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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Mar 09. 2021

믿을 만한 전문가

악기를 연주하면 사람의 뇌 중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이 두드러지게 활성화되면서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특히 고령자가 일주일에 최소 한 시간 이상 악기를 연주하면 뇌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뇌의 구조가 변화되어 치매예방에 좋다고 한다. 또한 어린아이가 악보의 음표와 박자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수의 개념을 깨달아 수리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자신감을 갖는다. 우울증, 불면증 등을 치료하는 데에 효과가 있고 혈압을 낮추기도 한다니 몸과 마음이 함께 건강해진다. 성인이 된 이후로 다시 악기를 연습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이유로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시작은 하지만 역시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오랜 시간을 연습해도 잘 안 되는 부분이 여전히 문제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시작했던 악기 연습이 오히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실의 사회가 노력에 불비례 한 것처럼 악기 연습이 쓸데없이 느껴질 때쯤 안되던 몇 마디가 갑자기 되기 시작하고 이로 인해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악기 소리가 듣기 좋아지면서 스트레스가 이내 사라진다.



악기를 처음 배우는 과정은 누구나 힘들다. 실수 없이 한 곡 전체를 연주하려면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 시간은 때로는 고되게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인내심을 가르쳐 준다. 부모가 자녀에게 악기를 배우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악기를 연주한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작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소근육 발달과 함께 정서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음악이론 수업을 미리 받아놓으면 나중에 음악시험 볼 때 유리하다. 부모의 권유로 악기를 시작하지만 중도에 악기를 그만두는 아이가 많다. 결국 아이가 자신의 악기에 대해 애정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의 소리를 듣고 기다려주고 박자에 맞춰서 함께 연주하는 합주가 아이의 애정도를 높일 수 있다. 연습을 강요하기보다는 여러 악기를 접해보고 음악에 대한 감성이 충만한 아이로 성장해도 충분하다. 그러나 들어간 비용 대비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면 부모는 마냥 관대해질 수는 없다.




요즈음 아들은 온라인으로 클라리넷 악기 수업을 받는다. 정확한 소리 전달 및 자세, 운지법 등을 체크해 줄 때 오프라인 수업에 비해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혼자서는 꾸준히 연습하지 않아서 시키고 있다. 평소에 동기 부여가 부족한 아들에게 선생님의 칭찬과 가르침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국에 관악기 수업을 할 때 마스크를 벗고 관 안쪽으로 숨을 불어넣어야 되는데 비대면이라 그나마 안심이 된다. 초보자가 아닌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있는 아이라면 온라인 수업을 쉽게 따라올 수 있다. 또한 현악기든 관악기든 가성비 좋은 웹캠 한 대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수업은 가능하다. 360도 회전되는 본체에 거치대와 삼각대가 기본으로 제공되고 USB 연결 포트에 꽂기만 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어 편하다. 또한 피아노 수업도 가능한데 학생은 웹캠을 자신의 건반에 초점을 두고 선생님은 웹캠 두 대 중 하나를 선생님의 건반에, 다른 하나를 얼굴에 초점을 맞춰놓고 수업을 하면 된다.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의 고급 기능 중 '배경 소음 억제' 설정을 해제하면 주변의 소리까지 상대방에게 들려서 좀 더 깊이 있는 악기 수업을 할 수 있다. 보통 학습 수업을 할 때는 다시 설정을 해주는데 이유는 선풍기, 에어컨 등 주변의 배경 소음 때문에 학습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도 원격 수업, 화상 회의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널리 다방면에 사용된 적은 없다. 온라인 콘서트, 랜선 회식, 랜선 송년회 등 새로운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어느 날 늦은 오후, 줌(Zoom)으로 클라리넷 수업을 마친 아들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수업을 마치고 평소 하던 대로 마우스피스만 분해해서 먼저 닦은 후 조립되어 있는 나머지를 닦기 위해 침수건을 관 안쪽으로 집어넣었는데 수건이 걸려서 아무리 해도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클라리넷, 오보에, 색소폰 같이 위로 올라갈수록 관이 좁아지는 원뿔형 악기에서 침수건이 걸리거나 끼이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된다. 악기를 사용 후 물기가 남으면 크랙(틈새)이 생길 수 있고 크랙이 심해지면 악기의 소리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악기 내부의 물기를 제거하는 것이 좋다. 보통은 조립된 상태에서 한번 닦고 배럴, 윗관, 아랫관, 벨을 따로 분리해서 연결부를 닦은 후 악기 케이스에 넣어 보관한다.



아들은 부드럽게 빼야 되는데 평소와 달리 뒤로 빼는 끈을 강하게 잡아당겼다고 한다. 수월하게 통과하던 침수건이 갑자기 어딘가에 턱 걸렸다. 순간 당황해서 윗관과 아랫관을 분리해서 다시 잡아당겨보았지만 안쪽에서 완전히 엉켜버려 수건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에게 아들이 도움을 요청하긴 했지만 나 역시 뾰족한 수가 없었다. 혼자서 수리해보겠다고 당기고 비틀고 침수건을 가위로 잘라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수건은 움직이지 않았다.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쑤셔보기도 했지만 악기가 상할까 봐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안쪽을 비춰서 살펴보니 클라리넷 윗관 내부에는 툭 튀어나온 곳이 두 군데 있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톤홀이었다. 나의 무모한 객기가 한풀 수그러들 때쯤 아내가 나에게 혼자서 애쓰지 말고 전문가에게 맡기라고 권했다. 아내의 조언에 수긍 가면서도 중도에 포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음날 짬을 내서 관악기 수리를 전문적으로 하는 악기사를 방문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수리를 맡겼는데 예상보다 수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괜한 고집부리다 난처한 상황까지 안 가서 다행이다 싶었다.




외발자전거처럼 초보자가 처음부터 배우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요즘에는 초보자도 매뉴얼대로 따라 하면 쉽게 시공할 수 있는 제품들이 다양하다. 장비도 간편해지고 관련 동영상도 많아서 부담 없이 도전해볼 수 있다. 손재주가 부족해도 화장실 또는 현관 타일을 셀프 시공하거나 층간소음 매트를 직접 깔고 차량 유리막 코팅도 알아서 척척 해낸다. 반죽기계가 없거나 직접 반죽을 할 시간이 모자란 사람은 식빵, 호떡 믹스 제품을 활용할 수 있다. 셀프케어 시대에 맞게 헤어도 피부도 집에서 챙길 수 있게 제품이 다양하다. 비대면 시대에 셀프문화가 더욱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작업시간과 작업 결과물의 질적인 차이로 초보자와 숙련자가 구분이 쉽게 된다. 아무리 문턱이 낮아졌다고 하더라도 전문가는 디테일이 섬세하고 마무리가 훌륭하다. 오랜 경험은 노련미를 돋보이게 하고 돌발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게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시대이기 때문에 배움을 멈추지 않는 전문가의 손길이 우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내가 한 말은 남에게 물어보랬다'라고 나와 관련된 일은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남이 더 정확히 판단한다는 말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전문가의 말을 맹신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비판과 검증을 달게 받을 필요 역시 존재한다. 전문가에게 주는 돈을 아까워하지 말고 머리 아픈 문제일수록 신속하게 전문가에 맡기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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