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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Oct 04. 2022

작은 집에서 크게 살기

나는 작은 집에 산다. 공급면적 59제곱미터, 전용면적 39제곱미터, 그러니까 실평수 12평에 사는 거다. 나 혼자는 아니고 짝꿍이랑 둘이 산다. 침실 겸 거실로 쓰는 큰 방 하나, 옷방으로 쓰는 작은 방 하나, 그리고 주방과 화장실이 하나씩. 둘이 살기에 딱 적당하다. 근데 요즘 들어 이사를 해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우리 집은 굉장한 구축이다. 무려 24년 차다. 그리고 국평(국민 평수 84형)도 아니다. 근데 자꾸만 뉴스에서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식이 들리는 거다. 신축 아파트도 마구잡이로 생기고 분양이 쏟아진다고 한다. 아니 그럼 우리 집이 구축이라고 안 팔리면 어떡하지, 옆에 새 아파트 생겨서 가격이 내려가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들이 생겼다. 누군들 새 아파트가 좋지 않겠는가.


아닌 게 아니라 우리도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지 마음을 먹었었다. 구축 아파트라 가지는 단점들이 자꾸만 걸려서였다. 세대수에 비해 굉장히 낮은 주차대수와 요즘 아파트들이 가진 최첨단 시스템(이를테면 IOT스마트홈, 무인 택배함, 실내 환기 기능 등)의 미비.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방의 개수였다. 방이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나는 나만의 공간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인데, 침실 겸 거실은 짝꿍과 함께 쓰는 공간인 데다가 TV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데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작은 방은 옷으로 가득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린 작업실을 만들 수 있고 구축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는, 방이 세 개인 신축 아파트로 가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의 조건을 충족하는 신축 아파트들의 분양가는 예산을 너무도 초과하는 금액이었다. 최대한 영끌하면   있는 금액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빚을 많이 져야 하고, 그렇다면  빚이 우리 생활을 그만큼  옥죌 것이니 고민이 많이 되었다. 조건이 너무 많나 싶은 생각도 했다. 역세권일 , 도보로   있는 거리 내에 동네 마트와 도서관이 있을 , 주위에 산책할 공간이 있을 , 대단지일 , 남향 또는 남동향일 , 그리고 방이  개일 .

그래서 조건들을 좀 빼고 또 준신축까지 눈을 낮추면서 집을 더 알아봤다. 그러나 금액은 그렇게 낮아지지도 않았고 조건을 너무 많이 포기해야 했다. 제일 중요한 조건인 방 세 개짜리를 찾고 금액을 맞추면 구축이었고, 준신축이면서 금액을 맞추면 남서향에 산책할 곳도 없고 지하철역도 멀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우리 집은 비록 구축이고 방이  개뿐이지만 나머지 조건을  만족하는 집이었다. 역세권이고 트와 도서관이 있고 아파트 바로 앞에 내천이 흘러 산책하기 좋으며 대단지이고 남동향이다.


그때 깨달았다. 아, 옷방이 있잖아. 옷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작업공간을 만들면 되잖아?

그렇게 짝꿍과 나는 합심하여 옷 정리를 시작했다. 손은 안 가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걸어두기만 하는 옷, 취향에 안 맞는 옷, 사이즈가 안 맞는 옷, 해진 옷 등 하나하나 들춰보고 입어 보면서 비워냈다. 방 안에 가득 찼던 옷들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옷 때문에 가려져 열지 못했던 창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우린 여태껏 이 방이 이렇게 밝은지 미처 몰랐다.) 그리고 작은 책상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너무 기뻤다. 드디어 나만의 공간이 생기다니! 이사도 안 하고 빚도 더 안 졌는데 내가 원하는 집을 만들었다는 기쁨에 취했다.  물론 여전히 구축의 단점들은 어쩔 수없다. 매번 주차자리를 찾아 헤매야 하고 무인 택배함도, 자동소등 기능도 없다.

그러나 집은, 집 그 자체의 역할만 하면 된다. 단 한 평의 공간이라도 내가 편히 쉴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곳이면 된다.


누군가에게는 정신승리로 보일지도 모른다. 돈이 없으니까 이사를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 말은 일정 부분 맞고 또 일부 틀리다. 사실 가진 게 얼마 없으니 방 세 개짜리 신축 아파트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인 건 맞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진 자원 내에서, 내가 원하는 걸 대다수 이미 이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포기할 수 있다. 내 공간의 부재가 이사를 가기로 한 시발점이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고민거리가 사라진 셈이다.


어떤 것이든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에게 큰 짐이 되지 않는 선에서만이 합당하다. 그 이상은 욕심일 뿐이다.

그렇게 나는 작은 집에서 크게 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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