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탄행
모든 것은 생겨나고, 언젠가는 사라진다. 삶도, 이름도, 계절도, 기억도. 우리는 그 가운데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머무른다. 생성과 소멸 사이의 틈, 그 미세한 숨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 오래도록 이해되지 않는 사랑, 조용히 스며든 슬픔이 피어난다.
어릴 적, 나는 죽음이 아주 멀리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할 거라 믿었다. 부모님의 얼굴, 집 앞 골목의 소리, 오래된 그릇 하나까지도 모두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사진 속에 머물러 있는 조부모의 모습처럼,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것은 천천히 사라지고, 어떤 것은 갑자기 사라진다. 어떤 것은 사라진 줄도 모르고 보내고, 나중에서야 비로소 그 빈자리를 알아차리게 된다.
기억 속의 가족도 그렇다. 조부모는 내 기억 속에서는 늘 앉아 계신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어머니는 어느새 손등에 주름이 깊어졌고, 아버지의 웃음은 예전보다 드물어졌다. 형제들과의 대화는 자주 나누지만, 그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고, 어느새 누군가에게 부모가 되어 있고, 세대라는 이름 아래서 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 어떤 말을 남기고, 어떤 감정을 덮어야 할 것인가.
가족이라는 이름은 가장 익숙하고 당연하면서도, 가장 큰 질문을 품게 만드는 단어다. 함께 같은 지붕 아래 살아가지만 서로를 다 알지 못하고, 같은 시간을 지나면서도 전혀 다른 기억을 품게 된다. 사랑은 있지만 그 표현은 언제나 다르고, 이해는 있지만 그 도달은 언제나 늦다. 그 안에서 갈등이 피어나고, 침묵이 생기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마음이 있다. 이해는 때로 거리를 필요로 하고, 용서는 언제나 지나간 시간 위에 있다.
시간은 모든 것을 흐르게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증명한다. 아버지의 침묵은 어떤 날에는 단호한 거절이었고, 어떤 날에는 말보다 큰 응원이 되었다. 어머니의 걱정은 한때 부담이었지만, 그 조심스러운 말투와 반복된 질문이 결국 나를 지켜온 방패였음을, 시간이 지나서야 이해하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모든 말과 표정들이, 지금에 와서는 명확해진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지금은 아프지만 언젠가 감사할, 그런 감정들이 삶을 구성한다.
삶은 단선적이지 않다. 직선처럼 나아가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선처럼 돌고 도는 것이다. 우리는 반복 속에서 성장하고, 익숙함 속에서 다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매년 같은 계절이 와도, 그 속에 피어나는 감정은 다르고, 같은 말을 반복해도 그 말에 담긴 마음은 조금씩 더 자라나 있다. 삶은 그 반복과 변화의 긴장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지고,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변환이고, 다음 생으로의 문턱일지도 모른다. 물이 증기로 바뀌고, 나뭇잎이 흙으로 돌아가듯, 사라짐은 또 다른 형태의 존재로 이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놓치지만, 자연은 항상 그렇게 살아간다. 누군가의 생은 사라지지만, 그가 남긴 문장 하나, 표정 하나, 목소리 하나는 또 다른 생명으로 옮겨간다. 그렇게 기억은 살아 있고, 사랑은 이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도, 잊지 않고 살아간다.
삶은 어쩌면 그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나는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했던 말, 내가 건넨 손, 내가 함께 있었던 시간은 누군가의 마음에 아주 작은 흔적이 된다. 그것이 삶의 본질이 아닐까. 거대한 성취나 대단한 업적보다, 아주 작고 부드러운 흔적. 그것이 생을 증명하고, 사랑을 남기는 방식이다. 그것이 결국, 살아있었다는 증거다.
생성과 소멸 사이의 공간. 우리는 그 사이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매일같이 무언가를 만들고, 무언가를 떠나보낸다. 매일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하고, 무언가를 포기하며, 무언가를 새롭게 맞이하고, 또 무언가를 잃는다. 그 작은 결정과 감정들 속에서 우리 삶은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그것은 너무 작아서 말로 다 옮겨지지 않지만, 너무 깊어서 쉽게 잊히지도 않는다.
내가 바라보는 이 작은 삶의 반복 속엔 수많은 모순과 고요한 진실이 공존한다. 우리는 사랑을 주면서 상처를 남기고, 이해하려 하면서 오해하고,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멀어지고, 멀리 있다고 느꼈던 사람의 기억에 오래 머물게 된다. 삶은 늘 예측과는 다른 모양으로 흘러가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무언가를 배운다. 어떤 깨달음은 늦게 오고, 어떤 감정은 나중에야 정리가 된다.
어쩌면 삶이란 건, 그 늦음까지도 함께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너무 늦게 알게 된 사랑, 너무 늦게 꺼낸 사과, 너무 오래 묻혀 있었던 진심. 그것들을 꺼내기 위해, 우리는 이 계절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다만 ‘그곳에 오래 있었을 뿐’이다. 어딘가에 머물다 가고, 누군가를 지나고, 시간을 건너며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사랑이라면, 이 삶은 충분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흔적을 조용히 써 내려간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흔적이 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