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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05. 2022

내가 베로나에 간 까닭은

어떤 여행은 떠밀려 시작된다

"야! 고린내 나게 돈을 양말에 넣으면 어떻게 해!"


그땐 몰랐다. 그 냄새나는 돈 덕분에 살아남게 될 줄은.


우리 자매는 북유럽에서 시작해 남유럽으로 이어지는 배낭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몸무게가 겨우 사십 킬로그램 중반 남짓 되는 여자애 둘이 각자 십오 킬로그램이 훌쩍 넘는 무게의 짐을 지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한 달쯤 돌아다녔던 터라 체력 보강이 절실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독일에 살고 계시는 고모를 찾아가 며칠 쉬고 이탈리아로 내려가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고등학교 방학을 맞이해 한국에서부터 날아온 사촌동생이 이어지는 여행을 함께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생김새는 멀끔한 그 아이가 돈을 안전하게 보관한답시고 양말 발바닥에 넣는 것을 보고 우리 자매가 한 소리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지? 평소에는 누나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던 애가 그날만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우린 떠날 시간도 다 되었으니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일단 로마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가이드북에는 프랑크푸르트발 로마행 밤기차엔 유독 소매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쓰여있었다. 단단히 긴장을 한 우리 셋은 컴파트먼트 하나를 통째로 맡고는 밤이 이슥해지자 복도 쪽으로 난 문에 커튼까지 쳐서 바깥에서 우리가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그러고는 마주 보고 있는 의자들을 가운데로 잡아당겨 침대 형태로 만든 후, 그 위에 쪼르륵 누웠다. 문에 잠금장치가 없어 아예 잠가 버리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쉬웠지만 소매치기고 뭐고 이 정도면 모든 것에 완벽하게 대비된 것만 같았다. 순진한 이십 대 초반 두 명과 십 대 후반 한 명은 그렇게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내일부터 펼쳐질 환상적인 여행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하나, 둘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 아이는 나를 향해 무어라 외치고 있었는데 그날로부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떠올려 보아도 여전히 섬뜩하게 다가오는 그 말은 바로,

"언니, 가방이 없어졌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언제 어디에서나 숙면을 취하는 재능이 있는 나는 한 번 잠들면 쉽사리 깨지 않는다. 하지만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는 꿈나라를 헤매던 나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 단 번에 현실세계로 끌고 왔고 깜짝 놀란  머리맡에 두었던 작은 가방 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리 셋의 한 달 간의 여행을 책임질 기차 패스와 현금이 들어 있던 소중한 가방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아무것도 만져지는 게 없었다.


동생 왈, 자고 있는데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북유럽 왕자님 세 명이 자기를 내려다보는 느낌이 들었다는 거였다. 여기까지는 지난 한 달 간의 북유럽 여행의 여파이겠거니 했단다. 그런데 진짜로 기분이 이상해서 눈을 떠보니 누군가 앞으로 뻗었던 시커먼 손 같은 것을 쑥 빼가며 "Sorry!"라는 말을 남긴 채 컴파트먼트 문을 닫았고 그러고 나서 보니까 가방이 없더라는 이야기였다. 잠귀는 밝지만 안경 없이는 한 치 앞도 못 보던 동생은 그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에서 세 시로 넘어갈 즈음이었다. 칠흑처럼 어두운 밤, 낯선 곳에서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기차 안. 도둑이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적 드문 복도로 향하는 것부터가 오금이 저리도록 무섭긴 했지만 기차 패스라도 되찾아야 여행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몹쓸 도둑들이 현금은 가져간다 치더라도 우리 이름 석 자가 떡 하니 적힌 패스는 어차피 사용하지도 못할 테니 기차 안 어딘가에 버리지 않았을까? 나는 동생들에게 문 꼭 닫고 기다리라고 말하곤 비장한 마음으로 복도로 나가 표를 검사하고 다니던 아저씨를 찾았다. 사정을 들은 아저씨가 감사하게도 기차 맨 앞칸부터 마지막 칸까지에 비치된 모든 휴지통을 뒤져주셨지만 기차 패스도 돈도 가방도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돈은 사촌동생의 발바닥에 있던 소량의 돈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기차는 로마 떼르미니 역에 도착해 있었다.


