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꽁꽁 묶인 할머니의 반지

그 밤의 소동

by 김유인


무엇이 그 밤에 치매 노인네를 잠 못 들게 했을까?

그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방학을 이용해 할머니를 방문했을 때이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볼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할머니 상태가 안 좋으셨다. 예전에는 치매란 말 대신에 노인들께 '노망이 났다.'라는 말을 쓰던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정신도 없고, 기운도 없으면서도 식구들이 다 자는 밤에 홀로 일어나셔서 서랍에 물건을 다 끄집어내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내가 부산 큰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는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다. 하루 종일 식사도 안 하시고 주무시기만 한다고 가족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른 식구들이 깨우느라 서울에서 손녀가 왔다고 말해도 잠시 눈을 떠 바라보시더니 다시 주무셨다.

" 할머니, 할머니. 서울에서 막내 손녀 왔어요."라고 내가 말해도 완강히 감은 눈은 다시 뜨지 않으셨다. 저녁을 먹고 나는 할머니 곁에 이부자리를 준비하고 누웠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뼈마디가 드러나는 손을 잡아보며 할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몇 년 전 만해도 내가 도착하면 나에게 짙은 부산 사투리로 "아버지께 잘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셨었다. 사실은 사투리가 너무 심해서 100% 이해는 못하고 그저 '네, 네' 대답하는 나쁜 손녀였다.

몇 시나 되었을까, 잠결에 할머니는 움직이고 계셨다. 잠시 깨서 굽은 허리의 할머니를 봤지만 피곤해서 다시 잠이 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섬뜩하게 찬 기운이 느껴졌다.
'뭐지?' 하며 잠이 깼는데 할머니께서 자신의 얼음장 같은 손을 내 코에 갖다 대면서,

"젊은이요, 여기가 어딘교?"라고 말씀을 하셨다.

방안은 이미 엉망이 되어 있었고, 장롱과 서랍의 물건들이 밖으로 나와 있었다. 굽은 허리와 시들어가는 그 작은 몸 어디에 그런 기운이 남아서 물건들을 빼놓으셨는지, 흐릿한 눈은 허공을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손녀에게 꼬장꼬장하게 당부하시던 할머니는 더 이상 안 계셨다.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며느리가 일찍 세상을 떠나, 엄마 정을 못 느끼고 자란 나를 유독 안타까워하며 챙겨주셨었는데, 그날은 무슨 준비를 하시느라 온 방안을 뒤지고 계셨을까?

다음 날 아침, 정신이 조금 돌아온 할머니는 당신의 손가락에 끼고 있던 쌍가락지를 나에게 주셨다. 몸의 물기라곤 다 빠진 앙상한 손가락에 겨우 끼어 있는 반지였다. 혹시 잃어버리실까 봐 실로 꽁꽁 묶어두고 계셨던 것이다. 아마도 서울에서 온 손녀에게 돈이라도 주고 싶으셔서 밤새 온 방안을 뒤지셨던 거 같다.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니, 평소에 서랍이나, 장롱에 숨겨둔 돈이나 금붙이 같은 걸 찾으시다가 아무것도 못 찾으시고 당신이 간직하고 있던 반지를 빼주신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유품을 서랍 깊숙한 곳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 살던 집이 팔려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짐 정리를 하며 보니 그 반지가 없어진 거다. 몇 번을 서랍을 뒤지고, 있을 만한 곳 다 뒤졌지만 그 반지만 없었다. 아버지도 그 일을 아시고 나를 꾸중하셨다. 어떻게 주신 유품인데 그렇게 관리하냐고 하신 말씀에 나는 눈물만 흘렸다.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과 할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게 없어져서 당황하고 슬펐다. 꿈속에서라도 할머니를 뵙고 사죄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앓고 지내던 중 우연히 정목 스님의 책을 읽게 됐는데, 책 내용에 큰 스님께 받은 화두 봉투를 잃어버리고 상심한 내용이 나왔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그것은 그저 '종이' 였을 뿐인 걸 깨달으시고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종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화두의 내용'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깨달음은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 이라는 구절을 되 새기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할머니께서 진정으로 주신건 백금 쌍가락지가 아니라, 그 반지에 담긴 손녀를 향한 지극한 사랑이라는 걸.... 그 사랑을 온전히 내가 기억하고 있다면 반지의 행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도 할머니의 반지를 기억하며 할머니의 사랑을 생각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