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신나, 너무 신나는데...

첫째가 된 외동

by 여행하는가족

"정말로... 내 동생이 생기는 거야? 너무 신난다..."


계획은커녕 예상하지도 못했던 둘째 임신이라는 결과를 앞에 두고 우리 부부는 기쁘고 설렜다.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도 이미 적지 않은 나이였는데 그때보다도 열 살씩이나 더 나이를 먹은 사십 대 중반, 과연 이번에도 건강한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을는지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기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완전히 접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 깊숙한 곳에는 그래도 혹시, 어쩌면 언젠가는, 하는 마음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마지막 생리일을 기준으로 대략 계산해 보니 산부인과에 방문한다 해도 아직은 아기집이나, 운 좋으면 난황 정도를 볼 수 있을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푼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나와 남편은 여행이와도 동생이 태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서둘러 행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동생을 기다려온 아이였으니까.


동생을 낳아달라고 노래, 노래를 부르던 아이답게 여행이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기쁨의 대사를 읊는 우리 집 꼬마의 눈에는 설렘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혼란스러워질 밖에.


외동

어른들의 세계에 아이가 등장하는 순간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나는 여행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와 남편 둘만의 삶이 부드러운 파스텔컬러였다면 여행이가 태어난 후 우리 가족의 삶은 쨍한 무지갯빛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나는 나 혼자만의 공간도, 어른들끼리 나누는 차분한 대화의 시간도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자마자 알게 되었다. 자연의 부름에 응하기 위해 화장실에 앉아야 하는 단 몇 분의 시간조차 신생아 엄마에게는 사치라는 사실을.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내가 온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모든 것을 척척 잘하게 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보니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내 삶을 제대로 건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스스로도 아직 방황을 끝내지 못한 마당에 나보다 더 작고 힘없는 존재까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은 아이라는 존재가 선사하는 행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질 정도로 나는 여행이와 함께 하는 무지갯빛 시간이 좋았다.


아이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바뀌는 것도 물론이었다. 특히 첫 손주를 품에 안은 시부모님을 찾아 뵐 때면 여행이 주변으로 벅찬 행복의 기운이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여행이가 숨을 쉬면 숨 잘 쉰다고, 밥을 씹으면 잘 씹는다고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지르실 만큼 아이에게 관심을 쏟아주셨다. 집안의 외동, 여행이는 그야말로 스타였다. 그것도 거의 10년 동안이나 무대를 독차지한 대. 스. 타.


혼자였는데요, 첫째가 되었어요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본 날, 나는 여행이와 둘이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는 핑계였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미션은 믿을 수 있는 한국의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 사실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이었다.


저녁 시간 두바이 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항공기 안에서 나는, 평소보다 얌전한 여행이의 기분을 북돋워 주기 위해 노력했다. 여행이는 엄마의 걱정을 짐작했는지 기운을 내 보려 했지만 그게 잘 안 되는 눈치였다. 우리 둘 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과정에서 어느덧 밤이 되었다. 기내의 불이 꺼지자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마음에 잽싸게 여행이를 눕히고 나도 잠을 청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까무룩 잠들었던 나의 귀에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그날따라 선명하게 와 박히는 것이었다.


"휴지 좀... 주세요. 흑흑흑..."


깜짝 놀란 나는 눈을 번쩍 떴고 내 무릎을 누르던 아이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한번 놀랐다. 여행이는 어느새 깨어 있었고 무엇보다 울고 있었다. 승무원 누나가 건네주고 간 휴지에 눈물도 닦고 코도 풀어가면서 소리 죽여 울고 있는 꼬마가 내 아이라니. 하필이면 불까지 다 꺼져 어두컴컴한 곳에서 혼자 그러고 있는 것을 보니 나까지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했지만 꾹 참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평소에는 내가 안아줄라치면 저도 나를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던 여행이가 그날은 힘없이 내 품에 안겨 울기만 했다. 한참을 그러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엄마... 동생... 나 동생이 태어나서 기쁜데...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되어가지고, 아이가 받을 충격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동생의 존재에 대해 성급하게 알린 내가 미웠다. 여행이에게 미안해서 나는 별 말도 못 한 채 그저 울고 있는 여행이를 안고 토닥여 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큰 소리로 엉엉 울지도 못하고 흐느끼기만 하더니 기운이 다 빠졌는지 다시 꿈나라로 떠났다. 더 이상 잠을 청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져 버린 나는, 이제 그 밤 비행기 안에서 홀로 울기 시작했다.


너를 향한 엄마, 아빠의 사랑은

요즈음의 나는, 아이가 성년이 된 후까지도 첫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린다는 부모 선배들의 말을 이해해 가는 중이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동생의 존재로 인해 여행이가 겪을 어려움보다 느낄 행복이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유일했던 아기, 하지만 이제는 첫째가 된 여행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 동생을 맞이하는 첫째의 마음은, 마치 첩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 남편을 보는 마음 같다고 했던가?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지만 나도 모르게 그것을 떠올려 보았다. 와, 그 충격이란!


그래서 나는 종종 다짐을 한다.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남편과 마주 앉아서도. 아주 오랫동안 우리 부부의 유일한 사랑이었던 여행아, 이제는 두 아이 중 한 명이 되었지만 언제까지나 너는 엄마, 아빠의 첫 번째 사랑일 것이고 너를 향한 우리의 사랑의 크기는 줄지 않을 거야. 동생이 태어났다고 해도 너에게 소홀해지지 않도록 엄마, 아빠가 많이 노력할게.


언제까지나 엄마, 아빠의 첫사랑인 너
keyword
이전 05화특별한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