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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Nov 09. 2020

낯선 환경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다. 아들과 학교생활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항상 아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칠판 글씨는 잘 보이니?"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잘 보여요"라고 대답을 했다. 근데 그 말을 의심했어야 했다.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실시했던 시력검사 결과표를 나에게 가지고 왔다. 안과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기를 권하는 내용이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때가 늦었음을 직감했다. 그 후 안과에 가서 정밀 시력검사를 받는데 아들이 시력표의 숫자를 헷갈려하고 제대로 읽지 못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마음이 착잡해졌다. 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하루라도 빨리 안경을 맞춰야 된다는 것이었다. 나와 아내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른 채 안경점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의 첫 안경은 비싼 초경량 티타늄 안경테와 촉촉한 워터 렌즈로 맞췄다. 안경테는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성인 여자 안경테를 구입해서 아들의 얼굴 사이즈에 맞게 조정했다. 분명 키즈 안경이 가성비가 았지만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첫 안경은 디자인과 성능이 모두 괜찮은 것을 해주었다. 또한 안경 코받침 자국이 남아 코의 형태를 변형시킬까 봐 코받침도 실리콘 재질의 에어코를 선택했다. 며칠 뒤에 안경을 다시 찾기로 하고 안경점을 나왔다. 긴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동안 아내와 나는 말이 없었다. 아들의 눈에 심각한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경도 제법 잘 어울려서 멋져 보였음에도 아들이 안경을 쓰는 불편함을 성인이 될 때까지 참고 지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니 우울함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오히려 위로를 받아야 될 아들이 덤덤히 우리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아들의 안타깝고 슬픈 안경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정기적으로 시력검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초등학교 입학 후에 갑자기 늘어난 공부시간 때문에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 거 같다고 아들을 위로했지만 결국에는 유전의 힘이었다. 지금은 아내도 나도 라섹수술을 해서 안경을 쓰고 있지 않지만 둘 다 학생 시절에 시력이 나빠 안경을 썼다. 평소 나쁜 시력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블루베리와 루테인을 열심히 먹였고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모니터를 보는 시간을 제한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너무 일찍 아들에게 찾아와 한동안 부모로서 자책감에 시달렸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지만 아들은 금세 적응하였다. 분명 불편한 것도 많겠지만 지금은 안경을 잘 쓰고 다닌다. 또한 상의를 입을 때 아들은 안경을 벗지 않고 그 상태로 상의를 입는다. 본인의 주특기라고 자랑을 하는데 안경을 못 쓰게 만들어서 혼나는 것은 무섭지 않은가 보다. 그러나 이런 아들도 주기적으로 안경점에서 하는 시력 검사가 약간 두렵다고 한다. 검사 결과가 안 좋아서 부모님이 다시 걱정을 할까 봐, 시력이 더 나빠져서 안경을 다시 맞출까 봐, 새로운 도수에 적응하는데 또 시간이 오래 걸릴까 봐, 근시에 난시가 겹쳐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안 보일까 봐 등 이유도 여러 가지다. 아들이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 보고 극복할 수 있도록 예전에 안경을 썼던 나와 아내의 경험담을 아들에게 실감 나게 들려주었다. 또한 아들이 성인이 되면 시력교정 수술을 시켜주겠다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인간은 물론이고 자연과 동식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속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규칙은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을 말한다. 규칙을 생각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검사와 법, 게임과 스포츠가 있다. 한편 무질서해 보이는 카오스 안에도 질서와 규칙성이 내재되어 있다. 규칙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넷플릭스도 알고 보면 실제로 규칙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칙을 없앤 것이다. 아이는 놀이 속에서 규칙을 배우고, 어른은 조직 생활로부터 규율을 엄수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회사는 고객만족의 원칙으로 경영을 하며, 정부는 법과 제도를 통해 국가를 운영한다. 인간의 공동생활과 규칙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며 한 번 정한 규칙은 쉽사리 바뀌지 않고 규칙을 지켜야 사회의 질서가 유지된다. 이러한 세부적인 규칙에 따라 일반적인 검사 작업이 절차대로 진행이 된다. 모든 검사는 주된 목적을 가지며 검사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 공정성 있는 규칙과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이 되어야 한다. 