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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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목소리

나는 거기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누군가는 한 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자리를 지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민 2세로서 나는 언제나 두 개의 세계 사이에 있었다. 두 언어 사이, 두 문화 사이, 두 개의 이름과 두 개의 기준 사이. 그 틈에서 나는 천천히 성장했고, 때로는 조용히 버텼으며, 또 때로는 침묵 속에서 나를 만들어갔다.

처음엔 부모님에게만 의지했다. 이국의 땅에서 외국이란 말조차 어색하던 시절, 내가 기대고 설명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들은 가족뿐이었다. 언어는 어설펐고, 문화는 낯설었으며, 질문을 해도 누구도 나처럼 대답해주지 못했다. 한국어로는 말할 수 있었지만, 한국이라는 사회는 나의 경험과 달랐고, 영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이 내 안에서 조용히 쌓여갔다.

초등학교에 처음 갔던 날이 지금도 선명하다. 모두가 낯설고, 모든 소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때 나보다 한두 학년 위로 보이던 누나가 나를 보며 “dumbass”라고 말했다. 나는 그 단어의 의미를 몰랐다. 그냥 어감이 나쁘지 않게 들렸고, 어쩐지 '소나무' 같은 거라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Thank you”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이 왜 나왔는지 몰랐고, 한동안은 그 웃음의 결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그 웃음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이미 다른 존재로 분류되어 있었음을.

학교 수업 중 과학 시간, 한 문단씩 돌아가며 읽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가 차례로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그 시간, 내 차례가 가까워올수록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발음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자주 건너뛰어졌다. 교사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고,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읽게 될까 봐 긴장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무시당한 것 같아 마음은 서늘하게 식어갔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남았고, 그 순간의 정적은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단지, 그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내 목소리를 줄였고, 내 감정을 눌렀다. '다른' 것은 불편한 것이었고, '다르다'는 것은 곧 잘못된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스스로를 축소시켜야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배웠다. 그렇게 스스로를 가리고, 설명을 줄이고, 점점 더 ‘괜찮은 아이’가 되어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는 배우고 있었다. 어떻게 듣는지를, 어떻게 관찰하는지를, 어떻게 조용한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지를.

결국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말수가 많지는 않지만, 서류를 정확히 읽고, 규정을 세밀히 따지고, 타인의 질문을 조용히 받아주는 역할. 내 자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거창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 그것이 나의 자리였다. 내가 침묵으로 배운 것들이, 지금은 정리된 문장과 안정된 업무로 이어져 있다. 누구보다 신중하게 말하고, 누구보다 조용하게 책임지는 방식으로.

가족은 언제나 나의 중심이었다. 다툼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가 기댈 수 있었던 건 서로뿐이었다. 부모는 가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 역시 부모를 비판하며 자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느라 너무도 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며 살아온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고, 상처 주고, 또 회복했다.

이민 2세로서의 삶은 두 문화를 동시에 해석하고 살아내야 하는 끊임없는 조정의 연속이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너무 한국적이었고, 한국을 방문하면 너무 캐나다인이었다. 나는 언제나 어딘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경계의 삶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낯선 것에 익숙해지는 감각, 설명 없이 받아들이는 힘, 이해보다 먼저 수용하는 자세.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 나라는 개인의 생이 어떤 흐름 속에 위치해 있는지. 그리고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가족 안에서 길을 배웠고, 언어의 틈에서 감정을 배웠으며, 사회의 경계에서 자신을 배웠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만들었고, 나는 여전히 그 시간들 속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충분히 미안했고, 충분히 애썼으며, 무엇보다 충분히 사랑했다는 것을. 이제 나는 건너뛰던 문장을, 누군가를 위해 대신 읽어주는 사람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을 조용히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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