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World

[SF소설 ] EP.5

by 김경빈

담소를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의 앞에 빈자리의 주인공이 나타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는‘엄기준’이라고 합니다.


본인을 소개하며 건넨 명함에는 금박으로 된 이름과 화려한 이력이 나열되어 있었고 큼지막하게 ‘화이트 해커’라고 적혀있었다.


“얼마 전까지 군 사이버 방호 사령부 대령으로 있다가, 전역 후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보안프로그램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명함에 적힌 번호로 역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나저나 여기서 황 박사님과 신 박사님을 만나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희를 아시나요?”

“그럼요! 요즘 대한민국에서 제일 핫한 박사님들 아니십니까. 정말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네 사람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을 보고 싶었다는 엄기준의 말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내용은 엄기준 본인의 자랑을 담은 역대기였다. 황 박사는 그런 허세스러운 모습에서부터 별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테이블에 있던 빈자리가 모두 채워지자 조명이 어두워지며 단상 위로 턱시도를 입은 중년 남성이 천천히 올라갔다.


“모두들 반갑습니다. 저는 이번 포럼을 주최하고, 여러분들에게 초청장을 보낸 크리에이션의 대표‘리암’이라고 합니다. 저의 초대에 흔쾌히 응하여 자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번 포럼을 주최하게 된 이유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신 여러분들과의 토론을 통하여, 지식의 발전과 더불어 저의 안목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서입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포럼이 진행되는 삼일 동안 여기 계신 모든 분들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마지막 날인 수요일에는, 저희 크리에이션의 놀라운 연구성과 발표와 함께, 놀라운 제안도 준비되어 있으니, 자리하신 모든 분들이 마지막까지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바로 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리암의 개최사가 끝나고, 사회자가 올라가 앞으로의 식 순서와 스케줄을 설명해 주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나노과학의 발전과 함께 앞으로 변화해 갈 환경, 기술, 생명입니다. 각각의 주제별로 총 3일에 걸쳐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며 매일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오후 1시까지 진행됩니다. 1시 이후의 일정은 개인 시간이며 그에 따라 필요한 모든 것은 지정해 드리는 담당 사용인들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첫 번째 주제인 ‘환경’에 대한 포럼을 시작하겠습니다.”


포럼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수의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바다에서 채취한 산호초의 세포를 나노분자로 쪼개어 탄산칼슘과 결합하였을 때 미세플라스틱을 자연 분해하는 현상을 발견하였고, 현재는 나노로봇과 접목하여 바다에 뿌렸을 때의 효과와 그것이 수중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운행하는 배나 인간의 도구에도 반응했을 때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였다. 그러자 다른 테이블의 사람이 그 강도를 조율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토론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첫날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집사장은 포럼에 참여한 각 사람에게 개인 사용인을 붙여주었다. 호화스러운 점심 식사 시작되었다. 파티 형식의 식사 자리는 자연스레 오전에 있던 토론의 연장선이 되었다. 그 안에서 포럼의 주체자인 리암은 각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황 박사와 신 박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황찬 박사님이시군요 옆에 계신 분은 신소은 박사님 이시구요, 사이언스 잡지에 올라온 두 분의 연구 기사를 보고, 꼭 두 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례인 줄 알면서도 초청장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그런 저의 성급한 마음에 이렇게 흔쾌히 자리해 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깊은 매너가 묻어있는 인사와 함께 건넨 리암의 손을 황찬은 또한 기쁘게 응답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의미 있는 자리에 초대를 해주셔서 저희가 감사드립니다.”

“사이언스 잡지에 올라온 황 박사님의 인터뷰 중 마지막 말씀이 저는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오~ 우리 황 박사의 어디가 그렇게 끌리셨나요?”


샴페인 몇 잔에 긴장이 풀린 신 박사는 다시 장난기 어린 말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황 박사는 그런 신박사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볍게 찔렀다.


“‘모든 연구의 끝은, 창조주의 증명으로 연결된다.’ 저도 연구를 하면서 항상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죠. 하지만 신이 배제되어야 하는 현시대의 과학에서는 껄끄러운 내용이기에, 대부분이 기피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너무나도 당차게 신에 대해 얘기하시는 황박사님의 인터뷰가 꽤나 인상적이었답니다.”


옆에서 신박사가 요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욱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창조주를 믿는 박사님께서는, 지금 하고 계신 연구의 결과가, 이 세상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계신가요?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이 세상은 지금도 여전히 악한 인간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인간들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의문이 든답니다.”

“어떤 점을 걱정하시는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우리들의 몫이겠죠.”


세 사람의 대화는 더욱 깊어져 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방식에 맞춰 시간을 보냈다. 황박사는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으로 지쳐, 곧바로 방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반면 신박사는 저택 이곳저곳을 안내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돼서야 황 박사는 방에서 나와 신 박사와 다시금 조우하였다. 신 박사를 맡은 사용인의 내색이 매우 지쳐 보였다. 황 박사는 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우면서도, 자신을 대신해 희생되어 주시는 분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하였다. 두 번째 날은 나노 기술의 전자적 반응과 화학적 반응을 접목시켜 화재 시 나오는 연기를 순간적으로 감소시키는 물질 연구와 엄기준이 만들었다는 양자컴퓨터 보호 프로그램 등 기술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고, 셋째 날에는 나노로봇으로 골의 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연구, 췌장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나노 기술 등, 인간 생명에 관한 토론이 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 박사와 신박사의 연구성과를 토론할 차례가 왔다. 강연의 대표자로는 황 박사가 단상 위로 올라가 발표를 시작하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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