이 사건 때문에 우리의 야심 찬 여행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탈리아를 먼저 둘러보고 배를 타고 그리스로 넘어갔다가 나중에는 이베리아 반도까지 둘러볼 꿈을 꿨지만 이탈리아에만 머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밥 먹을 돈도 넉넉하지 않아 맥도널드에서 제일 싼 햄버거 세트 한 개와 버거 단품 한 개를 주문해 셋이 나누어 먹어가며 버텨야 했다.

잃어버린 돈의 일부라도, 아니, 어젯밤에 개시한 기차 패스라도 되찾을 수 없을까 싶은 절박한 마음에 떼르미니 역 경찰서를 며칠 동안이나 찾아갔건만 서류만 잔뜩 작성하게 하더니 결국은 너희 나라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답을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물어 물어 한국 대사관을 찾아갔더니 그곳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보험사에 연락을 해보라 했다. 도둑맞은 사람이 로마 천지에 어디 우리뿐이겠거니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지만 그 대답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마음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경찰서와 대사관으로부터는 도움을 얻기 힘들다는 실을 깨달은 우리는 이번에는 보험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햇병아리들이었던 탓에 보험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면 사건이 빠르게 해결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찾아가야 할 곳은 베로나(Verona)에 있었다.


로마에서 베로나까지는 기차로 꽤나 먼 거리였지만 밥 먹을 돈도 없는 판에 기차표를 살 돈이 있을 리가 있나. 사실 도둑은 제 직업에 충실했을 뿐 부주의했던 것은 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상황에까지 이르고 나니 그동안 참고 참았던 무언가가 폭발해 버렸다. 기대를 가득 안고 유럽에까지 왔을 텐데 나 때문에 여행을 망쳐버린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어찌 되었든 연장자이자 이 여행의 리더로서 동생들을 끝까지 잘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온갖 감정을 꾹꾹 눌러 참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은 무리였다.


밑져야 본전이다 생각하고 나는 다시 한번 떼르미니 역으로 향했다. 그리곤 지난 며칠간 출근도장을 찍을 기세로 자주 방문한 덕에 안면을 튼 경찰관 아저씨를 찾아가 당신네 나라 도둑 때문에 이 사달이 나서 우리가 지금 베로나로 가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기차라도 그냥 타게 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너무나도 흔쾌히 그렇게 해주겠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우린, 공짜 기차를 타고 베로나로 향했다.


화가 덜 풀린 채 도착한 베로나는 억울하게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오페라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보험사는 여름휴가 중인지 문을 닫아 건 상태였고 숙소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던 우리의 눈에 그날 밤 진행되는 오페라 티켓을 싼 값에 주겠다며 다가오는 아저씨들이 들어왔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오페라나 보러 가자.


어둠이 찾아온 아레나 디 베로나(Arena di Verona, Verona Arena)는 손에 손에 촛불을 든 관객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둠을 밝히는 촛불만큼이나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는 오페라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지만 며칠째 강행군을 한 우리 셋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특히 나는 오페라의 시작과 마지막 부분만 아주 조금 기억이 날 정도로 내내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지금도 그날의 아레나 디 베로나를 떠올리노라면 점심 직후 5교시 수업시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고뇌의 헤드뱅잉을 선사하던  민망한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아직도 가끔, 이제는 운행하지 않는 프랑크푸르트발 로마행 밤기차가 떠오른다. 그리고 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던 오페라는 얼마나 멋졌을까를 상상한다. 동생들과 언덕 위 캠핑장에서 베로나 시내를 내려다보며 지낸 며칠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베로나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베로나에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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