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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고푸른 Mar 14. 2022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날들. 110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세느 강도 아니고...미라보 다리도 아니지만....

어머니는 가끔 샹송을 들으셨다

물론 프랑스어를 알아들으신 것은 아니었다

가사를 몰라도 -모든 음악이 그러하듯- 노래가 어느 날 어머니의 마음에 날아와 닿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시절에는 이브 몽땅 Yves Montand이 불렀던 고엽 'Les Feuilles Mortes', 에디뜨 피아프 Edith Piaf의 사랑의 찬가 Hymne A L'amour 같은 프랑스 노래들이 가끔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늘 라디오를 틀어 놓고 집안 일을 하시던 어머니는,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음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대셨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곡 중에 이베뜨 지로 Yvette Giraud의 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라는 노래가 있었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헤어진 연인 마리 로랑생을 위해 쓴 시에 레오 페레가 곡을 붙인 노래였다


Le Pont Mirabeau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다시 기억해야 하는가

La joie venait toujours apres la peine.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온다는 것을

Vienne la nuit sonne l'heure  

밤이 오고 종이 울리고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세월은 가도 나는 머무니…


교과서에 실렸다는 ‘미라보 다리’라는 시는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사랑의 고통과 인생이 할퀴고 간 상처를 이해하기에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내게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껄떡댄 전형적인 바람둥이였고, 마리 로랑생은 그저 허영기가 있는 화가였을 뿐이었다


기욤은 마리 로랑생과 이별한 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부상을 입어 치료받던 중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서른여덟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리는 기욤과 헤어지고 독일 귀족을 만나 결혼했으나 1차 세계대전 발발로 적국의 남자와 결혼한 여성이 되어 견디기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다

언제나 함께 살롱에서 시시덕대며 지내던 파블로 피카소와 마티스가 그림 몇 장을 팔아 기욤을 기리는 초라한 묘비를 세우고 이렇게 묘비명을 썼다.

“무게 없는 인생을 나는 얼마나 많이 달아보았던가…


겨우내 지붕을 덮고 있던 눈이 녹아 처마 아래로 빗물처럼 똑똑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어머니는 주전자에서 보리차가 끓는 소리인지.. 라디오에서 지지직 대는지 모를 소리가 섞인 샹송을, 가사도 모른 채 콧노래로 흥얼거리셨다.

봄이 오고 있었고, 창밖에서 나른하게 햇볕이 쏟아졌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흘러간다…


*아베뜨 지로는 내한 공연에서 ‘노란 셔츠의 사나이’, ‘안개’ 등의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 국내에서 크게 히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유튜브 https://youtu.be/Df2HHbUoG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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