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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가족 Jan 26. 2024

나의 삶이 그러했듯 당신의 삶도

2주 간의 워크캠프가 나에게 선물한 것들

20대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던 어느 봄, 나는 2주라는 귀한 휴가를 앞두고 어디로 여행을 다녀올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 자신을 위해 휴양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려 볼까?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기운 있는 내 젊은 날에 배낭여행을 한 번 더 즐겨 봐?


워크캠프

몇 주 간의 행복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워크캠프였다. 워크캠프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청년들이 짧게는 1주에서 길게는 3주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 공간에서 지내며 봉사활동을 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바탕 유럽 대륙을 훑고 지나간 1920년, 한 스위스인의 주도로 프랑스의 마을에 유럽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들은 힘을 합쳐 전쟁으로 파괴된 마을을 재건했으며 그 과정에서 국제자원봉사(IVS: International Voluntary Services)가 탄생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유럽은 또다시 폐허가 되었는데 이때 국제자원봉사의 영역은 파괴된 공간을 재건하는 것에서 전쟁의 상처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회복지 활동으로까지 확대되게 된다. 그로부터 백 년 남짓이 흐른 오늘날에는 유럽 지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80여 개국에서 워크캠프라는 이름으로 봉사활동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활동 분야는 환경, 건설∙보수, 교육, 복지, 예술, 축제, 농업, 스터디, 아동으로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봉사 기간 동안 숙식이 제공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경제적 부담도 적은 편이다.


대학교 초년생 시절 우연히 워크캠프에 대해 접한 이래, 언젠가 꼭 한번 참여해 보고 싶다고 생각해 오던 참이었다. 나는 틈이 날 때마다 그 해 봄에 진행되는 프로그램들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관심 분야와 관심 지역을 고려해 보니 최종 후보지는 세 곳으로 좁혀졌다. 베트남으로 가면 학교를 짓고 이탈리아로 가면 유적지 보호 활동을 하고 독일로 가면 자연보호 활동을 하게 될 것이었다. 며칠 동안이나 머리를 싸맨 후 나는 독일행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좌)워크캠프 참가자들의 숙소였던 나트하임 소방서  (우)창밖을 내다보면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2주 동안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야전침대


독일 시골마을에서의 2주

서울에서 출발해 비행기, 버스, 기차, 그리고 다시 한번 버스로 갈아타야만 하는 긴 여정 끝에 도착한 나트하임(Nattheim)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것보다 더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한국, 일본, 홍콩, 독일, 프랑스, 러시아, 벨라루스, 탄자니아,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나를 포함한 열두 명은 2주 동안 자연보호 활동 등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우리들의 숙소는 마을 언저리에 자리한 나트하임 소방서였다. 그 건물 2층에 있는 방 두 어 개에 깔린 야전침대가 잠자리였는데 숙소 창밖을 내다보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저녁 식사는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준비했고 모두들 자기 나라의 전통음식을 대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그램명은 '워크'캠프였지만 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낮 시간 동안 우리는 마을에서 요청한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고 금요일과 주말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워크캠프 주최 측, 또는 나트하임 시청에서 마련한 관광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트하임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난생처음’인 일들을 참으로 많이 경험했다. 난생처음 곡괭이와 내 키만 한 삽을 들고(게르만인들의 삽이라서 그랬나? 정말 컸다!!) 땅을 파서 이정표를 세우고, 난생처음 톱으로 제법 굵은 통나무를 자르고 그것에 사포질을 하고 구멍을 뚫고 못을 박아 곤충들의 쉼터를 만들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법한 깊은 산속에 들어가 난생처음 흙을 파내고 잡목을 치우며 오래된 집터를 발굴했고 난생처음 무거운 통나무를 낑낑대며 로 끌고 올라가 등산로 계단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트하임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난생처음’인 일들을 참으로 많이 경험했다


이 동네에서 워크캠프 참가자들은 유명인사였다. 우리가 사람 사는 집도 아니고 곤충이 알을 쉽게 낳고 키울 수 있도록 고안한 곤충의 집을 완성하던 날에는 나트하임 시장님과 지역 신문사 기자들이 총출동했고 그렇게 우리는 독일 언론에 데뷔를 했다. 마을 주민분들은 별다른 놀거리가 없는 농촌 마을에 있던 유일한 수영장을 우리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기도 했다. 그뿐이랴. 또 어떤 날은 자신들이 타던 자전거들을 모아 소방서로 가지고 오더니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껏 사용하라고 빌려주시기도 했다.


우리 일행의 집이 되어주었던 소방서에서는 거의 매일 저녁 소방관 아저씨들의 맥주파티가 벌어졌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그랬나? 소방관 아저씨들은 각자의 본업은 따로 있되 불이 나면 소방관으로 변신! 함께 불을 끄는 사이라고 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우리들까지 자신들의 파티에 초대해 주곤 하셨다. 아저씨들이 이렇게 다 취해버렸을 때 마을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커다란 소방차들이 줄지어 주차된 차고에 소방관 아저씨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고등학교 때 배웠던 아베쎄데를 총동원해 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를 즐길 기회는 쉽사리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2주 동안 나는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독일 버전의 한복판으로 뚝 떨어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나트하임의 소방 안전은 우리에게 맡겨라! 마...맡길 수 있을까?


2주 간의 워크캠프가 나에게 선물한 것들

나무꾼 찰리 아저씨는 우리 일행과 내내 함께 하셨다. 그분 덕분에 이전에는 존재하는지 몰랐을 뿐 아니라 아예 관심조차 없었던 다양한 곤충과 자연물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자신들의 불편을 감수하고 자전거를 선뜻 빌려주신 나트하임 주민분들로부터는 배려를 배웠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나무를 깎아 만든 고슴도치 조각을 선물해 준 목수 청년의 마음과 숲 속에서 옛 집터를 발굴하는 일을 지휘하셨던 나이 지긋한 역사학자 할아버지와의 시간도 기억에 남는다. 이분들 이외에도 나트하임에서 만난 수많은 이들에게 지금까지도 감사를 지고 있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 참가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소방서로 찾아오셨다. 그동안 서툰 우리들을 지도해 주셨던 찰리 아저씨와 역사학자 할아버지를 비롯한 마을분들, 그리고 근무시간에 우리에게 자신의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셨던 나트하임 시청 직원분들께 안녕을 고할 때는 눈물이 날뻔했다. 역사학자 할아버지가 우리를 돌아보며 해주셨던 마지막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I hope you have a great life, just like I have had.”

“여러분들이 멋진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요.”


인생이 참 짧다. 영원할 줄로만 알았던 나의 20대는 까마득한 과거가 되었고 눈 깜짝할 사이 나는 40대 중반의 삶을 걸어가고 있다. 이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된 나를 발견하는 날도 올 것이다. 그즈음의 내가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참 후회 없이 잘 살았다’고 스스로를 칭찬해 줄 수 있기를, 그리고 나보다 어린 누군가에게 살아가는데 힘이 되어줄 이야기 한 마디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그런 희망을 품고 오늘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2007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나트하임


워크캠프에 함께 참가했던 친구들과 다녀온 근교 여행에서. 왼쪽에 서 계신 분이 찰리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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