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리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못하기 때문이다. 그 쉽다는 라면도 왜 내가 끓이면 맛이 없는 걸까. 그러나 요즘 같이 편리한 세상에서는 나 같은 요알못, 요린이도 쉽게 밥을 해 먹을 수 있다.
한국인은 밥심 아닌가. 그렇다면 일단 밥부터 난관에 봉착하지만 즉석밥이라는 멋진 방법이 있으니 해결이다. 전자레인지에 넣고 몇 분만 돌리면 솥에 금방 한 밥처럼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밥맛도 아주 좋다. 반찬도 문제없다. 이것저것 플라스틱 용기나 비닐에 담긴 것들을 사 와서 늘어놓으면 금세 진수성찬이다.
하지만 설거지만큼은 진심이라 양념 등으로 오염된 플라스틱이나 비닐들은 최대한 깨끗이 씻어 버린다. 내가 한 행동들이 재활용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즉석밥의 비닐을 뜯어내고 밥이 담겼던 그릇을 씻어서 분리배출을 하고 있는데 내가 팔로우 한 계정에서 새 글 알림이 떴다. 눌러보니 세상에 마상에! '즉석밥 용기는 재활용이 안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자세히 읽어보니, 이유는 'OTHER'때문이란다. 이 표시는 두 가지 이상의 재질이 섞인 복합재질이기 때문에 원료 재질 확인이 어려워 대다수 재활용이 안되고 선별장에서 걸러져 일반쓰레기로 처리된다는 거다. 아니 비닐이면 비닐이고 플라스틱이면 그냥 플라스틱인 거지 복합재질은 또 뭐람? 조금이라도 재활용 잘 되라고 씻어 말려 버리는 내 수고로움이 아무짝에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일부 재활용되는 선별장도 있다고 하니 무턱대고 일반쓰레기로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두유나 오트 밀크 등이 담긴 '종이팩'은 '종이'가 아니다. 내지에 코팅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종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래서 분리배출을 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종이팩'을 별도로 수거하는 시스템이 대체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종이 버리는 곳에 함께 버리면 선별장에서 일반쓰레기로 넘어가는 거다.
또 평소 안구 건조증이 있는 나는 인공눈물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것도 재활용이 안된다고 한다. 이유는 '너무 작아서'다. 선별장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선별하기에는 너무 작고, 설사 분리한다 해도 압축 시에 너무 작아 빠져 버릴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이유로 비슷한 크기의 작은 플라스틱은 거의 다 재활용이 안 되는 거다.
아니 이렇게 답답할 수가 있나, 재활용하라고 만들어놓고 이런저런 이유들로 재활용이 안되다니!
그러나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종이팩은 펼쳐서 깨끗이 씻어 말린 후 가까운 행정복지센터에 가져가면 무게를 달아 휴지 롤 등으로 교환이 가능하고 플라스틱 병뚜껑이나 렌즈케이스처럼 작은 것들은 주변 제로 웨이스트 상점에서 회수하기도 하고 러쉬처럼 화장품 케이스를 다시 재활용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수고로움을 애초에 왜 소비자가 져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해서 생산단계에서부터 제대로 해야 할 것 아닌가. 재활용되지 않는 그 수많은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것도 '비용'인데, 왜 생산비용만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없다. 나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 일단은 플라스틱이고 뭐고 쓰레기를 안 만드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것은 - 즉석밥, 그거 뭐 안 사 먹으면 되지! 그렇게 나는 중고 밥솥을 검색하고, 매주 꾸준히 주문하던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중단하고 브리타 정수기를 구입했다. 필터만 교체하면 계속 쓸 수 있고 다 쓴 필터는 주변 제로 웨이스트 샵 수거함에 넣으면 재활용이 가능하다.
뭐가 되었든 이렇게라도 하나씩 해볼 생각이다. '환경 문제는 나한테 너무 먼 이야기 아닌가?'라고 반문한다면 글쎄, 과연 정말 내 문제가 아닌 게 아님을 TV를, 여러 SNS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대체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나 하나쯤이야'를 시전 한다면 코로나19 그 이상의 무시무시한 질병과 더 강력하고 끔찍한 기후위기가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바로 내 집 앞에.
*instagram.com/dahong_jongyeon_kim님의 게시물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