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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1. 2022

카트만두에서 온 편지

당신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빕니다

당신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빕니다.


이 문장으로 끝맺는 이메일 한 통을 받았던 날을 기억한다. 오래전 여름, 나는 친구 자매와 함께 네팔로 향했었고 내가 받은 이메일은 그 여행에서 만난 이가 보내온 것이었다.


나는 그를 카트만두(Kathmandu) 두르바르 광장에 있는 쿠마리(Kumari, The Living Goddess)의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는 그 일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관광 가이드 중 한 명이었다.

쿠마리, 또는 쿠마리 데비로 불리는 존재는 네팔의 힌두교도와 불교도에 의해 숭배되는 살아있는 여신이다. 매우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 선발된 소녀가 쿠마리가 될 수 있으며 이 전통은 무려 10세기경부터 이어져 왔다고 다. 네팔까지 왔는데 쿠마리의 얼굴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두르바르 광장을 어슬렁거리던 우리 일행에게 그는 가이드 서비스를 제안하며 다가왔.


쿠마리의 집 앞은 그녀가 살고 있다는 곳을 목이 빠지게 올려다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 여신이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이던가. 쿠마리는 신성한 탓에 제 얼굴을 함부로 노출하지 않는다 했다. 몇 시간을 기다리고도 신성한 소녀의 치맛자락도 못 보고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운이 좋아야 그 얼굴을 몇 초 볼 수 있다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이 쿠마리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마침 가이드 비용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 우리는 그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정말로 그가 손을 쓴 것인지 아니면 단지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그날 정말로 쿠마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삼십 분도 채 기다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쿠마리가 제 얼굴을 두 번이나 우리 앞에 내어 놓을 줄이야! 열린 창문 사이로 빼꼼히 나타났다 금세 사라져 버린 얼굴은 그저 평범한 어린 여자아이의 얼굴처럼 보였다. 누가 찾아왔는지 궁금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잠깐 밖을 훔쳐보고 사라져 버리는 듯한 장난스러움까지 묻어나는 그 작은 얼굴을 봤다고 해서 힌두교도도 불교도도 아닌 나의 인생이 달라질 리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성취하지 못하는 것을 운으로 얻어냈을 때의 기쁨에 흡족했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을 가능하도록 도와준 그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다.


부탁할 게 무어냐고 묻자 그는 가방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봉투 하나를 꺼냈다. 얼마나 오래 들고 다녔는지 때가 까맣게 탄 그 봉투 안에는 고이 접은 봉투 하나가 더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봉투에서는 놀랍게도 이마트 상품권이 나왔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이마트라는 곳이 우리 집에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냐고. 나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한국어가 떡하니 박혀 있는 상품권을 꺼내는 네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조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마트는 이곳저곳에 있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도 하나 있다고 대답했다.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이 상품권은 한국의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모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네팔에 들른 미국인이 한국을 떠나는 날 받은 선물입니다."


아니, 한국에 평생 살 것도 아닌 외국인에게, 그것도 떠나는 날, 현금도 아니고 이마트 상품권을 선물로 주는 사람도 있나? 조금 웃기다고 생각하며 나는 이어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내가 그 사람을 가이드해줬고 가이드 비용으로 이 상품권을 받았습니다."


아니, 내가 잘못 들었나? 뭐라고? 한국에서만 쓸 수 있는 상품권을 왜 네팔에서 가이드하는 사람한테 줘? 점점 더 어이가 없어졌지만 일단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네팔에서는 이 상품권을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이 상품권을 한국으로 가져가 정말로 쓸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고 나에게 이 종이에 적힌 금액을 송금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해주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서 말인데 내가 그 일을 좀 맡아주면 안 되겠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마트에 가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라 해도 송금을 하려면 은행에도 가야 하고 그걸 하자고 근무 시간에 사무실을 빠져나오기는 힘드니 결국 점심시간을 쪼개 은행에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긴데...

부탁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던 나였다. 그런데 점점 귀찮은 마음이 고마움을 덮어버리기 시작했다. 아니, 톡 까놓고 말하자면 내쪽에서 가이드를 요청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먼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던가, 그리고 나는 이미 그에 대한 비용도 지불했는데.


하필이면 나를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나까지 싫다고 하면 이 사람은 또 네팔을 방문한 한국인을 찾아서 지금보다 더 꼬깃꼬깃해지고 더 때가 타있을 종이봉투를 꺼내 똑같은 설명을 구구절절해야 하겠지. 그러다가 저 상품권이 만료되어 버리면 어쩌지?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에이, 모르겠다, 그냥 내가 해줄게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런 사연으로 나는 그 상품권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마트에서 다 써버린 후 점심을 거르고 회사 근처 은행에 가서 상품권 액수만큼의 돈을 카트만두에서 목이 빠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그에게 송금했다. 내가 받은 이메일은 그것에 대한 대답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빕니다.'라는 문장을 마주할 때가 있었다. 다른 종교를 지닌 나에게는 그 문장이 클리셰였을 뿐, 마음 깊이 와닿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카트만두의 그로부터 도착한 길고 긴 이메일과 그것을 맺는 문장을 읽고는 왜 그리 마음이 철렁하든지. 자신이 믿는 신이 당신의 앞날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지켜줄 것이라 말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그의 요청이 귀찮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사실이 너무나도 미안하. 이제는 소식이 끊긴 그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빈다.


이제는 소식이 끊긴 그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함께하길 진심으로 빈다.

여행 팁


쿠마리(Kumari), 또는 쿠마리 데비(Kumari Devi)로 불리는 존재는 네팔의 힌두교도와 불교도에 의해 숭배되는 살아있는 여신(living goddess)이다. 상당히 엄격한 과정을 통해 선발된 어린 소녀가 쿠마리가 되는데 여신의 몸에서 피가 나오면 부정을 탄다는 믿음 때문에 초경을 시작한 쿠마리는 제 자리를 다음 대 쿠마리에서 내어 주어야 한단다. 네팔 전역에서 이 전통을 따르지는 않고 카트만두, 박타푸르, 랄리푸르 등 소수의 지역에서만 자체적으로 뽑은 쿠마리를 모시고 있다고 한다.


외부자로서 타문화를 섣불리 비판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살아있는 여신으로서의 쿠마리의 삶은 녹록하지 않아 보인다. 서너 살 정도의 어린 소녀가 쿠마리가 되는 순간, 아이는 평범한 삶에 작별을 고해야 한다. 쿠마리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 동안 소녀는 빨간색과 황금색으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이마에 붉은 칠을 하고 눈에는 강렬한 아이라인을 그린다. 어린 소녀는 부모를 떠나 쿠마리의 집에서 지내야 하는데 특별한 의식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늘 그곳에 머물러야 하며 그녀의 온몸은 신성하기에 제 발로 을 딛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집 안에서조차 직접 걷는 것은 허락되지 않기에 쿠마리로서의 삶을 마무리해야 할 즈음에는 스스로 걷는 법을 잊어버려 다시 걷는 방법을 배워야 할 정도라고.

10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는 쿠마리의 전통은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 현대의 쿠마리들은 여신으로서의 임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는 교육을 받을 수도 있고 부모와 함께 지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이 힘겨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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