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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스크 Dec 21. 2020

건강한 애착

글자 하나의 다름이 뜻을 완전히 왜곡되게 전달할 수 있다. 집념은 한 가지 일에 매달려 마음이나 생각을 쏟는 것을 말한다. 집념은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이며 집념이 강한 사람은 책임감도 강하다고 묘사된다. 열정이나 승부 근성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된다. 반면에 집착은 어떤 것에 늘 마음이 쏠려 잊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을 나타낸다. 집념과는 달리 부정적인 표현으로 쓰이며 욕망, 재산, 명예, 과거와 같은 어휘와 어울린다. '집념과 집착'은 글자 하나가 다를 뿐 비슷한 뜻인데도 이렇게 풍기는 뉘앙스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꼭 이기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불타오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다가 실수를 범한 적은 없는가?



집착과 애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애착이 왜곡되면 집착으로 바뀐다. 애착은 몹시 사랑하거나 끌리어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마음을 일컫는다. 집착과는 달리 좀 더 긍정적인 표현이며 자식 사랑, 창작품, 물건, 부동산 같은 낱말과 함께 활용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와 안정된 애착과 건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는 문제해결력이 강하며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깊다고 한다. 적절한 애착이 안정적인 정서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그 적절함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너무 고집이 세도 문제고 너무 없으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아이의 정서적인 성장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바로 부모라고 하니 자식의 성장을 가로막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부모의 얼굴에 행복감이 깃들면 아이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맛본다.



(c) 2020 JiHyun Yoo All rights reserved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음악시간 준비물이 리코더였다. 아들은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선물로 받았지만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플라스틱 리코더를 들고 학교에 갔다. 선생님께 리코더 운지를 배우고 각자 연습을 한 후 함께 합주도 하면서 갑자기 리코더에 흥미를 느낀 아들은 그날부터 맹연습에 들어갔다. 선생님이 악보와 함께 지정곡 몇 곡을 제시해주셨고 리코더를 잘 부르는 학생이 먼저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다. 검사에 합격을 한 여학생 몇 명은 곧바로 반의 리코더 마스터가 되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리코더 마스터한테 검사를 받으면 되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당연히 아들은 리코더를 잘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리코더 마스터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해서 전체 남자 중에는 두 번째로 모든 지정곡을 통과했다. 리코더는 단순해 보이지만 소리통이 일자다. 따라서 호흡이 섬세해야 하며 강약을 조절하기 어려운 악기다. 연습을 할수록 안되던 운지도 잘 되고 곡 하나를 클리어하면 성취감과 재미도 생겨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리코더만 가지고도 웬만한 노래는 다 연주할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들은 리코더를 부는 일에 강한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장인어른이 유럽여행을 다녀오면서 독일산 목관 리코더를 아내의 선물로 사 오셨다. 매번 아내와 어울리지 않은 선물을 사다 주셔서 별로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아내의 마음에 흠뻑 드는 물건이었다고 한다. 목관 리코더는 플라스틱 리코더에 비해 소리가 더 깊고 부드러웠으며 음정도 고르고 정확했다. 특히 맨 밑 손가락을 놓는 위치, 즉 저음부의 운지가 편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자신의 어릴 때 추억'을 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넌지시 말했다. 목관 리코더의 좋았던 기억을 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했다. 나는 아내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아내는 바로 해외직구로 독일산 목관 리코더를 주문해서 아들에게 선물했다. 아들 역시 아내만큼 새로운 악기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아들은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항상 리코더를 불었다. 이미 단순한 장난감의 단계를 벗어나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때로는 입에 두 개의 리코더를 문 채 양손으로 각각의 리코더를 부르는 화려한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아들이 악기와 함께 행복하기를 소망하는 아내의 마음이었을까? 그 이후 아내는 아들에게 알토 리코더, 파라 피리로 불리는 피페 등 새로운 악기를 사주었다.



점점 좋은 소리에 대한 갈증이 생길 때쯤, 아들의 고모 찬스로 입문용 클라리넷을 대여받았다. 또한 좋은 레슨 선생님을 추천받아 자연스럽게 아들은 리코더에서 클라리넷으로 넘어갔다. 원래 아내의 성장기에 진정한 취미였던 플루트를 시켜볼까, 아니면 다른 현악기를 해볼까 고민했지만 관악기 중에 클라리넷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덧 아들은 클라리넷을 배우기에 적합한 입술의 근육과 폐활량을 가진 나이가 되었고 관악기 중에서도 독특한 음색을 가진 클라리넷과 제법 잘 어울린다. 리코더를 연습할 때만큼의 열정도 아니고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클라리넷이 아들의 둘도 없는 친구다. 평생을 함께 할 친구를 선물해서 부모로서 마음이 뿌듯하다.




어른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사업 때문에 골프를 치다가 어느새 골프가 인생의 중요한 취미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회사 친목도모를 위해 산에 갔다가 완전히 자연인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다. 모든 기업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개인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태도를 쉽게 바꾼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지만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른은 좋아서 집착하다가도 이익이 사라지면 결국에는 중단한다. 반면에 아이는 그냥 좋아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있지만 딱히 목적은 없다. 아이들은 익숙한 사람과 새로운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재미를 즐긴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만들고 책을 사랑하는 아이는 자나 깨나 책만 찾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하루 종일 축구를 해도 지치지 않고 유명한 축구선수 이름을 달달 외운다. 성인보다 웨이크보드나 스노보드를 잘 타는 아이도 있으며 어른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아이도 있다. 놀이터에 아이들은 단순한 잡기 놀이를 하며 숨바꼭질을 해도 정말 재미나게 논다. 그러나 아이들은 싫증이 나면 즉시 그만둔다.



좋아하는 방식이 달라도 결국에 우리의 뇌가 가장 좋아하는 배움의 방식은 놀이라고 한다. 놀이를 통하여 학습을 하고 아픈 마음을 치료받고 나이가 들어서는 건강도 지킨다. 아이나 어른이나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지만 실패로 크게 절망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성장과 성취의 기쁨 때문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 또한 귀중하다. 가끔 나는 아들과 인터넷에 떠도는 옛날 사진들을 함께 보면서 나의 추억을 공유한다. 플라스틱 채로 입에 넣고 씹어 먹던 아폴로, 일명 뽑기라 불리던 별 모양 달고나, 연탄 화로에 구워 먹던 쫀득이와 같은 불량식품들에 관한 이야기를 정겹게 나누고 1988년 서울 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의 영상을 같이 본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옛날이야기가 되었지만 아들과 함께 공유하는 순간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 돌아온다. 



건강한 애착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랑을 바탕으로 형성된 친밀한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아들이 갓난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틈만 나면 안아주었다. 지금도 내가 박수를 두세 번 치고 양팔을 벌리면 어느새 훌쩍 큰 아들이지만 자동반사적으로 나에게 와서 안긴다. 자녀는 부모가 옆에만 있어도 편안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자유롭게 놀고도 싶어 한다. 그래서 나는 아들에게 가능하면 합리적인 모험을 허락하였다.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 공간이라면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는 방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아이의 정서 발달에 부모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듯 어른의 건강한 정서 유지에도 가족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결국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건강한 애착을 갖기 위해서는 가족 간의 무한한 격려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격려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음은 무한하나 타인 앞에 서면 행동은 고질적으로 유한해진다. 쑥스러워 말로 할 수 없다면 꾸밈없는 진정성이 느껴지는 문자메시지라도 보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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