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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04. 2022

여행형 유전자

내가 만드는 나의 유전자

집이랑, 농담 아니고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있던 중학교를 오가던 시절의 일이다. 하루는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영어 선생님께서 우릴 향해 대뜸 말씀하셨다. 조만간 미국인 선생님 한 분이 우리 학교로 오실 예정이다. 그리고 학교는 그분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할 가정을 찾고 있다.


그즈음에서야 헬로, 하우아유, 아임파인땡큐앤유를 더듬더듬 외기 시작한 나는 이민을 간 사촌 언니와 오빠가 놀러 올 때면 나로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들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당시의 내 귀에는 한국어가 아닌 말은 대부분 영어로 들렸고 이러한 이유로 사촌들이 하는 말이 실제로는 제3의 언어라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한 채 나도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참이었다. 그 미국인 선생님이라면, 그분과 함께 살 수만 있다면 나의 소원은 금세 이루어질 텐데!


영어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가셨다.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인 줄 아니? 너희 반이 1교시가 영어인 덕분에 이 소식을 가장 먼저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만약 여기에서 자원자가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에 가서 같은 이야기를 생각이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그 말씀은 일종의 홈쇼핑 마감 임박 멘트와도 같은 효과를 불러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마음이 급해진 내가 손을 번쩍 들고 우리 집은 학교와 매우 가깝고 마침 남는 방도 있으니 그 미국인 선생님이 우리 집에서 머무르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집에 남는 방은 없었다. 하지만 나와 동생이 함께 쓰던 방을 비우고 할머니가 지내시는 방으로 옮겨간다면 우리의 방이 남는 방이 될 것이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녔다고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은 그것 참 잘 되었다며 기뻐하셨고 내 머릿속은 어느새 사촌들 앞에서 쏼라쏼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나의 멋진 모습으로 가득 차고 말았다.


그렇게 환희에 휩싸인 가운데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그제야 내가 엄청난 일을 벌였구나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꾸중을 들을 생각에 두려워진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공중전화를 붙잡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쥐새끼만 한 목소리로 오늘 점심시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두어 시간 정도 후에 내가 영어 선생님이랑 교감 선생님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갈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수화기 너머로 당황하는 기색이 느껴졌으나 다행히 엄마는 크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달 후, 일은 여차저차 처리되어 조이아나라는 이름을 지닌 미국인 선생님이 정말로 우리 자매가 지내던 방에서 살게 되었다.


조이아나 선생님은 여행을 좋아하셨다. 원래부터도 피부가 하얀 편은 아니었지만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 속 그녀의 피부는 짙은 갈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미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호주의 울루루에서 찍은 사진을 우리 자매에게 보여주며 그 여행들이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사진 속 선생님은 언제나 하얀 치아를 시원하게 드러낸 채 웃고 있었고 그 배경이라는 곳들은 지구가 아닌, 저 먼 우주 어딘가를 연상시켰다.


그때까지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어린 나에게는 활짝 웃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선생님도 배경이 된 공간들도 너무나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동시에, 그 장소들을 내 발로 찾아가 사실은 그것들이 손에 잡히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싶어졌다. 그렇게 선생님의 사진 속 신비한 세상을 들여다보던 단발머리 중학생은 나도 언젠가 어른이 되면 저런 곳에 직접 가보고 말리라 결심을 했다.


지방 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터라 어린 시절의 나는 내 고향 너머의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원하는 공부를 해보겠다며 혼자서 고향을 떠나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취미로 또는 전공으로 외국어를 배워 결국엔 언어와 관련된 직업을 찾고 한국 밖 세상이 궁금해 이 나라 저 나라를 꾸준히 여행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근원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고향집 앞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철없는 아이로 되돌아간다.


만으로 사십이 넘은 지금의 나는 삼십 년 전 꿈꾸던 나의 모습과 조금은 닮았고 또 조금은 닮지 않은 어른으로 성장해 있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조이아나 선생님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린 시절의 내가 가보고 싶었던 많은 곳들을 직접 걸어보며 그 공간들을 에, 그리고 마음담아 보기도 했다.

물론,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것들도 많다. 하지만 그것들을 여기에 구구절절 적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기록이 기억을 지배하는 날이 올 텐데 아쉬운 마음까지 굳이 품고 가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내가 이루지 못했던 꿈을 미래의 내가 이룰 수도 있으므로 실패의 기록을 성급하게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 하다.


몇 년 전부터 남편은 가끔씩 나를 "아이고, 어머님!"이라고 부른다. 나의 생김새가 내 친정 엄마를 똑 닮았다는 거다. 장난 섞인 말투지만 그것이 온전히 장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알고는 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바라볼  그곳에 내가 아닌 나의 엄마가 서 있는듯해 내 입에서도 "아이고, 엄마!" 소리가 절로 나오는 날이 있으니.


유전자는 타고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아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라는 의미다. 나라는 인간을 이루는 많은 부분도 내 부모로부터 전달받은 유전자의 산물일 테다. 그러나 생김새도 걸음걸이도 때로는 말투까지도 문득문득 내 엄마,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중년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루는 모든 것이 물려받은 것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가령 한때는 방랑벽이라고도 불리던,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나의 성향이 그러하다. 그것은 이제껏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작고 작은 일들이 모여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테니까.


그래서 난, 내가 만든 나의 성향에도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여행형 유전자라는 이름을.


위는 두렵지만 뽀얀 눈 때문에 나는 언제나 겨울이 좋았다. 눈, 그것은 처음에는 이것이 정말 내가 손꼽아 기다려온 그것일까 싶게 가루처럼 허무하게 흩날리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커다랗고 단단한 눈사람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 둘 모인 작은 눈꽃 송이들이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과거의 티끌만큼 작은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특별할 것 없이 흘러가는 것만 같은 바로 지금 이 순간도 분명, 내 미래의 모습을 만드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리라. 먼 훗날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의 눈사람으로 완성이 될까. 과거의 여행을 더듬는 오늘의 나는, 그것이 늘 궁금하다.


그랜드 캐니언. 저 먼 우주 어딘가를 연상시키던 바로 그곳에 직접 다녀왔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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