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World

[SF소설 ] EP.4

by 김경빈

며칠 동안 수십 개의 인터뷰를 소화하느라 녹초가 된 황 박사는‘크리에이션’에서 주최하는 나노과학 연구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최근, 황 박사가 연구 중인 ‘D.N.A 복제 분열 나노로봇’ 연구가 큰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V.I.P 초청장을 받은 것이다. 황금색 표지의 화려한 초청장 안에는 자신을 초청한다는 말과 함께 극진히 대접한다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 말을 증명이라고 하듯 포럼 측에서 준비해 준 전용기 안에서 황박사는 지친 몸을 잠시나마 달래 볼 심산이었다.

“황찬! 이것 봐봐 의자 촉감이 장난 아니야, 얼마 전에 탔던 비즈니스석 의자보다 10배는 좋은 것 같은데?!”

같은 연구 개발에 참여 중인 신박사는, 황박사와 같은 황금색 초청장을 손에 쥐고 의자 앉아 방방 뛰었다. 신 박사의 하이텐션을 막기 위해, 황 박사는 다급히 안대와 헤드셋을 착용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신 박사는 그런 황박사의 방어아이템을 아무렇지 않게 무력화하듯 안대와 헤드셋을 양손을 사용해 들어 올렸다.


“뭐야, 이런 어메이징 한 전용기를 두고, 바로 꿈나라로 가겠다고? 그건, 전용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소은아 나 피곤해...”

“그래서 내가 평소에 운동 좀 하자고 그랬지?! 연구소에만 박혀서, 그놈의 데이터들만 들여다보니, 이렇게 말린 멸치처럼 되는 거라고.”


신 박사의 통통 튀는 잔소리에, 황 박사는 자신의 얇은 팔뚝을 어루만지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무너지기 직전의 눈꺼풀에 힘을 주고, 언짢다는 듯 노려보며 신박사의 떡진 머리카락을 걸고 반격에 나섰다.


“이 팔뚝 덕분에, 이런 전용기도 타볼 수 있는 거야, 그러는 너도 밤새 연구 데이터 확인한다고 머리도 못 감고 나왔으면서, 나한테 할 말은 아니지 않아?”

“이거? 전용기에서는 샤워도 할 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안 감고 나온 건데.”


떡진 머리카락을 만지며 실실거리는 신 박사를, 황 박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신 박사는 그런 황 박사의 팔뚝을 붙들고 일으켜 세워 화장실 구경을 나섰다. 두 사람은 저녁 8시가 돼서야 런던 공항에 도착했다. 오는 내내, 각종 샴페인과 최고급 수비드 스테이크를 먹으며 인생을 즐긴 신 박사는, 반쯤 취해있었고 술 한 모금하지 않은 황 박사도 10시간이 넘게 재잘거리는 신 박사 덕분에, 절인 오이처럼 흐물거리는 상태였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신 박사는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런던 거리가 예쁘다느니, 좋은 카페를 발견했다며 같이 가자는 둥 입을 쉬지 않았다. 다행인 건 7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무려 개인별로 준비해 준 주최 측 덕분에, 신박사와 잠시나마 떨어져 편안히 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아직 피곤함에 절여져 있던 황 박사는 8시부터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만으로도 현관 앞에 있는 사람이 신 박사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황 박사는 7성급 이불에 파묻혀 밀린 잠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들떠있는 신 박사를 맞춰주기 위해 이불에 돌돌 말린 상태로 현관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 내가 대박인 거 알려줄까? 조식을 방으로도 가져다줄 수 있다고 그래서, 내가 네 것까지 여기로 가져다 달라고 했어, 30분까지 가져다준대, 완전 대박이지 않아?”


황박사는 앞, 뒤 두 번의 대박을 붙인 신 박사의 말에서, 어떤 점이 대박인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기에 건조하게 대답했다.


“그래, 대박이네.”


그런 태도의 황 박사가 익숙한 듯 신 박사는 자신의 텐션을 유지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의 커튼을 죄다 걷고는 닥스훈트처럼 스위트룸을 누볐다.


“황찬! 일로 와서 창밖 좀 봐봐 조경이 너무 예뻐! 우리 딸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이번 포럼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딸이랑도 시간 좀 보내고 그래, 아직은 엄마가 필요할 때잖아.”

“그래야지,”


구름 한 점 없이 좋은 날씨가, 푸른 하늘의 조도를 더욱 높이는 것 같았다. 조식을 먹고, 두 사람은 주최 측에서 보내준 리무진을 타고, 포럼장으로 향했다. 일반 포럼과는 다르게, 크리에이션의 C.E.O가 개인적으로 주최하는 포럼이라 그런지 차량은 교외로 한참을 더 나갔다. 푸른 배경이 점점 짙어지고 한참을 더 이동하고 나서야 차량은 커다란 철창 문 앞에 멈춰 섰다. 철창 옆 경비실에서 검은색 슈트 차림의 남자들이 나와 두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였고, 우렁찬 소리와 함께, 리무진을 막아선 철창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숨통이 트일 듯 높이 자란 메타스퀘어 나무를 따라 달렸다. 곧이어 다양한 색감의 꽃들과, 잘 정돈된 사철나무 정원이 나왔고, 그 건너편으로‘위대한 개츠비’에 나올법한 매너하우스가 성처럼 서 있었다. 바로크양식의 화려한 외관과 아름다운 색감이 저택을 더욱 압도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항상 말이 많던 신박사도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는지 감탄사만 연발할 뿐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정문 앞에서 리무진이 멈춰 서자, 사용인이 다가와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집 사장의 안내에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장식품들이 가득한 중앙홀을 지나, 포럼이 진행되는 방에 도착하였다. 강당의 단상 뒤로, 커다란 스크린이 놓여있었고, 4인용 원형 테이블 다섯 개가 그 앞으로 나열되어이었다. 식탁 위에는 난생처음 보는 디저트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황 박사와 신 박사는, 안내에 따라 각자의 이름표가 적힌 의자 앞으로 가 앉았다. 그때 먼저 와 앉아있던 사람이 황박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교수로 일하고 있는 이슬람계의‘아림’ 박사였다. 아림 박사와 황 박사는 몇 년 전, 황 박사가 초청 강연을 하러 옥스퍼드 대학에 갔을 때 만나 꾸준히 친분을 나누는 사이였다. 황 박사는 반갑게 인사를 하며 신 박사를 소개해주었다. 나머지 빈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름표에는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정확하게 ‘엄기준’이라고 적혀있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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