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내게 여러 가지로 반가운 달이다. 일단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지독했을 더위가 물러갈 거란 희망을 깔고 간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이 있다. 아이는 참 시원해지던 그때 태어났다. 결혼을 한지는 7년 차니 9월 초나 이르면 8월 끝부터 추석의 문구들이 보인다. 여기에 나는 기계적으로 가족들의 선물을 알아보고 사놓거나 보내기 바쁘다. 기계적이라고 썼지만 그게 꼭 나쁘지는 않다. 모든 파티와 선물에는 분명 그 사람을 생각하는 소중한 사람들의 분주하고도 크고 작은 손과 발놀림이 필수적이다. 그마저 귀찮다거나 형식적이라고 해서 없애버리면 세상은 너무 삭막해지지 않을까. 나 역시도, 자주 우물 안에만 갇혀 역시 자주 그 귀찮음에 더 눈을 뜨곤 하지만 곧 버린다. 그 바지런함들 뒤에 오게 되는 선물이나 정성을 오히려 너무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으려 하는 게 좋겠다.
작년까진 매번 늦어서 멀리 있는 아빠에겐 꼭 추석이 지나고 나서야 택배가 가게끔 했는데, 정확히 올해는 제때 (심지어 미리) 보내는 데 성공했다. 지독했던 여름이었고, 불안과 시기와 다시 불안과 공존했던 요즘이었다. 그런데, 한편 그 불안과 시기와 걱정들이 얼마나, 내 작다 못해 하찮은 안에만 갇혀있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떤 노력을 얼마나기울여야 늘 한결같이 멀리 보는 사람일 수 있을까를 떠올린다.
그래서 정확히 이때쯤부터 다시 하는 다짐.
이번 주부터는 꼭 성당에 다시 나가야겠다.
예수님 사랑 - 작은돌 ( 감명깊었던 작품인데 정확한 출처를 모르겠다. ) 자주자주 기억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