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World

[SF 소설] EP.2

by 김경빈

정우는 지하 2층에 차를 주차한 뒤 엘리베이터에 올라 45층을 눌렀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려는 순간 유리얼 글라스가 울렸다. 정우는 급히 유리얼 글라스를 착용하고, 공중에 뜬 화면에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정우 씨 나 좀 도와줘... 숨어 있... 나 좀 도...”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는 말이, 끊기며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영아! 무슨 일이야?!”


정우의 대답에, 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여전히 신호가 좋지 않아 정확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우는 급하게 17층을 눌렀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속도가 줄어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와 신호가 다시 잡히길 기다렸지만,‘통화 종료’ 문구가 앞에 떠올랐다. 정우는 곧바로 재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신호 음만 늘어질 뿐 연결은 되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연결이 되지 않자, 정우는 다시 지하로 내려가 차에 올랐다. 관리자 컴퓨터의 강제 호출기능을 통해 아영에게 연락을 취할 생각이었다. 개인정보 보안이 철저한 온월드에서 회사 동의 없이 강제 호출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었지만 그런 걸 걱정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정우는 자동차의 자율주행 모드를 OFF 시켰다.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뒤 신호와 과속카메라를 무시하며 액셀을 밟아댔다. 몸에서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이 정우의 신경을 날카로우면서도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회사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아무렇게나 차를 정차해 두고 내린 뒤, 미친 듯이 달렸다. 튀어나온 돌부리에 넘어질 뻔도 했지만, 다시 중심을 잡고 뛰었다. 그때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튀어나와 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정우?”


단발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여자가 헬멧을 벗고는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였다. 정우는 아는 사이인가 싶어 여자를 자세히 봤지만 검은색 가죽 재킷과 바지를 입은 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여자는 알지 못했다. 여자는 오른손에 든 핸드폰과 정우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정우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런 여자를 잡상인 취급하듯 피해 지나가려 했다.


“지금 거기 들어간다고, 진아영 씨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


아영의 소식에 정우의 걸음은 자동으로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자 여자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우의 표정은 한순간에 일그러졌다.


“너 뭐야?

“진아영 씨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둘게. 여기서 계속 얘기하는 건 위험하니 우선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어. 설명이 부족하지는 않을 거야.”


일면식도 없는 여자의 말만 믿고 따라갈 만큼, 정우는 어리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뭔지 모르게, 확신에 찬 여자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적어도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망설이는 정우에게 여자는 더욱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강제 호출로 진아영 씨를 불러낼 생각인가 본데, 그래봤자 소용없을 거야. 오히려 불법 접근을 시도한 당신을 회사가 해고시키거나, 개인정보 침해 죄로 고소해, 경찰에 넘기겠지, 그렇게 되면 시간만 허비하게 되는 거고, 네가 그렇게 헛짓거리 하는 동안 진아영 씨를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멀어지겠지.”


여자가 하는 말에 정우는 주춤댔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더 지체했다간 뒤가 밟힐 거야, 먼저 앞장설 테니 걱정 말고 따라와.”


먼저 출발하는 여자를 보며 망설이던 정우는 다시 차에 올랐다. 여자는 서쪽방향으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강서를 지나 김포로 들어온 여자는 경사가 높은 산길로 방향을 틀었다. 여자는 인적이 드문 터널 안쪽으로 들어가 멈춰 섰다. 뒤따라 차에서 내린 정우는 습하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몸에 달라붙는 느낌을 받았다. 터널 벽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샛길로 빠지는 곳이 나왔고, 자물쇠로 잠겨있는 오래된 녹슨 철문이 끝에 있었다.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연 여자는 정우에게 들어가라고 말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노란 불빛의 조명이 켜졌다.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여자의 비밀 기지나, 무언가를 노리고 자신을 납치하려는 범죄 조직의 소굴 정도로 생각했던 공간은, 이상하리만치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쪼그려 앉을만한 의자 하나 없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해괴한 방안이 정우를 당황스럽게 했다.


“이게 뭐 하자는...”


따져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려던 정우는, 오른쪽 어깨로 가늘고 긴 물체가 근육을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정우는 정신을 잃고, 바람 빠진 풍선 마냥 쓰러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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