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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Mar 30. 2021

통증과 엔도르핀

학창 시절 우유 급식에 대한 추억은 웬만한 사람은 다 있다. 요즘에는 우유 급식을 안 하는 학교도 많아졌고 무료로 나눠주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돈이 없으면 학교에서 우유를 먹지 못했다. 매월에 한 번씩 학교에서 나눠준 노란 봉투에 현금으로 우유값을 넣어 갔었고 2교시 수업이 끝나면 우유 당번 2명이 배식을 받기 위해 우유 창고로 수업이 끝나기 전에 부리나케 달려갔다. 성장기 학생들에게 필수 영양소를 공급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던 초등학교 우유 급식은 1981년도부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초록색 플라스틱 우유 박스에 담겨 있던 흰색 우유가 새삼 향수를 일깨운다. 우유를 옷에 엎질러 하루 종일 우유냄새가 났던 아이도 있고 몰래 집에서 가져온 핫초코 분말을 섞어 먹던 친구도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우유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먹기 위해 어떤 아이들은 입을 활짝 벌렸고 우유 팩을 접어 발로 밟아 터트리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아이도 있었다.



우유를 마시고 배탈이 나서 응급실에 가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 선생님은 특별히 우유 급식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셨다. 우유는 섭씨 4도 정도가 보관할 때 알맞은 온도라고 한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보관이 어려워지면서 선생님은 무조건 우유를 받은 즉시 마시게 하셨다. 집에 우유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다 마신 팩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제출하게 하시고 빈 우유팩의 개수를 일일이 셈을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관상의 이유로 우유가 상해서 배앓이를 했던 아이도 있었겠지만 당시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유당불내증(우유에 함유된 유당을 제대로 분해하여 흡수하지 못하는 증상)이 있던 아이가 우유를 먹고 배가 아팠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우유를 먹기 싫은 아이는 화장실에 몰래 버리기도 했지만 내 입맛에 우유는 잘 맞았다. 나는 딱히 우유 알레르기도 없었고 차가운 우유의 신선함을 느끼며 한 번에 마시는 것을 즐겼다. 또한 따뜻하게 데울 수 있는 유리병 우유와 삼각팩 우유를 좋아했는데 당시에 나는 겉모양에 현혹되어 종이팩 우유보다 더 맛있다고 착각을 했다. 지금도 삼각팩 우유는 레트로 제품으로 다시 출시되어 향수를 자극하며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 가능하지만 여전히 빨대나 컵이 없으면 마시기 불편하다. 어린 시절에 나처럼 우유를 많이 마셨다고 해서 성인이 돼서 남들보다 키가 커지는 것은 아니다. 우유에 대한 맹신은 깨진 지 오래되었고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어차피 우유를 마셔야 된다면 되도록 암을 유발하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먹지 않은 소에서 채취한 우유를 마시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매일 마시기보다는 일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섭취하고 가끔 대체식품으로 두유를 선택해도 좋다. 몸에 좋은 음식도 과도하게 먹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은 건강과 영양균형을 중시하면서도 바쁘다는 이유로 최대한 간편하고 효능이 큰 것만을 애용하는데 가급적 음식의 부작용은 정확히 알고 먹어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뜨겁거나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 아기 때는 이유식에 살짝 매운 재료가 들어가도 단번에 알아차리고 뱉어냈고 김치는 아예 백김치만 먹고 자랐다. 후라이드 치킨도 보통 염지 한다고 매콤한 게 들어가는데 그런 이유로 먹지 못했고 카레와 양념치킨은 먹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떡볶이도 짜장 소스로 만든 것만 먹었고 라면도 입에 대지 않았다. 매운맛이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아들이 너무 과장되게 매워해서 캡사이신 알레르기가 있나 싶을 정도로 걱정한 적도 있다. 마늘과 고춧가루 등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간 김치는 학교 급식의 대표 반찬이며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에서도 종종 나온다. 단체생활을 대비해 아들에게 덜 매운 김치를 맛보게 하고 소량이라도 꾸준히 먹이다 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김치를 잘 먹지는 못해도 무작정 피하지는 않는다. 아들은 김치가 맵다 싶으면 무조건 물에 적셔서 먹었고 아이들의 군것질에 빼놓을 수 없는 라면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순한 맛부터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운 라면은 먹지 못하고 수프도 조금만 넣고 끓인다. 일단 비주얼이 매워 보이면 쉽게 젓가락을 대지 못한다. 어릴 때는 억지로 먹이면 트라우마가 생긴다고 쉽게 권하지도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것은 타고난 아들의 입맛과 체질의 문제인 듯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혓바늘이 돋고 혀끝이 아릿아릿 아픈데 이제 그런대로 적응해 가고 있어 다행이다.



