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Sep 30. 2022

명상보다 좋은 마음쉼법

한동안 잠을 못 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병에 걸려 허덕였다. 바로 우울증이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상처받은 나는 결국 병에 걸리고 말았고 다양한 신체화 증상들을 통해 내 상태가 심각함을 알게 되었다.

바로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살기 위해 해야만 했던 것은 약을 먹는 일이었다. 약은 정말 먹고 싶지 않았다. 약에 의존하고 싶지 않았고 각종 부작용들이 두려웠으며,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나 스스로 설 수 없고,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아 좌절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약을 먹으면 잠을 잘 수 있었고 약을 먹으면 밥을 먹을 수 있었기에 나는 약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무언가 할 수는 없었다. 내내 누워만 있는 나에게 환멸을 느꼈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우울증이란 그렇게 무서운 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고 있을 수 없었다. 현실적이게도 먹고사니즘이 여전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돈을 벌지 못하고 계속 있을 수만은 없었고, 또 그토록 싫어하던 약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서 나으려면 정신과를 더 열심히 다녀야한다고 생각했고 꼬박꼬박 약을 더 먹었다. 그러나 역시 약에 대한 의존만 높일뿐 좋은 방법이 되지는 못했다.

독서를 하고 글쓰기도 시작했다. 나같은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구나, 책을 통해 위로 받기도 했고 블로그를 통해 내 이야기를 나누며 역시 힘든 사람이 많구나 서로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또한 일시적이었다. 나말고 누군가가 있다고 해서 내 아픔이, 내 상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리상담도 시작했다. 한 회 상담에 거금 십만원이 들어갔지만 지인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시작하게 되었다. 상담은 정말 좋았다. 어릴 적 이야기부터 가족과 회사 등 나의 사소한 면면까지 살펴봐주는 상담선생님 덕분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또한 그래서 내가 힘들었구나 알고 병이 다가온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그치만 역시 지속가능한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금전적인 부분이 컸고, 과거와 현재에 대한 상태 파악이 끝났을 뿐 그래서 뭘 더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스스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한가지 약속을 제안하셨다. '매일 하루 25분 걷기'. 일주일에 한번이나 바깥을 나갈까싶은 나에게는 30분 걷기도 부담스럽다고 말씀드리자 25분으로 줄여주셨다(?). 정신과 의사도 걷기를 추천하고, 책에서도 유튜브에서도 우울증 환자에게 걷기가 아주 좋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움직이기 힘든게 너무 컸고, 무엇보다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난 약속이란 걸 했고 약속 어기는 걸 무척 싫어하는 나는 어쩔 수없이 매일 조금이라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처음엔 정말 귀찮았다. 걷는다고 해서 어떠한 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걷기 이주쯤 되어가던 즈음, 나는 내가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약에 취해 아침 늦게 눈을 뜨고서도 침대에서 내내 밍기적거렸다. 하루종일 이불 밖을 안나간 적도 많았다. 그땐 미처 몰랐다. 침대에서 나와보니, 집에서 나와보니 알았다. 무기력해서 누워있었지만 사실 누워있어서 더 무기력해진 것임을.


나는 이제 아침에 눈이 떠지면 곧장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사러, 구경하러, 또 어디를 방문하러 자신있게 걸어갈 수 있다.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사람에 데인 나는 군중 속에 있는 것이 무서웠고 두려웠으며 집 밖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왕복 두시간 거리도 거뜬히, 순전히 내 의지로 걸어 다녀온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사람 구경을 하고 바람을 쐬며 다양한 냄새를 맡고, 그렇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도 할 수 있음을 느낀다.

평소 생각이 많은 나는 명상이 잘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있으면 온갖 상념들이 휘몰아쳐서 더 괴로워졌다.

그러나 걷기는 나에게 딱 맞는 명상이다. 거리를 걷고 있으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그저 편안한 상태가 된다.

나는 그 상태가 좋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걷는다.





이전 10화 랜선 여행, 이만한 게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