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 EP.3
초록색 간이침대에서 눈을 뜬 정우는 몽롱한 상태에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었다. 흐릿했던 초점이 돌아오자 주위를 살펴보았다. 나무로 된 벽, 미닫이 창문, 정리되어 있지 않은 책상, 익숙한 논문 서적들이 꽂혀있는 책장이 보였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려 서로 부대끼는 소리가,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몸을 옆으로 돌려 일어난 정우는 느껴지는 저항감에 오른쪽 팔을 쳐다보았다. 링거의 주삿바늘이 푸르스름한 혈관 안으로 꽂혀있었다. 높낮이가 달라지자, 튜브를 타고 피가 역류하는 것이 보였다. 순간 현기증이 낫다. 정우는 바늘을 뽑아내듯 빼내고, 탁자 위에 놓여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열어 날짜를 확인했다.
[2108년 11.20일 토요일 10 : 26 ]
아영에게 문제가 생긴 지 벌써 12시간이 지나 있었다. 비틀거리며 방문을 나서자 넓은 거실이 나왔다. 20평 정도 돼 보이는 공간에는, 각종 약물과 실험 도구처럼 보이는 것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고, 한쪽으로는 기계 부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정우는 현관문으로 보이는 쪽으로 걸어갔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고리 쪽으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문이 열리며 자신을 납치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바구니를 들고 있던 여자는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아직 돌아다니면 안 돼, 더 누워있어야 돼.”
너무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여자에게 열이 받은 정우는 멱살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옆으로 살짝 피하는 여자 때문에 중심을 잃고 흙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여자는 괜찮냐는 물음과 함께 정우를 일으키려 했지만 정우는 여자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건드리지 마!”
몸 안에 있는 온 드림을 제거한 지 얼마 안 돼서, 많이 어지럽고 움직이는 게 힘들 거야. 지금은 무리하면 안 돼.”
정우는 몸을 가누기 위해 일어나면서, 여자와 거리를 두었다.
“아영이는 어디 있어?”
정우의 물음에 여자는 통나무 집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듯 고개를 까딱거렸다.
“걱정하지 마. 등 뒤에서 기습하는 일은 없을 테니.”
정우를 들여보낸 뒤 현관문을 닫은 여자는 4인용 테이블을 가리키며 정우에게 앉아있으라는 말을 하고 싱크대 쪽으로 갔다. 들고 있던 바구니에서 꺼낸 잎으로 여자가 차를 끓이자 시원하면서 알싸한 향이 올라왔다.
“페퍼민트 차야, 심신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그딴 건 필요 없으니까, 내 아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나 말해.”
“온 월드 보안 책임자로 있으면서, 온 월드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해?”
여자의 동문서답에 정우는 짜증이 났다.
“나는 지금, 내 아내의 생사에 대해 묻고 있는 거야! 장난하지 말고, 똑바로 설명해!”
“그 세계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해?”
정우는 난생처음 여자를 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롭게, 페퍼민트 차를 음미하며 말하는 저 주둥이를, 쥐어박고 싶었지만 정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여자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대답할 마음이 없으면 내 일에 끼어들지 마. 아영이는 내가 찾을 테니.”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근육질의 몸을 한 민머리 남자가 들어왔다. 쌀쌀한 날씨에도 흰 민소매티를 입은 남자는 돌돌 말린 케이블 타이를 오른쪽 어깨로 둘러메고 왼쪽으로는 공구함으로 보이는 것을 들고 있었다.
“일어났군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정우를 바라보던 남자의 나이는 50대처럼 보였다. 남자는 들고 있던 것 들을 한쪽으로 내려놓고,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테이블 쪽으로 다가왔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세정이가 또 설명을 제대로 못했나 보군요. 미안합니다. 애는 착한데, 숨어 살다 보니, 말주변이 조금 부족한 편이에요. 반갑습니다. 저는 황찬이라고 합니다. 황 박사라고도 불리죠. 그리고 여기 이 정우 씨를 모셔온 아이의 이름은 신세정이라고 합니다.”
예의 있는 말투의 황 박사는 정우에게 오른손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그러나 경계심 가득한 눈빛의 망부석 앞에서, 머쓱한 듯 손을 거둬드렸다. 황 박사가 무언가를 부탁하자 세정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자리에 황 박사가 앉았다.
“아내분은 무사합니다.
아내의 소식에 정우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아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정우 씨를 이곳으로 모셔온 겁니다.”
정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황 박사를 바라보고 있을 때, 세정이 사진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낯익은 사진 속 남자는 선글라스를 쓴 채 중동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어느 카페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김주원 전 대통령입니다.”
정우는 사진을 집어 들어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선글라스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김주원 전 대통령과 비슷해 보였다.
“정치적 이미지 때문에, 외관을 늙게 바꾼 겁니까?”
“아닙니다.”
“그럼 본인이 아닌 거군요. 온 월드에서는, 시간의 흐름 자체가 없습니다. 늙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보여준 사람의 모습은, 첫 온월드 입주자였던 김주원 전 대통령이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어 보이는군요."
“맞습니다. 그것도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네요, 하지만 이 사진은 3개월 전 현실 아랍에메레이트에서 찍힌 사진입니다.”
황 박사의 말에 정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입니까? 최근 뉴스에서도 김주원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온 월드 주민들의 범죄 처벌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였죠. 그런 사람이 어떻게 현실에 존재한다는 겁니까?”
“그 사람은 김주원 전 대통령이 아니니까요. 정확히 얘기하자면 ‘온 월드’ 안에 들어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짜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