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가족

열 살 터울입니다

by 여행하는가족

“포인트 적립할게요.”

“네. 전화번호 불러주세요.”

“…050에… 음…050….”

“네~.”

“그러니까, 050…5… 음….”

“….”

“어… 한동안 제가 두바이를 떠나 있었더니… 번호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다… 다음에 할게요.”


며칠 전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 나는 크게 당황을 하고 말았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에서 문자 그대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가게라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자주 가던 곳이었다. 계산할 때 요청하면 결제금액의 일부를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적립해 주기도 하는 터라 무언가를 살 때마다 티끌 모아 태산을 쌓겠다는 마음으로 잊지 않고 포인트를 적립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수없이 섰던 그 카운터 앞에서 수없이 불러줬던 내 핸드폰 번호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다니! 대부분의 한국 핸드폰 번호가 010으로 시작하듯 아랍에미리트는 050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대다수다. 그렇기에 의도하지 않아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보거나 듣게 되는 숫자이건만 그날만은 어쩐 일인지 그 흔한 세 자리마저 긴가민가해서 한참을 더듬거리다가 바로 뒤에 서서 기다리던 아주머니의 깊은 한숨 소리에 마음이 쪼그라들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물러서고 만 것이었다. 포인트, 그쯤 적립 못해도 그만이다. 그렇지만 수 백 번도 더 입 밖으로 내뱉었던 번호가 생각나지 않을 때의 그 무력감이란. 내 번호를 내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두바이를 떠나 있느라 전화번호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구차한 거짓말까지 덧붙이고 말았다. 떠나 있긴 어딜 떠나 있어. 내내 두바이에 있었으면서. 흑.


나는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니었다(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뇌도 안 쓰면 늙는다더니 과연! 예전 같지 않은 기억력을 걱정하며 혹시 치매 초기 단계는 아닐까 두려워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말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으니 너무 걱정 말라고, 최근에 시작된 일은 아닌 것 같고 유미는 신혼 때도 지금이랑 똑같았다며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는 게 분명한 뇌세포가 충격으로 열 개쯤은 더 파괴될 것만 같아 잠시 정말로 남의 편처럼 보이는 남편에게는 한탄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우리의 첫째 아이, 여행이와 이제 몇 달 후면 태어날 둘째, 바다를 생각하기로 했다. 얼마나 효성이 지극한 아이들인가! 기억력 감퇴로 고생하는 엄마가 기억하기 쉽도록 더도 더도 말고 딱 10년 차이로 찾아와 주다니!


열 살 터울

동생은 내가 태어나고 2년 후에 태어났다. 뒤돌아 보면 내 어린 시절의 친구들도 대부분 두 살 터울의 형제나 자매를 가진 아이들이었다. ‘자녀는 2년 간격으로 두 명을 낳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지침서라도 부모님들끼리 돌려 읽으신 것인지, 신기하게도 내 주변은 거의 다 그랬다. 자주 접하면 그게 당연한 것이고 그게 가장 옳은 것이라는 마음이 들기 마련. 수많은 두 살 터울들 사이에서 살아오다 보니 내 마음속에도 ‘만약 아이를 낳게 된다면 2년 터울로 둘을 낳아야지.’라는 생각이 싹텄던 것 같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인생이 아니지. 나의 야무진 생각은 계획과 실행의 부재로 인해 물거품이 된 지 오래였고 셋으로서의 삶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내가 그리던 가족의 모습과는 다른 그림으로 우리 가족의 풍경이 완성되게 되었다. 여행이를 낳은 것은 2014년의 일이고 바다는 2024년에 출산할 예정이니 두 아이의 나이 차는 꼭 열 살이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먼 훗날까지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하지만 열 살이라니, 한 자릿수 나이 차도 아니고 두 자릿수 터울이라니.


나와 내 동생


어릴 적에는 두 살 차이도 마치 건널 수 없는 강처럼 어마어마하게 느껴졌었다. 고작 두 살 많은 여섯 살의 나는 이미 언니의 포즈와 표정을 장착한 채 어른 노릇을 했을 것이고 네 살의 내 동생은 아우의 마음과 표정으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마치 진리인양 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둘은 친구처럼 되어갔다. 마흔이 넘으면 내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하는 마당에 한 두 살이 뭐 그리 중요하리. 게다가 아주 어릴 적부터 공유해 온 많고 많은 추억들은 각자 가정을 이루고 한 명은 한국에서 나머지 한 명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이를 잇는 튼튼한 다리가 되어주고 있다. 원할 때면 언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힘든 일이 있으면 서로 조언을 해주고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해 줄 수 있는 자매 사이. 내 동생 덕분에 나는 늘 든든하고 감사하다.


그런데 만약, 우리 둘의 나이 차이가 열 살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대도 우리가 지금처럼 편안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을까?


우리는 특별한 가족

몇 년 전부터 여행이는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 아빠랑 노는 것도 재미있지만 자기에게도 형제가 있다면 친구들과의 약속이 없는 날에도 신나게 놀 수 있을 텐데 왜 자기는 혼자냐고 묻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바다가 태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는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백하는 게 아닌가. 자기가 필요한 건 갓난아기가 아니라 일곱 살짜리 동생이었다고.


여행이와 바다 사이의 터울이 큰 만큼, 그 둘의 관계는 나와 내 동생의 관계와는 다를 게 분명하다. 우리 자매가 그러했듯, 또래끼리 쌓을 수 있는 추억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 만들고 공유할 일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둘이 함께 지내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첫째가 동생을 배려하고 동생에게 양보를 해야 할 일이 잦다는 이유로 속상해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또 둘째대로 고충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리고 나와 남편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두 아이의 부모라는 위치에 서서 10년이나 나이 차가 나는 아이들을 고루 보듬어 주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테지.


하지만 정신 승리 분야에서는 누가 뭐래도 내가 왕이지. 우리 가족이 얼마나 특별한 가족인데! 열 살 터울 아이들이 함께 자라는 가족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만약 그런 가족이 나타난다면, 그저 반갑습니다)!


이중섭, 《춤추는 가족》


이중섭 화백이 그린 <춤추는 가족>이라는 그림이 있다. 화가의 삶을 떠올리면 참으로 안타깝지만, 가족을 향한 작가의 애틋한 마음이 눈에 선하게 그려져 내가 참 좋아하는 그림이다. 첫째인 여행이를 출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절, 나는 거의 24시간을 몸도 마음도 아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리바리한 초보 엄마였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은 떠나보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 말했었다.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여유가 없었는데 엄마가 된 지 십 년 차가 된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여행이가 아직 어렸을 때는,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도, 나는 아이 곁에 있는 것이 좋고 내 가족에게 둘러싸여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그림에서처럼 남편과 여행이, 그리고 바다랑 둥그렇게 둘러 서서 늘 손에 손 잡고 지내고픈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언젠가는 나와 남편도 아이들을 우리 품에서 떠나보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부모로서 우리는 여행이와 바다가 각자의 삶을 일구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을 때까지 성장시키고 그 아이들이 준비가 되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세상으로 보내줘야 하는 역할을 맡았으니까. 그 과정에서 우리의 첫째와 둘째가, 아무리 터울이 크더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로 성장하도록, 그리하여 혹여 둘 중 하나라도 힘든 일을 맞닥뜨렸을 때 서로 조언해 주고 좋은 일이 있을 때면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가능하리라 믿는다. 우리는 특별한 가족이니까.


우리는 특별한 가족! 이제 몇 달 후면 이 사진 속에 바다의 모습도 들어올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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