

안경 두고 가셨어요.” 하고 오지랖을 부린 적이 있었다.

안경은 그 언니의 것이 아니었다.


아마 나였다면  그냥 “그거 제거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나왔을 것이다. 뭐 상냥하게는 말했겠지. 나는 일단 웃는 상이니깐. (너는 어떻게 새벽 5시에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있니 참고)


그 언니 역시 나를 보며  “그거 제거 아니에요. 근데 어쨌든 고마워요("Oh It’s not mine but thank you though.”)라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본인을 생각해준 내 저의에 대해 굳이 고맙다고 말해주는 오늘 처음 본 사람이라니…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 이곳이, 이 사회가 참 친근하게 느껴졌었다. 대단한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뭔가 내가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마음을 들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 중의 행동들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찰나에 벌어진 순간에서도 상대방의 눈을 보고 고맙고 미안함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나?


이런 대화가 우리나라 사람들과 우리나라 말로 한다고 그려보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데 여기서는 참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물론 어딜 가나 난폭하고 이상한 사람들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운전 매너를 지닌 사람들이, 나를 보고 따듯하게 웃어주는 낯선 이들의 비율이 월등히 많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이 나에게 인상적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기의 이런 여유로움이 좋았다. 나의 휴가를 마음 편히 보내기 위해 너의 휴가를 응원하는 협동, 꼬리를 물지 않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아는 듯한 배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처음 봤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는 듯이 대해주는 온화한 시선과 한마디들이 한국에서 눈치 보며 이리저리 비교당하고 치이면서 살았던 나의 숨통을 트여주는 것 같았다.


숨을 쉬게 해 준다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시국에도 가족들도 못 만난 채 홀로 이곳에서 어떻게 서든 버텨 보겠다고 할 만한 가치들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런 아름다운 문화들이 다 필요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 자괴감에 빠져 지내고 있지만 지금 이렇게 글을 써보니 이 마저도 아니었으면 나의 하루는 이보다도 더 불행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네...



                                                                    2편 호주, 맑은 공기 이외의 무언가.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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