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직장이었다. 큰돈이나 대단한 복지를 제공해 주는 곳은 아니었지만 나야 뭐 명품 같은 값비싼 것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맞춰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인지라 직장이 제공하는 물질적 혜택의 많고 적음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난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어떤 형태로든 한국을 우리나라 밖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오고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그 두 가지 모두와 일맥상통하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신나고 고마울 따름이었다. 회사 안에는 도서관까지 있었는데 거기에서 뽑아온 책을 읽는 것이 때로는 업무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얼마나 감사했나 모른다.
물론, 직장 생활이 늘 즐거움과 보람만으로 가득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도 있었고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일터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설레고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단순히 나의 잠자리와 삼 시 세끼를 책임져 주는 곳을 넘어,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기회를 주는 동시에 월급까지 쥐어주던 곳, 직장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결혼 후, 내 곁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들의 삶과의 조화를 고려하다 보니 나의 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물론, 내가 이제껏 가장 잘한 일 중 두 가지는 바로, 내 남편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 것과 여행이와 바다의 엄마가 된 것이라는 생각엔 흔들림이 없다. 언젠가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를 그와 아이들을 위해 꾸며낸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 나의 진심이 그렇다. 그렇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자아실현을 향해 나아가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내 입지가 현저히 좁아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업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남편을 혼자 보낼 수는 없었기에 휴직원을 제출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재미있어 보이는 프로젝트 소식이나 동료들의 승진 뉴스에 나만 지금 이 멀리에서 무얼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드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도 매일 출퇴근하던 일상을 접고 몸 편히 지낸 덕분이었는지 남편의 유학 기간 동안 감사하게도 첫째 아이가 찾아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출산전후휴가와 육아휴직을 추가로 신청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엔 한국으로 돌아가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이제 막 공부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한 남편이 그 시점에서 육아휴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다고 나마저 아직 한 살도 안된 여행이를 두고 매일 최소 여덟 시간의 근무에 왕복 두 시간의 출퇴근까지 하는 것은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라 복직을 하되 반나절만 근무하는 것으로 회사와 협의를 했다. 이렇게 휴직에 반일근무까지 이어서 하게 되면 승진에 불리할 수도 있는데 그건 알고 있지요라는, 조언인지 경고인지 모를 이야기가 내 귓구멍을 후벼 팠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개인적인 아쉬움이없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렇지만 내 삶의 방점을 가족에 찍은 덕분에 아이는 건강히 잘 자라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늘어났다. 그즈음 직장에서의 나는 거북이와 경주를 하다가 긴 낮잠을 자버린 토끼처럼 뒤처져 있었기에 이제 일에 집중해 볼까라는 마음으로 전일 근무로 복귀한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그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적어도 한번, 서울 본사 이외의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는 있었다. 아이가 더 자라서 학교를 옮겨 다녀야 하는 일이 생기기 전에 해치울 일은 빨리 해치우자는 마음으로 가겠다고 손을 든 것도 우리였다. 그런데도 막상 한동안 또 서울을 떠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개인으로서의 내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만 같아 절망적인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고민했다. 남편의 새로운 근무지는 무리를 한다면 출퇴근이 아예 불가능한 곳은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무기한도 아니고 끝나는 날짜가 정해져 있는 파견이었으니 우리 둘 다 잠시간만 고생해 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다시 한번 휴직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래도 일 년 후면 서울로 돌아간다, 가서 나는 복직을 하고 조금 더 늦었지만 다시금 내 일에 매진해 보자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데 다음의 복병은 이럴 수가! 해외파견이었다. 이것저것 고려한 끝에 파견 신청을 했던 것은 이번에도 우리 부부였기에 누굴 탓할 일이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제출하기도 민망한 휴직원을 다시 한번 쓰고 있는 내 마음은 원망할 누군가를 자꾸만 자꾸만 찾아 헤맸다.
직장에서 말 그대로 휴직의 역사를 쓰다가 작년에 결국 퇴직을 했다. 애정을 가지고 일하던 곳이었기에 퇴직원에 내 이름 석자를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어느덧 마흔을 넘긴 나이. 소위 전문직도 아닌 내가 다시 비슷한 조건의 회사에 들어가 일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같은 이야기가 되고 만 것이다.