검사와 시험은 비슷한 말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시험은 '재능이나 실력 따위를 일정한 절차에 따라 검사하고 평가하는 일'이며 검사는 '사실이나 일의 상태를 조사하여 옳고 그름과 낫고 못함을 판단하는 일'이다. 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는 말보다 '검사의 연속'이 더 잘 어울린다. 시험은 나이가 들수록 원하지 않으면 안 볼 수 있지만 검사는 죽는 그날까지 계속 받아야 된다. 단 한해라도 검사라는 절차를 건너본 적이 있을까? 검사 결과에 따라 안도와 걱정이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자신의 개성을 담아 자동차 내외부를 멋지게 꾸미거나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을 ‘자동차 튜닝’이라고 한다. 엔진의 성능에 변화를 주어 연비를 좋게 만들거나 차량 내외관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든다. 인류 역사에 자동차 튜닝이 시작된 지는 100년이 채 안되었고 현재 세계 자동차 튜닝산업의 시장 규모는 대략 100조 원이 넘는다. 미국, 독일, 일본이 자동차 튜닝산업의 선진국으로써 시장 규모가 가장 크며 이들 세 개의 나라는 안전과 소음, 배기가스 등 3가지 기준을 제외한 자동차의 나머지 모든 부분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각종 규제로 자동차 튜닝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이로 인해 자동차 튜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선 위에 있다. 모든 규칙은 만들어질 때는 고유의 정당성이 부여되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불필요해지면 규제로 변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법제와 규칙은 신속히 개정될 필요가 있다. 문화가 시대와 지역, 나라마다 달랐던 것처럼 규칙도 보편성을 추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 튜닝 마니아를 2년마다 떨게 만드는 우편물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바로 ‘자동차 정기(종합)검사 안내장’이다. 안전한 주행과 교통사고의 예방, 환경보호의 취지로 자동차는 정기적으로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 이로 인해 자동차 검사 결과 부적합 판정을 받으면 공장에서 나온 그대로의 모습으로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 지출한 튜닝 비용과 노력은 모두 헛수고로 끝나고 추가적으로 부담해야 될 복구비용만 덤으로 얻게 된다. 몇 달 전에 나 역시 자동차 종합 검사를 받았다. 우편물로 언제까지, 어디서 받아야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기 때문에 검사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따로 시간을 내서 검사소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 성가실 뿐이다. 당연히 검사비는 유료이며 깜박하거나 미루다가 유효기간을 지나쳐버리면 과태료를 납부해야 된다. 2년 전에 똑같은 자동차를 가지고 ‘검사 결과 합격’을 무난히 받았기 때문에 나는 걱정 없이 검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표를 받는 순간 무엇인가 이상함을 느꼈다. 합격도장이 찍혀 있지 않고 처음 보는 문장이 크게 보였다. 다름 아니라 당신의 자동차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재검사를 받아야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자동차 튜닝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지? 알고 보니 부적합 이유는 '자동차 등록 번호판 봉인 훼손'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규칙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1년 전 비 오는 날, 트럭 운전자의 부주의로 교차로에 정차되어 있던 내 차를 포함해 3중 연쇄 추돌사고가 난 적이 있는데 아마도 사고 당시 자동차 번호판의 봉인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 해당 구청 자동차 등록 민원실에 가서 새로운 봉인을 받아 장착 후에 재검사를 해야 한다고 해서 부리나케 모든 관련 절차를 단시간에 마무리했다. 봉인 나사 세트의 값은 저렴했지만 장착하는 비용은 예상보다 비쌌다. 교통사고 당시 이와 같은 내용과 규칙을 알았더라면 보험회사가 전액을 부담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위반 단속에 걸려 과태료 50만 원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행이다 싶었지만 알지 못했던 규칙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었겠구나 싶어 뒷맛이 씁쓸했다.



규칙을 개정하면 검사 절차도 동시에 변경된다. 규칙이 자주 바뀌거나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내용이라면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생소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스레를 떨 만큼 익숙해진다. 깜깜한 밤에 길이 잘 보이지 않아도 익숙한 길이면 무리 없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다. 또한 여행지에서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처음에 의사소통하기는 어렵지만 서먹함은 어느새 사라지기도 한다. 이질적인 여행지에서 느끼는 낯선 감정은 여행의 동반자만 있어도 많이 완화된다. 둘이라서 낯선 마음이 두려움과 외로움으로 쉽게 바뀌지 않고 같이 있기에 실수하고 넘어져도 덜 당황스럽다. 무엇보다 함께 식사를 하면 기쁨이 두 배가 되고 낯선 마음은 어느새 가신다. 낯선 환경에 맞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뒷걸음질을 치지 말고 눈 딱 감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권태로운 하루하루에 당당히 맞서다 보면 그다음 날은 모든 것이 한결 나아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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