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희 Jun 25. 2024

독서하고 생각하고 담소하는 즐거움

윌이엄 서머셋 몸의 단편을 읽고


사람마다 책을 읽는 목적이 다를 수 있지만 난 다른 사람의 사는 모습이나 생각이 궁금해서 독서를 한다. 특히 영미 소설은 이야기의 내용만이 아니라 언어도 함께 익힐 수 있어서 좋다. 물론 한국 소설도 훌륭한 작품이 많지만 영미 소설을 읽고 있으면 분명히 다른 뇌가 활성화되며 마치 소풍을 가기 전날 느껴지는 흥분이 밀려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 책 읽기를 통해 이런 즐거움을 갖고 싶은데 장편 소설이 부담스럽다면 단편 소설을 추천한다.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사는 만큼 좋은 단편도 많다. 그러나 모든 글이 마음에 쏙 들어오지는 않을 거다. 아무리 유명한 작가가 쓴 글이라 하더라도 이해가 잘 안 되면 처음부터 굳이 그런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일단 단편 몇 편을 읽어보고 마음을 움직이는 지점이 있으면 한 작가의 단편을 다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한 사람 씩 탐구하며 몇 사람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을 읽는 게 일상이 될 수 있다.


최근에 윌리엄 서머셋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단편을 매일 한 두 편씩 읽으며 느낀 건 이 작가가 사람의 마음을 묘사하는 방식이 이해하기 쉽고 해학적이다. 예를 들어, <<삶의 진실(The Facts of Life)>>에서는 부모의 마음과 자식의 마음이 잘 드러난다. 엄친아 아들은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테니스도 잘 쳐서 18살에 대표단에 합류하여 부모 없이 처음으로 몬테카를로에 가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 가지 당부를 한다. 놀음을 하지 말고, 남에게 돈을 꿔주지 말고, 여자와 엮이지 마라. 아들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마지막 날 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세 가지 행동을 하고 만다. 그때마다 아들은 아버지의 당부를 잊지 않겠다고 했지, 그런 행동을 안 하겠다고 약속한 건 아니라고 합리화한다. 반전은 아들이 금기 사항을 모두 어겼음에도 운 좋게 모든 게 자기 뜻대로 잘 됐다는 거다. 아버지는 화가 났다. “속단은 금물 (one swallow doesn’t make a summer)”이라고 해도 이제 아들은 아버지 말을 전처럼 신용하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변호사 친구에게 말하니 그는 “네 아들은 운 좋게 태어났어. 장기적으로 보면 그것이 영리하거나 부자로 태어나는 것보다 낫다는 거지.”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은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늘 있었다. 특히 자식이 부모의 성에 차지 않는 결혼 상대를 데리고 왔을 때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우습다. <<로맨틱한 아가씨(The Romantic Young Lady)>>에서 세르빌(Serville)의 공작부인은 무남독녀 외동딸이 잘생긴 마부에게 홀딱 반해서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고민이다. 집안의 어른들과 상의하여 사랑의 열병이 식을 때까지 딸을 멀리 시골집에 가뒀는데 저녁에 몰래 뛰쳐나와 남자의 부모집으로 도망간다. 딸이 좋아하는 마부는 공교롭게도 공작부인이 라이벌로 생각하는 프랑스계 백작 부인의 마부였다. 그러나 대주교조차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백작 부인에게 상의하라고 한다. 공작부인은 자존심을 버리고 백작 부인에게 사정한다. “제가 당신에게 모욕적인 일을 한 적이 있다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합니다. (If I’ve ever done things to affront you, I asked you on my knees to forgive me).” 마부는 공작부인의 딸을 몹시 사랑하여 그녀가 단 한 푼의 재산을 받지 못해도 자신이 충분히 벌어 먹일 수 있다고 한다. 그러자 백작 부인은 마부가 결혼하면 더 이상 자신의 마부가 될 수 없다고 한다. 마부는 마음이 바뀐다. 그는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이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오지 않을 만큼 좋은 곳이라고 느껴서 여자와 헤어진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청혼한 외교관에게 시집가서 행복하게 산다. 남자에게 있어서 좋아하는 일이 사랑보다 중요한가?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거다. 오히려 좀 전에 소개한 미남 마부의 선택이 예외일 수 있다. 그러나 결혼에 있어서 사랑보다 돈을 선택한 경우는 흔한 형상이고 목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큐피드와 스웨일의 목사(Cupid and Vicar of Swale)>>를 읽으면 낡은 집을 고쳐서 옛 정취를 잃었다고 흉보는 매우 보수적인 스웨일 마을에 40세 노총각이 교구 목사로 부임한다. 그곳에서 입김 꽤나 센 부인들은 목사가 믿음이 좋은 것보다 신사이기를 원하며 “테니스를 칠 수 있고 만찬에서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 잘 보호될 거다(as long as he can play tennis and behave decently at a dinner-party, our souls can take care of themselves.)”라고 말한다. 다행히 새로 부임한 목사는 이런 여성들의 비위에 딱 맞다. 여성들은 목사의 결혼을 서두른다. 두 명의 후보가 있다. 한 명은 외모와 지성과 부를 겸비한 과부 스트롱 부인이고 다른 한 명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많은 지참금이 준비된 심슨 양이다. 목사는 스트롱 부인을 좋아했지만 그녀의 친구에게서 그녀도 목사에게 관심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야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가 재혼하면 연금을 더 이상 못 받게 된다는 소리를 듣고 다음 날 결혼을 연기한다. 스트롱 부인이 자신과 결혼하면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없으니 자신이 좀 더 성직자로 성장하고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삼촌의 유산도 물려받게 되면 그때 하자고 한다. 스트롱 부인은 목사의 의도를 눈치채고 청혼을 없던 걸로 한다. 어쩌면 그녀는 목사가 청혼하기 전에 그의 속마음을 알고 있었을 거다. 그래서 친구에게도 자기보다 심슨 양이 더 어울릴 거라고 말했었다.


