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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용할 양식 Oct 11. 2020

3. 자기소개

용두사미. MBTI처럼 야채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면, 완두콩은 전형적인 ‘용두사미형’에 속합니다. 용두사미가 뭐냐고 묻는 사람에겐 ‘고개를 들어 저 완두콩을 보아라.’고 답하고 싶을 정도로 완두콩의 생육은 처음은 왕성하나 끝이 부진함을 실천합니다. 뿌린 지 일주일도 안 돼 푸릇한 싹을 틔우더니 한 달이 지나가면 하얀 꽃과 완두콩 꼬투리가 왕왕 차오릅니다. 한동안 이걸 다 어떻게 먹지 부담스러울 만큼 완두콩이 달리는데요. 그것도 불과 이삼 주가 지나면 자라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집니다. 줄기 아래서부터 잎과 콩 꼬투리가 마르다가 급기야 노랗게 질린 모습으로 완두콩은 말합니다.

“야, 더는 못하겠다. 내가 이제 갈 때가 됐나보다.”

“에, 벌써?”

완두콩이 자라는 3개월 남짓 동안 제가 자주 하는 말은 “벌써?”입니다. 때에 따라 뉘앙스는 다르지만요.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어?” 처음의 왕성함에 놀라 물을 때가 있고, “벌써 끝이야?” 끝의 부진함에 맥 빠진 물음을 던질 때가 있죠. 후자가 끝을 앞두고 느끼는 서운함 내지 덧없음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전자엔 다른 속내가 있습니다. “벌써 이만큼이나 자랐어?” 겉으로는 당혹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뿌듯함과 우쭐거리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 차있죠. 이웃이 아는 체를 해준다면,

“그러게나 말이에요! 이렇게 잘 자라서 일만 많아졌어, 아이구, 나는 몰라!”

너스레를 떨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참지 못하고 기어이 두둑을 살금 파보고, 감자를 봤다.
상추를 땄는데, 또 따야 한다.

나란히 발맞춰 봄을 통과한다 해도 야채의 생육 특징은 제각각입니다. 완두콩이 용두사미형이라면, 옆 두둑의 감자는 ‘감감무소식형’입니다. 두둑 안에서 얼마나 자랐을까 소식을 도통 알 수 없다가 수확하는 날이 되어서야 무소식이 희소식이었구나!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구마, 토란, 땅콩도 여기에 속하죠. 감자 옆에는 ‘앵콜형’ 상추가 있습니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새 잎을 내고, 이번엔 진짜 끝났겠지 싶어도 싱싱한 잎이 빼꼼, 연이은 앵콜이 다시 시작되는 겁니다. 이 많은 상추를 어쩌나 난감한 표정을 짓는 사람 한두 명은 텃밭에서 자주 보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상추를 좋아해도 혼자 먹기엔 상추 모종 두 개만 심어도 충분합니다.



순전히 재미로 용두사미형, 감감무소식형, 앵콜형 야채를 분류해봤는데요. 저는 정말이지, 이처럼 분류하고 정의하는 작업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미지의 대상을 명료하게 정의하고 나면 그 대상을 완전히 파악했다는, 곧 모든 미스테리가 한 방에 풀릴 거라는 기분이 저를 훑고 지나갑니다(모든 것이 착각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지만요). ‘음…’이나 ‘글쎄.’로 서두를 떼는 대신 호방하게 ‘당신은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온갖 심리테스트를 못 끊는 이유도 바로 그 짜릿함 때문이에요. 더 정확히는 테스트 결과로 출력되는 문장들의 태도, 그 딱 잘라 말하는 태도에 중독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이트에 개인 정보를 써도 될까 예리한 척 머리를 굴려보지만, 번번이 경계심은 허물어지고 맙니다. 끝내 이름이며 생일을 사실대로 기입하죠. 가명을 쓴다든가 생일을 잘못 적으면 혹여나 정확한 결과가 안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알아낸 나의 꼰대 점수와 비슷한 대통령을 친구와 공유하며 낄낄대곤 합니다. 가끔은 정말 내가 이런 사람일까 진지한 대화로 나아가기도 하고요. 