이러다 보니 식사를 할 때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히 아들은 우유를 찾는다. 우유가 없으면 두유라도 있어야 마음을 놓는다. 남들은 키가 크는데 도움이 되라고 우유를 마시지만 아들은 매운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우유를 마신다. 매끼 우유나 물로 배를 채우다 보니 배가 다 차서 정작 다른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때도 있다. 또한 아들은 냉장고에 우유가 떨어질 것 같으면 미리 우유를 사달라고 알려준다. 과일주스나 꿀물보다 확실히 우유가 매운맛을 더 잘 잡는데 이유는 우유의 지방이 혀의 표면에 붙어 있는 캡사이신을 떼어내는데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자극적이고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매운맛을 특별히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몸에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하니 적당히 매운맛을 즐기는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 지인들이 하는 이야기가 놔두면 언젠가는 먹는다고 하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매운맛 아이스크림이 유통가의 새로운 대세로 떠올랐다. 청향 고추의 향이 입혀지고 불닭 소스의 기본 맛이 가미된 아이스크림이 출시될 정도로 바야흐로 대한민국에는 매운맛 열풍이 불고 있다. 코로나 블루로 인한 스트레스를 매운맛으로 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냥 맵게'가 아니라 '더 맵게'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를 잡았다. 단순히 맛에 대해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는 이러한 현상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생리학적으로 매운맛은 뇌에서 통증으로 인지한다.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혀에 닿으면서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입안이 얼얼해지고 콧물과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때 뇌가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엔도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 물질을 분비하고 일시적으로 기분이 좋아지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따라서 매운맛은 누군가에 통증이지만 한편으로는 신나는 자극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매운맛에 한번 중독되면 더 강력한 자극을 찾게 되고 쉽게 벗어나기 힘들다. 연구에 따르면 고추 등 매운 음식을 많이 오랫동안 먹으면 기억력이 감소할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평소 과도하게 매운맛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한때 나는 찌르는 듯한 양쪽 어깨의 통증에 무거운 신음을 내며 잠 못 든 적이 있다. 일명 회전근개 파열로 어깨와 팔을 연결하는 근육이나 힘줄이 손상되어 아픈 증세를 유발하는 질환이다. 통증 때문에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지 못했고 팔을 뻗거나 들기 어려웠다. 특히 누워있는 자세가 앉아있거나 서있을 때보다 더 통증이 심해졌는데 증세가 있는 쪽으로 돌아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한동안 수면장애를 겪었다. 처음에는 오른쪽 어깨가 심하게 아파서 통증을 없애는 진통제와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았다. 일시적으로 효과는 있었지만 장기간 약을 복용하면 내성이 생기고 약의 부작용에 빠질 위험이 높아져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이후 재활 수준의 운동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였고 도수치료를 꾸준히 받아서 이제는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다.



하지만 오른쪽 어깨가 조금 나아지더니 바로 왼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매운맛을 먹을 때 통증을 경감시키고 기분 좋게 하는 엔도르핀이 나오는 것처럼 어깨 통증에도 억제 호르몬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참기 힘든 아픔이 밀려오면 그때는 그 어떤 약도 효력이 없었다. 단지 그 순간이 지나가기를 참고 기다릴 뿐이었다. 기분 좋은 얼굴로 방긋 웃으며 맞이하는 통증은 없다. 고기를 씹거나 하품을 할 때 귀가 불편하거나 간지러우면 급성 외이도염을 의심해 볼 수 있고 손톱이나 발톱 주변이 붓고 염증이 생기면 조갑주위염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피부염처럼 통증은 금방 사라지지만 실제 완치하는 데에 몇 주가 걸리기도 한다. 모든 통증은 자연적으로 치유될 때도 있지만 오래 방치할 경우 악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가만 놔두면 통증은 허리에서 목으로, 어깨에서 엄지발가락으로 온몸을 타고 마치 혈액처럼 움직인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통증을 느끼는데 이러한 통증을 쉽게 무시해버리면 큰일 난다.



우리 몸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에너지가 필요하면 단것이 자꾸 먹고 싶고 필수 영양소가 부족하면 소금물 같은 짠맛을 찾는다. 또한 심리적으로 불안할 때는 우유 같은 유제품이 끌리고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는 매운 음식이 생각난다. 몸이 때에 맞게 알려주는 힌트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통증은 나를 공동체로부터 바로 격리시킨다. 또한 고통의 기운은 타인에게 빠르게 악영향을 미친다. 통증을 신속하게 완화시켜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의 나쁜 감정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무통주사라고 100% 통증을 없애는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 통증이나 스트레스를 완전히 없애려 애쓰지 말고 다만 다양한 방법으로 완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낫다. 참을 수 있는 통증은 진짜 통증이 아니다. 접질린 발목을 따뜻한 수건으로 찜질을 하면 통증이 상당히 가라앉는다. 우리 인생에도 이러한 따뜻한 수건이 시의적절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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