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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Oct 13. 2022

우리가 떠오르는 해를 함께 맞이한다는 것

다낭의 해돋이, 그리고

어제도 떴고 내일도 변함없이 뜰 해를 왜 그리 자주 보러 나가자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었다.


집에서도 새벽같이 일어나 바깥을 바라보는 그는 여행지에만 가면 더욱 기를 쓰고 새벽 나들이를 하고 싶어 했다. 잘 자고 있는 나를 왜 깨우는 거야. 호텔 방에 앉아서 창문으로도 볼 수 있는 해를 왜 굳이 바깥에 가서 봐야 하는 거냐고. 아침잠이 많은 내가 몇 번 핀잔을 주고 누운 자세 그대로 꾸무럭거리자 해돋이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혼자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가 다 뜬 후에는 아직 덜 데워진 아침 공기를 마시며 근처를 산책하기도 하는 눈치였다. 함께 누리려고 온 여행지에서 새벽마다 혼자 헤매고 다닐 그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를 따라나서기엔 나의 눈꺼풀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이었다.


신혼 초에 우리 부부는 베트남의 다낭(Da Nang)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대한항공이 다낭으로 신규 취항한 직후였다. 남북으로 길쭉하게 생긴 베트남의 가운데쯤 위치한 다낭은 이 나라 중부지역에서 가장 큰 상업도시라 했다. 아직 관광지로서는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도시는 한적했고 베트남어로 쓰인 간판이 즐비해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긴 거리마저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다낭의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하나, 둘 들어서던 참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많지 않은 객실 전체가 독채형 풀빌라로 구성된 아름답고 평온한 리조트를 선택해 짐을 풀었다. 리조트 바로 앞에는 하얀 모래가 반짝이는 해변이 펼쳐져 있었다.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감상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다음 날 새벽 일찍 나를 흔들어 깨우더니 해돋이를 보러 나가자 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보다 온순했던 나는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아침잠의 집요한 손길을 뿌리치고 그를 따라 새벽의 바닷가로 나갔다.


깜깜했던 바다 저 끝이 수평선 가까이에서부터 선홍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더니 작고 빨간 점 하나가 물 위로 솟아올랐다.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떠 있었는데 그 사이로 숨었다 나왔다 하면서 점점 위로 솟아오르던 해가 어느새 해변 전체를 타는듯한 붉은색으로 바꾸며 이내 환한 아침의 빛을 내려주기 시작했다.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해변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고 덩달아 파도도 센 편이었다. 우리 부부가 가장 먼저 일어난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먼저 아침을 누리는 이들도 있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그들은 타고 온 오토바이를 모래밭에 세워둔 채 바다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지 아니면 그냥 물놀이를 하는 건지,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또 몇몇은 해변을 따라 달리기를 하면서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침대에서 빠져나올 때는 비몽사몽이었지만 해돋이를 보면서 정신을 되찾은 나도 바다로 슬금슬금 들어가 보았다. 과연 파도가 세서 입고 간 치마 아랫자락이 다 젖어버렸지만 즐거웠다. 이런 게 해돋이 구경이라면 매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 물론 이런 생각은 그다음 날 아침에 단잠을 자다 보니 도로 쏙 들어가 버리긴 했지만.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흘러 어느덧 우리는 만으로도 10년을 꽉 채워 함께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아직도 종종 어제도 떴고 내일도 뜰 아침해를 바라본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은 마음으로 또 어떤 날은 떨쳐버릴 수 없는 고민을 안고 하루의 시작을 맞이하는 것 같다.

결혼 초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도 남편과 함께 해돋이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셨는데 그때마다 여쭤보면 나이가 들면 원래 아침잠이 없어져라고 답하시곤 했었다. 과연! 한 살 두 살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침마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잠이라는 녀석이 게을러지는 게 느껴진. 덧붙여 나의 삶 이외에도 어린 여행이의 생활까지 챙겨야 하는 엄마가 되고 보니 새벽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만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생각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생겼다. 이렇게 나이와 아침잠을 맞바꾼 요즘의 나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도 여전히 그런 나의 곁에서 무언가를 한다.


오래전 베트남의 다낭에서처럼 거창한 해돋이를 함께 바라보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지금처럼 누구는 거실에서 누구는 안방에서 따로 할 일을 하다가 뒤늦게야 잘 잤어? 짧게 묻고는 각자의 일로 돌아간대도 같은 집에서 우리가 떠오르는 해를 함께 맞이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감사한 삶이 아닌가.


파도가 세서 치마의 아랫자락이 다 젖어버렸지만 즐거웠다.
이런 게 해돋이 구경이라면 매일이라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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