재미있지 않나? 윌리(윌리엄 서머셋 몸은 서머셋이란 이름을 싫어해서 윌리로 불리는 걸 좋아했단다)는 사람의 마음과 행동에 남다른 통찰력이 있으며 그걸 맛깔스러운 글로 표현하는 재주가 있다. 누구나 그의 글을 읽으면 “나랑 생각이 비슷한데…”라는 마음이 들 거다. 그런데 그의 사생활은 의외였다. 윌리의 아버지는 영국의 저명한 변호사였고 윌리의 두 형도 법조인이었으나 윌리와 윌리의 바로 위 형은 작가다. 윌리는 파리에서 태어나 8살에 엄마를 여의고 10살에 아버지마저 타계하자 파리를 떠나 영국 작은 마을 목사인 작은아버지 댁으로 이사 간다. 그는 키가 작고 말 더듬 증상이 있었으며 동성애자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증상을 고쳐달라고 신에게 간구했지만 응답이 없자 평생 불신자가 된다. 작은 아버지 권유에 따라 의학 공부도 했다. 면허를 따지만 한 번도 의술은 펼치지 않고 91세로 사망하기까지 글만 썼다. 소설뿐 아니라 희곡도 많이 써서 레이디 프레드릭(Lady Frederick)은 1907년 런던에서 422회나 공연할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가히 파란만장한 인생이지 않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는 게 왠지 측은했다.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많은 글을 쓰며 상처를 달랬을 거야… 덕분에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남편에게 조잘거릴 이야기가 많아서 즐거웠다.


<참고자료>

https://gutenberg.ca/ebooks/maughamws-completeshortstories01/maughamws-completeshortstories01-00-h.html#theromanticyounglady

https://mmccl.blogspot.com/2016/01/cupid-and-vicar-of-swale-1900.html

https://en.wikipedia.org/wiki/W._Somerset_Maugham

작가의 이전글 추억을 부르는 단편 소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