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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0. 2022

쉿! 비밀 대방출!

한 시간 반 만에 학위 따는 법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비밀스러워 공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깊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담아 큰 결심을 내린 것이니 부디 그 마음, 헤아려 주시길 바라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시작해보겠다.


고백하건대, 나는 가방끈이 긴 남자 둘과 살고 있다. 지난 2019년, 남편은 네 번째 학위를 받았고 여행이는, 그러니까 당시 만 네 살이었던 우리의 아이는 인생 첫 학위를 받았다. 한때는 총명하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었을 법하지만 사십이 넘어가면서 어린 시절의 반짝이는 두뇌를 조금 상실한듯해 보이는 나의 배우자와 아직 한참 배움이 부족할 나이인 어린 여행이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학위를 따게 되었을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입학부터 학위 취득까지 걸린 시간이 단 한 시간 반이었다는 것인데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일일까? 지금 이 사람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허튼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니까. 하지만 맹세컨대 나는 거짓말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자, 지금부터 그들이 초고속으로 학위를 취득한 방법을 대방출하겠으니 급하게 학위가 필요한 분들은 여기를 주목하시라!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조금 귀찮더라도 해외로 나가야 한다. 다행히 목적지는 일본으로 멀지 않다. 이 비밀스러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장소는 카가와현 다카마쓰(高松, Takamatsu)에 자리한 나카노 우동학교 다카마쓰점(中野うどん学校 高松校)이다.


혹시 사누키 우동(讃岐うどん)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일본 하면 우동, 우동하면 사누키라는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이 없다면 내가 하나 만들어 주고 싶을 만큼 사누키 우동은 널리 사랑받고 있다. 이 우동이 탄생한 사누키 지역은 예로부터 강우량이 적은 탓에 벼농사보다 밀농사에 적합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밀 생산지가 되었는데 이후, 재배한 곡식으로 우동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탱탱하고 쫄깃한 면발의 유명세는 사누키를 넘어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누키 지방이 바로 오늘날의 카가와현(香川県, Kagawa ken), 우리가 학위를 따러 다녀와야 할 곳이다.


카가와현의 관문은 현청 소재지인 다카마쓰. 나카노 우동학교 다카마쓰점에서 다카마쓰 공항까지의 거리는 불과 15분으로 매우 가깝다. 그러므로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라도 속전속결로 학위를 따고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겠다. 하지만 급한 사정 따위는 없었던 우리 가족은 카가와현과 에히메현을 도는 여행을 마무리하던 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에 학교로 향했다. 학위를 따고 바로 공항으로 직행할 예정이었으므로 둘 사이의 이동시간과 학위 취득에 소요되는 시간을 미리 계산해 한국에서부터 교육시간을 예약하고 갔다.


예약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카노 우동학교 웹페이지(http://nakanoya.net/school/form_foreigner/)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온라인 예약 폼을 작성해 보내면 예약 확정 이메일이 되돌아오는 방식이다. 구식 시스템처럼 느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학교 측에서 수타 우동면을 만드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한 단계 한 단계 정성을 다해 수작업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니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게다가 사람이 직접 처리하는 것 치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답장을 받아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국제적인 학위 수여 기관답게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도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으니 고것 참 완벽하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박식해지고 싶은 생각에 부푼 마음을 안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학위 욕심에 눈빛이 이글거리는 자들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건물은 2층인가 3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1층에 자리한 교실 옆 넓은 공간은 우동 관련 각종 기념품들을 파는 공간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예약을 확인하고 교육비를 결제한 후 강의가 시작되길 기다리면서 우리 모두는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깐, 아주 잠깐 그곳을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아뿔싸! 또다시 지름신의 강림을 받고 말았다. 아놔. 아직 학위도 못 땄는데!


의도치 않게 두 손 무겁게 봉지를 들게 된 우리는 학교의 다른 공간을 마저 둘러보기로 했다. 벽에는 뉘신지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유명할 것 같은 분들이 다녀갔다는 증거를 서명으로 남겨둔 흔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런데 자, 잠깐. 저 얼굴은! 세상에, 대장금도 이곳엘 다녀갔다지 뭔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대장금 씨랑 동문까지 될 수 있다니. 학교를 제대로 골랐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된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되었고 학생들은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삼삼오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테이블마다 밀가루와 물, 도마와 칼 등이 정갈하게 놓여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은 유창한 일본어로 설명을 시작하셨는데 그것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우리 같은 외국인 학생들은 눈치껏 선생님의 제스처와 손짓을 참고해 강의를 따라가야만 했다. 하지만 낙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자애로우신 선생님께서 수업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매의 눈으로 잡아내어 개인 지도를 해주시니까.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반죽을 섞는 데 있었다. 손으로 대충 조물락대던 반죽을 비닐에 넣고 발로 밟는 단계다. 그런데 그것을 조선시대 양반처럼 품위 있게 밟는 게 아니라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밟아야 하는데 흥을 돋우기 위해 학교 측에서 탬버린까지 나눠주는 바람에 강의장은 순간, 환락의 고속버스 안으로 변신하고 만다.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 학생들이 무아지경이 되어 춤을 추는 동안 발바닥 아래 밀가루는 쫀득쫀득 찰진 덩어리로 재탄생한다.

이제 그것을 칼로 잘라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우동면발 모양으로 만들 차례. 강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여기까지만 하면 놀랍게도 학위를 받을 순서란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돌돌 말린 학위증을 받아 휘리릭 펼쳐 보니 세상에, 안에 받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선생님께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여쭤 보았다. 그랬더니 이름은 집에 가서 직접 쓰란다. 아... 이렇게 학위 판매까지 가능한 시스템인가...


면학분위기에 젖어 있느라 몰랐는데 학위를 받고 나니 그제야 배가 고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돈을 조금만 더 내면 방금 전 직접 만든 우동면을 학교에서 끓여 먹을 수도 있으니. 역시 돈이라면 안 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이제 갓 학위를 받은 자들이 만든 탓에 생김새는 몹시 어설펐으나 맛은 놀랍게도, 정말 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좋았던 우동. 그것을 후루룩 후루룩 요란스레 입속으로 빨아들이며 우린 카가와가 괜히 우동으로 유명한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남은 우동면은 집으로 싸갈 수도 있는데 며칠이나 지난 후에 끓여먹어도 여전히 꿀맛데스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카노 우동학교 다카마쓰점을 당당히 추천하고자 한다. 학위 급하게 필요하신 분!


학위를 따내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지를 잊어야 했다.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다.

여행 팁


나카노 우동학교(中野うどん学校)는 다카마쓰점(高松校)과 고토히라점(琴平校), 두 개 지점이 있다. 입국일 또는 출국일에 우동학교를 방문하고자 한다면 다카마쓰 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다카마쓰점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입출국 일시를 고려해 우동학교 공식 웹페이지에서 미리 수업에 참여할 날짜와 시간을 예약해 두고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우동 만들기부터 직접 만든 면으로 우동을 끓여 먹는 것까지 넉넉 잡아 2시간은 예상해야 한다.


주소(다카마쓰점):  〒761-8081 Kagawa, Takamatsu, Nariaicho, 8, Japan

웹페이지: http://www.nakanoya.net/takamat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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