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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각 Apr 08. 2021

혼돈이 우리를 춤추게 한다

에필로그

나는 태생적으로 이방인이 될 자질을 타고났다. 일찌감치 나의 자질을 알아보았던 나의 초등학교 친구들은 나를 늑대인간이라고 불렀다. 늑대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이지만 살짝 인간의 특성에서 어긋난 돌연변이 아니던가. 이방인이란 토박이와는 다른 외모와 정서를 지닌 상대적 돌연변이라는 점에서 늑대인간과 궤를 같이한다. 어린아이들은 가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처음 미국에 건너와 뉴욕 땅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나는 미지의 세계가 주는 불안감보다는 무리에 섞인듯한 편안함을 느꼈다. 이방인들의 땅답게 이방인 무리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돌연변이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 정서적 안정감이 이방인이 가진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진 못했다. 


이방인들은 모두가 고독한 시간 여행자들이다. 그들 주변에는 가족이나 어린 시절의 친구들, 혹은 자신이 뛰어놀던 공터와 같은 역사가 없다. 우리는 부모와 친구들이 나이 들어가고, 자신이 뛰어놀던 공터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며 시간의 흐름을 인식하고 역사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가늠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을 떠난 이방인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역사적 레퍼런스의 부재로 인한 시공간적 고립을 경험한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흐름이라는 대양의 조류 속에서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조타수의 기분과도 같다. 내 동생의 나이가 벌써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나는 나 자신이 삼십 대 초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던 바로 그 시점부터 나의 시간은 멈추어버렸던 것이다.


요컨대 이방인이란 고립된 컨텍스트에 놓인 타자이다.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려고 하는 개인마저도 이방인라면 숙명적으로 갖고 있는 현실적 제약 앞에서는 속절없이 타자화된다. 따라서 이방인은 자신 앞에 놓인 제약과 끊임없이 마주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브라질의 축구선수 호나우딩요 Ronaldinho가 여권없이 여행하다 이웃 나라의 감방에 갇혔다는 뉴스를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그 씁쓸함, 그것이 바로 이방인의 감수성이다.


여기에 기록된 이야기는 미지의 땅에 상륙한 위태로운 이방인이었던 내가 새로운 사회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다만 내가 경험한 것들을 방금 담근 겉절이 김치처럼 톡 쏘는 느낌으로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시간이 흘러 각각의 사건 속 개인적인 감상이 걷힌 뒤, 드라이하고 관조적인 자세로 바라본 나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시기를 기다리다 보니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십 년이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나의 감수성에 공감해주고 기꺼이 첫 번째 독자가 되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방인인 나의 삶에서 아내의 의미는 각별하다. 그녀야말로 내가 고향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를 허깨비가 아닌 실존적 주체로서 성립할 수 있게 만든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십 년 전 유학을 떠나던 비행기 안에서 나는 지금의 나를 조금도 상상할 수 없었다. 때문에 나는 십 년 뒤의 내가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예측 가능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불확실성과 혼돈은 불안을 야기하지만 나는 그 서늘하고 소름 돋는 혼돈을 사랑한다. 니체 Friedrich Nietzsche의 말처럼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자신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도 어딘가에서 춤추고 있을 세상의 모든 이방인들에게 행운을 빈다.




2021년 4월 헤븐리 힐스에서,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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