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하 Mar 09. 2024

건너뛰기 금지

 지난주엔 토요일 연재에 처음으로 실패했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새 학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6일 정도의 휴가가 생겼는데, 토요일에 출근을 안 하다 보니 연재를 깜박한 것이다. 오랜만의 긴 휴가에 내심 마음이 풀어졌나 보다. 낮에는 밀린 집안일을 했고, 저녁에는 보고 싶던 영화가 개봉해서 신나게 예매를 해버렸는데 3시간짜리 영화라 극장을 나서니 밤 11시였다. 그제라도 집에 들어가 글을 쓸까도 싶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 연재도 독자와의 약속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니까, 그런데 오늘은 살짝 풀어지고 싶으니까’ 하면서 홀랑 연재를 건너뛰었다. 그런데 함께 글 쓰는 동료 작가분께서 오늘은 왜 글이 안 올라오냐며 연락을 주셔서, 죄송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초보 작가의 푸념에 가까운 이런 글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어서, 함께 무명작가의 세월을 견디는 동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얼른 다 같이 탈출합시다!)

 어쨌든 연재까지 건너뛴 달콤한 휴가는 끝이 났고, 이번 주엔 새로운 직장에 일주일간 출근을 했다. 새로운 일에 적응한다는 핑계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했으나, 역시 힘에 부치는 한 주였다. 오랜만의 주 5일 출근이 어색했고 새로운 시스템과 낯선 공간에 위축되기도 했다. 그리고 나를 계속 따라다니는 질문과도 마주하게 됐다. ‘나, 잘 살고 있는 건가? 이 길로 계속 가도 되는 걸까? 반 생활자답게 딱 절반씩 노력하고 절반씩 시간을 투자하면 되는 걸까? 이것저것 다 챙기는 실속파가 아니라, 이도 저도 다 놓쳐버린 애매한 인간으로 평생 후회하며 살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오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불안도 잠시뿐이었다. 불안을 붙잡고 늘어지기엔 내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가 너무나 아까니까. 그리고 남아도는 시간에 소설을 쓰지 않아 생기는 불안은 자괴감으로 이어지며 잘 다스려지지 않았던 반면에, 일하느라 글과 멀어질 것 같다는 불안은 ‘시간을 더 아껴 쓰자’는 생각으로 금방 정리되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글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확인하게 되기도 했다.

“소설을 위해 죽을 생각은 없다.”라고 했던 다짐이, 어쩌면 죽기 전까지는 소설을 위해 살아보겠다는 결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몇 년간 돈을 왕창 벌어 놓은 후에 1~2년 정도 전업 작가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주 5일 100시간 근무를 하며 야금야금 쓰다가 30년쯤 후에 베스트셀러를 써낼 수도 있다. 아예 포기하고 생활인으로 살다가 문득 정말 모든 걸 쏟아부어 대작을 쓰게 될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모든 삶이 가능하고 나는 아직 슈뢰딩거의 고양이함을 열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방식과 속도가 다 다르듯이, 작가에게 길이 열리는 때도 다 다를 것이다. 같이 출발한 다른 신인작가들은 청탁을 받고 나는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너무 절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도 내 글을 열심히 쓰다 보면 나에게 맞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쓰지 못한 글과, 가보지 못한 여행지와, 아직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이뤄낸 후로, 삶을 건너뛰기하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알란 할아버지’는 100살에도 오줌 묻은 슬리퍼를 질질 끌고 거리로 나가 새 모험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매번 뻔한 교훈일지라도, 뻔뻔하게 다짐하고 뻔질나게 지켜나가자. 삶은 과정이고, 지금 이 순간만이 삶이라는 것을.



[*토요일 퇴근 후 카페에서 바로 써 올리는 실시간 연재입니다. 그래서 모든 글이 초고입니다. 사실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