남편의 해외 파견 기간 동안, 자연스레 그는 회사 업무를 하는 동시에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나는 그 이외의 것들, 가령, 집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과 아이의 학교 생활과 관련된 일들을 담당하기로 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새 보금자리에서의 내 삶의 중심은 가족이었다. 오래전 짧은 일정의 여행으로 딱 한 번 와 봤을 뿐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는 나에게도 여러 모로 낯선 동네였다. 영어를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로 이 도시에 도착한 아이가 학교와 이곳에서의 삶에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뿐만 아니라 겉은 참 번드르르한데 이상하게도 두바이의 집은 뭔가가 참 자주도 고장이 났다. 그리고 고장 난 것을 고치겠다고 나타난 사람들은 차라리 그 망치랑 펜치 저한테 주고 가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느리고도 어설프게 일을 처리했다. 그래도다행히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을 대충 끝내고 나니 다시 허전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다 의미가 있다지만, 나의 일, 그러니까 나의 성장을 위한 일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람의 자존감을 유지하는데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이 도시에 온 이래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부터도 취미로 간간이 여러 매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해 오기는 했지만 이번의 마음은 달랐다. 프리랜서 작가로서 제대로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주로 남편과 아이가 직장과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이나 둘 다 잠들어 있는 새벽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쓴다(오늘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활자로 풀어내다 보니 재미도 있고 막혀 있던 속도 풀리는 것 같아, 언젠가는 하게 될 퇴직, 몇 년 앞당겨할 기회를 만난 것이 천운이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이 기세를 몰아 두바이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내년에는 전업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직장을 찾아볼까라는 야무진 꿈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순간 당도한 둘째 소식에 그 마음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인 내가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품었다는 사실이 특히 둘째 아이에게 많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나도 평범한 인간인지라 제 멋대로 뻗어나가는 내 마음을 어쩔 수가 없다. 여하튼 나의 개인적인 꿈은 다시 한번 스러졌다.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나의 글을 실어주는 곳들이 있고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더욱 감사한 요즘이다.
어제저녁, 여행이에게 저녁을 지어 먹이고 거실에 앉았다.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산타가 선물해 준 레고를 조립하고 있었고 나는 그 옆 식탁에 앉아 마감일이 다가온 원고 하나를 손보기 시작했다.밀려 있던 빨래를 세 번에 나누어 해치우고 남편의 와이셔츠와 구김이 많이 가는 티셔츠들을 다리고 집안 곳곳을 청소기로 누빈 후 삼계탕이 먹고 싶다는 여행이를 위해 닭을 사 와 요리를 하고 나니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둘째 아이, 바다도 점점 커지는 나의 배 안에서 하루가 다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터라 이제 나는 의자를 식탁 쪽으로 바짝 당겨 앉는 것도 힘들게 된 상태였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나는 키보드를 두드렸고 곁에 앉은 아이는 캐럴을 흥얼거렸다. 우리는 각자 할 일을 하다가 가끔씩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다시금 자신의 일로 되돌아가며 한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산타 할아버지께 받고 싶은 선물들을 줄줄이 적은 편지를 썼던 여행이는, 자신이 받은 장난감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산타는 꾸며낸 거고 사실은 엄마, 아빠가 몰래 선물을 하다 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 안 할 거라고, 자기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해 준 형아도 사실은 산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다고 종알거렸다. 이어, “사실 말이야 엄마, 이 레고도 좋지만 OOO 있지? 산타 할아버지가 그걸 선물해 주셨어도 좋을뻔했어.”라던 아이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덧붙였다.
“그래도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지. 내가 가진 걸 좋아해야지? 그렇지, 엄마?”
그래. 사람이 어떻게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을까. 원하는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 테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또 그 나름의 허무를 동반하지 않을까. 아이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에 깊이 빠져버린 나는, 정말로 네 말이 옳다고 맞장구를 치며 생각했다. 그래, 지금의 내 상황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자고. 찾아보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으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나의 일도 사랑하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나의 가족이라는 결론을 나 스스로 내린 것이 아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