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소설] EP.1
대리석으로 된 4인용 식탁, 잡채, 갈비찜, 미역국, 아침부터 맛있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뜨거웠던 미역국의 온기가 사라질 만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아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정우는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약속 시간 어기는 걸 매우 싫어하던 아영이 본인의 생일날 연락도 없이 늦는다는 사실이 정우를 불안하게 했지만 가까워진 출근 시간에 정우는 쓰고 있던 유리얼 글라스를 벗어 식탁 위에 올려 두고는 식어버린 음식을 다시 한번 데워두었다. 벽걸이 시계를 확인하니 출근 시간이 가까워져, 정우는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드레스 룸 한쪽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아영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결혼 전, 이곳으로 이사를 올 때, 집안 곳곳 아영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중에서도 드레스룸 인테리어에 특히나 많은 공을 들였다. 정우는 아영의 흔적을 뒤로하고, 반대편에 있는 자신의 옷들 중 아영이 가장 좋아했던 회색, 모던 정장을 입고. 시계와 가방을 고른 뒤 유리얼글라스를 챙겨 집을 나섰다.
밖은, 이제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더위를 많이 타던 아영이, 좋아하는 가을이 다가왔다. 회사에 도착한 정우는, 경비원들과 인사를 나누며 보안 검색대를 통과 후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로 들어온 정우는, 멀리서부터 죽상을 하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 차장을 발견하였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괜찮아.”
박 차장에게로부터, 엄 이사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전해 들은 정우는, 곧바로 이사실로 향했다. 그리고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았기에, 이사실, 문 앞에 서서, 흐트러진 곳은 없는지, 옷 정리를 하였다. 평소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엄 이사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크를 하자, 들어오라는 대답이 낮고 딱딱하게 들려왔다. 태없는 각진 안경 사이 찌푸려진 미간으로‘엄기준’ 이사의 기분을 알 수 있었다.
“한 팀장, 회사가 만만한가?”
차분한 목소리에 공격성이 담긴 것을 느낀 정우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럼, 자네가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거군, 긴급 호출을 무시할 정도로 말이야.”
“야간 담당자 중에도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큰일을 겪은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정말 죄송합니다.”
정우의 대꾸에 미간의 주름이 깊어진 엄 이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던 파일을 짚어 들어 정우에게 던지듯 전달했다.
“그런 놈들이 잘도 이따위 짓을 저질렀군, 그리고, 평생 호스나 끼고 살 뻔한 자네 와이프를, 온 월드로 들여보내준 게 회사네, 그럼, 그 몸뚱어리 하나 정도는 회사를 위해 바쳐야 하지 않겠나.”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네부터 그러니, 팀원들도 그 모양일 수밖에, 오늘 안으로, 문제없이 복원시켜 놔야 할 걸세.”
엄 이사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하며 손짓으로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엄 이사에게 받은 파일 안에는, 새벽에 발생한 사건이 정리되어 있었다.
박 차장의 개인 핸드폰을 해킹한 해커가 온 월드 메인 관리자 컴퓨터로 메일을 한통 보냈다. 그 이후 박 차장의 핸드폰을 이용해, 야간 보안 담당자인 오 대리에게, ‘보낸 메일 확인 부탁해’라는 문자를 보냈고, 오대리가 의심 없이 메일 안의 파일을 다운로드하자 악성코드가 퍼지며 해킹이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정우가 만든 2차 보안 프로그램이 작동하면서 슈퍼 양자컴퓨터 안의 A.I가 잘못된 접근을 확인하였고, 메인 컴퓨터를 곧장 다운시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메인 관리자 컴퓨터가 다운되기까지 걸린 15초 동안, 해커가 무엇을 했는지였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문제가 될만한 일은 없겠지만, 보안 정보를 몇 개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자리로 돌아온 정우에게 여전히 정신없어 보이는 박 차장이 오 대리를 데리고 와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를 건넸다. 너무나도 초보적인 실수였기에, 오대리는 동공이 반쯤 풀려, 영혼이 가출한 듯 보였다. 그런 오 대리에게 정우는 말없이 박카스 한 병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오 대리의 대답에 축축함이 보였다.
“다른 문제는 없지?”
박 차장이 대답했다.
“네 혹시 몰라 슈퍼 양자컴퓨터 쪽도 확인하였는데, 메인 관리자 컴퓨터와 접근 권한을 분리시켜 두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행이네, 오늘 고생 많았어, 집에 들어가서 좀 쉬어”
정우는 회사에 있는 동안, 보안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세컨드 관리자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교체하였다. 어두워진 공간에서 벽시계는 저녁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영등포에서 올림픽 대로를 타고 가는 정우의 차 옆,‘9월 30일 제54회 온 월드 입주 당첨자 발표’라는 글귀가 한강 위로 떠올랐다. 드론들이 각각 빛을 내며 온 월드 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정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