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웬디가 생겼고, 다음이 존, 그리고 마이클이 뒤따랐습니다. 웬디를 임신한 처음 한두 주 동안 다알링 부인은 임신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다알링 씨는 침착하게 아내의 침대 한편에 걸터앉아 아내가 애원하는 눈초리로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가 태어나면 써야 할 비용을 계산하느라 바빴습니다. 그녀는 어찌 되었든 모험을 해 보기를 원했지만 남편은 달랐던 것입니다. 다알링 씨가 연필로 종이에다가 계산하는 도중에 그녀가 자기 의견을 말하는 바람에 혼란스러워진 다알링 씨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자,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이렇게 다알링 씨는 아내에게 몇 번이고 부탁해야 했습니다.
“자아, 됐어, 이제야 끝났어! 9파운드 9실링 7펜스라고 했었나, 내가? 맞아, 9파운드 9실링 7펜스라고 했지. 문제는 9파운드 9실링 7펜스로 일 년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거야.”
“할 수 있고 말고요, 조지!”
그녀가 소리쳤습니다. 아기한테 온통 마음이 쏠린 아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다알링 씨는 사실 훨씬 현실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방역 주사 비용을 기억하라고.”
그는 거의 협박하듯 말하곤 다시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제임스 매튜 베리, 『피터팬』-
특별한 사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잠들기 전 루틴이 있다. 여행이와 나란히 누워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준 자세로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도 책장 넘기는 것을 놀이처럼 즐기던 여행이는 한국 나이로 아홉 살이 된 지금은 독서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 혼자서도 막힘 없이 글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꿈나라로 떠나기 전만큼은 엄마의 목소리를 타고 전해지는 이야기에 푹 빠지고 싶어 하는 눈치라 나는 아무리 피곤하고 졸려도 단 한쪽만이라도 책을 읽어주려 애쓰고 있다.
며칠 전부터는 함께 『피터팬』을 읽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경우 무얼 읽을지 선택하는 것은 여행이의 몫. 하지만 이번에는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피터팬과 네버랜드의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욕심에 내가 그것이 꽂힌 서가로 아이를 살살 유인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영원히 자라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의 서두는 꼬마 독자들의 흥미를 단박에 잡아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솔직히 말하자면 여행이가 이거 그만 읽고 다른 책으로 바꾸자고 할까 봐 최대한 극적인 목소리로 빠르게 읽어 주었다)! 내 기억 속에는 분명, 웬디 남매가 자고 있는 침실로 피터팬과 팅커벨이 날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떠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여행이와 나란히 누워 다시 읽은 이야기에서는 시작부터 세 아이의 부모인 다알링 부부의 모습이 몇 번이나 클로즈업되었던 것이다. 이미 동심을 잃은 두 성인 남녀, 특히 아이가 태어난 이후 가족이 맞닥뜨릴 수 있는 경제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다알링 씨의 모습이 아직 어린 여행이에게는 자칫 이해할 수 없는, 지루하기만 한 내용으로 비칠 것 같았다. 그래, 어린아이에게는 그렇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어린아이에게는.
가장의 무게
남편의 지방 발령에 이은 해외 발령으로 인해 휴직을 이어오던 내가 어쩔 수 없이 퇴직서를 제출했던 것은 작년의 일이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증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는 퇴직 당시 설상가상으로 마흔을 넘긴 나이였다. 혹여 재취업을 희망한다 하더라도 이전의 직장과 같거나 비슷한 조건의 일자리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미다. 말로만 듣던 경단녀, 눈 떠 보니 내가 바로 그 경단녀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의 남편은 우리 집의 유일한 수입원, 다름 아닌 가장이 되어 있었다.
‘식구’라는 단어가 있다.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끼니를 함께 하는 이들을 뜻하는 말이다. ‘가족’과 쓰임이 겹치기도 하는데 나는 가족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만 식구라는 단어에는 좀처럼 호감이 가지 않는다. 먹는(食) 입(口)이라는 한자가 가족이 전해주는 따스함보다 가족이 지우는 부담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퇴직을 하고 난 후, 내 모습에 대한 스스로의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에게조차 나라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 식구로 여겨지는 순간이 올까 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그에게 경제적으로 온전히 기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 받던 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둘째까지 생긴 지금, 외벌이 가장으로서의 나의 남편이 짊어진 무게는 과연 얼마 정도일까?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끔씩은 사표를 던지고 훌훌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일 텐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힘들어도 매일 아침 출근길에 나서야 하는 그의 마음을 떠올리노라면 가끔은 웃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다.
고마운 사람의고마운 말
사실 나의 배우자는 성품이 참 착한 사람이다. 내가 무얼 하자고 하거나 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거나 싫다고 하는 법 없이 언제나 “유미가 원하는 대로 하자.”라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바로 그다. 첫째인 여행이가 태어나고 꽤 오랫동안 나는 둘째를 가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형제자매 여럿이 어울려 알콩달콩 잘 지내는 모습을 보고 온 날이면 우리 부부에게도 둘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어떤 날은 내 능력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편은 줄곧 둘째를 원했던 것 같다. 나에 대한 배려심이 넘치는 까닭에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강하게 주장하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가 둘째 아이를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내 느껴졌으니까.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둘째가 드디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후, 나는 남편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얼마 전, 임신 중기 문턱을 넘어 안정기에 접어들고 난 후 드디어, 나는 남편을 붙잡고 앉아 그의 속마음을 물어보았다.
나: 물어볼 게 있어.
그: 뭐?
나: (단도직입적으로) 둘째가 생기니까 어때? 좋아?
그: 어? 조… 좋지…
나: 진짜로 좋은 거야? 진짜로 좋은 말투가 아닌데?
그: 어… 그… (조금 더 진심이 느껴지는 말투로) 진짜로 좋아. 아이 좋아라.
나: 진짜야? 뭐가 좋아?
그: (내가 내는 주관식 문제를 어렵게 느끼시는 분) 그게…
나: 부담은 안 돼?
그: 음… 어깨가 무겁지…
나: 어깨가 무거워서 어째…
그: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로 진심을 담아) 어떻게든 되겠지!!
뱃속에 둘째를 품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과 고마움이 더욱더 내 마음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여행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마주친 다알링 씨의 모습에서까지 배우자의 얼굴이 겹쳐 보인 것은. 속으로는 소설 속 세 남매의 아빠처럼 우리 집의 경제상황을 걱정하고 있을 테지만 나와 아이들을 위해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애써 주는 그가 고맙다. 어쩌면 그냥 툭 내던진 말처럼도 느껴지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문장이 나의 마음을 안심시킨 것은, 그것이 다른 이가 아닌 참 고마운 그의 입에서 나온 참 고마운 말이어서겠지?
그의 말이 나에게 용기를 전한다. 어떻게든 될 거야. 어떻게든, 아주 좋은 방향으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