제가 좋아하는 테스트의 면모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일침의 맛인데, ‘아마 당신은 이럴지도 모르겠어요.…’ 조심스러운 문장들을 만나면 도리어 바랍니다. 내가 믿고 싶은 쪽으로 나를 내몰아줬으면! 무자비한 단언을 해줬으면! 누가 나를 대신해 ‘나’를 정의하고 예언해준다면 냅다 믿어버리고 싶은, 그렇게 허술한 태도를 가지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괜찮아요. 힘내! 요즘엔 그렇게 해서도 성공한다더라.”

저의 자기소개가 끝난 뒤에 위로받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왜 위로를 받은 거지 얼떨떨했어요. 이런 사람입니다. 그런 일을 합니다. 앞사람의 간단명료한 자기소개에 감탄하면서도 저 자신에 대해선 점점 비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나는 위로받아야 할 삶을 살고 있나? 자기소개에 생각지 못한 위로나 호기심 세례를 받은 날, 하는 일에 대해 부연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는 날들이 쌓이고 쌓여 저는 자신을 소개할 때와 장소를 가리게 됐습니다. 어느 때엔 농사짓는 사람이 됐다가 다른 곳에서는 책 만드는 사람(편집자)으로 통합니다. “농사짓고 글도 쓰지만, 주로 돈은 알바로 법니다.” 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일은 드물고, 대체로 편집자라고 퉁칩니다. 그쪽이 대화가 매끄럽게 끝난다는 걸, 나에 대해 말을 많이 한 날일수록 집으로 가는 길이 후회의 늪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리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확하고 솔직한 자기소개를 찾지 못한 날이면 날마다 찜찜한 기분을 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남들도 다 이런 하루쯤은 갖고 사는지 궁금해하면서요.

스스로가 두루뭉술한 덩어리로 느껴지는 날에 MBTI를 했어요. 메일로 받은 MBTI 결과지는 족히 4장은 넘었고, 저를 설명하는 문장들로 빼곡했습니다. 어울리는 직업과 동료, 연애 성향까지 ‘이게 바로 너.’라고 말하는 거리낌 없는 문장들을 읽는 동안 두루뭉술하던 내 윤곽선이 선명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테스트와 별자리 운세, 사주 해설을 정성들여 읽어왔습니다. 유치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저는 매번 테스트라면 진실한 태도로 임하고 있습니다. 제겐 꽤 쏠쏠한 도움이 됐어요. 테스트에 답하기 위해 평소 행동을 다시 살피고, 터무니없는 확언일지라도 삶을 대조해보는 시간은 나를 표현할 단어와 방법을 찾고 이해하는 여정과도 같았습니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번호순으로 점을 잇다가 ‘잠깐, 이게 대체 뭐야?’ 멈칫거릴 때마다 MBTI가 또는 사주팔자가 저의 연필을 잡고 다음 번호의 점까지 선을 쭈욱 그어준 거죠. 한결 더 분명해진 그림을 보며 일종의 안도감도 느꼈습니다.

물론, 자기소개 시간에 별자리와 성향으로만 대뜸 저를 소개할 수는 없겠지만요. 이만하면 지금까지 거쳐온 온갖 테스트들이 지금의 삶에 확신을 보태는 데 힘이 되진 않았을까요. 누군가 제 그림을 보고 “이게 대체 무슨 그림이죠?” 물어본다면, 이제는 주눅들지 않고 태연하게 “이게 덩어리로 보이시겠지만, 사실은 밤하늘의 별자리죠, 후후.” 라고 답할 수 있으니까요.  8월입니다. 새 달을 시작하기에 앞서 오늘은 이시이유카리(일본의 유명한 점성술사) 운세나 볼까봐요.


출처 greatschools.org


*글을 다 적고 나서,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갈증을 온라인에서 부유하는 확언들로부터 쉽게 충족하는 일이요. 다 이해한 줄 알았는데, 당연한 줄 알았는데 예측할 수 없는 일은 매일 벌어집니다. 우리는 모두 매일, 매순간 달라질 수 있고요. 아무리 유형을 나누고 정의할수록 인간은 그렇게 얕게 이해될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습니다. 복잡하고 다종다양한 인간의 모습에 매번 또 놀라는 수밖에 없다는 것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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