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상에서도 사물을 사진 찍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아침에 좋은 기분으로 거품이 한가득 앉은 카푸치노를 마실 때도 종종 사진을 찍어둔다.
그런데 핸드폰을 잘 관리를 안 하는 편이라, 심심찮게 이런 메시지가 뜬다.
'카메라 렌즈가 깨끗하면, 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핸드폰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아서 좀 찍지! 하는 귀찮은 생각이 애꿎은 핸드폰을 향한다. 이럴 때마다 대충 옷소매나 허벅지에 슥슥 닦아버리기도 하지만,
카메라 렌즈의 상태와 사진의 퀄리티는 상당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마음의 창을 닦아내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이 재창조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의 감정, 배경이 된 장소에서의 마음 상태, 기억들이 잘 버무려져서 다시 캠버스에 수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은 그것이 풍경화라고 할지라도 때로는 추상화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티스의 그림에는 마티스 만의 마음의 창으로 보인 세상이,
고흐의 그림에는 고흐만의 복잡하지만 강렬하고 따뜻했던 그 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그리고 내 그림에도 내가 느낀 그날의 감정과 기억이 담긴 내 마음의 색감이 입혀진다.
이 점을 깨닫다 보니 내 마음의 창이 얼룩지거나 더럽혀져 있다면 그때 표현될 내 그림은 마냥 산뜻하지 않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히도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은 그림 속 색감 어딘가에 따뜻한 감정이 입혀져 있다고 해주었다.
생각은 때로 쉽게 말로 전달돼 다른 사람의 기분에도 영향을 준다.
마치 코로나가 무섭게 전염되는 것처럼, 좋지 않은 생각도 쉽게 말로 전달이 돼 다른 사람의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의기 충만하고 정직한 생각은 풀에 지쳐 있는 친구의 어깨를 다독이기도 하고, 다시 한번 딛고 일어나 볼 만한 도전을 주기도 한다.
나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 사람인가.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내 마음과 그 마음을 비추는 내 맘의 창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날이 있다. 날씨가 꿀꿀하고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각자의 그날이 있다.
그날 나의 감정을 내팽겨두지 말자. 그럴 때라도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으로, 혹은 한 잔의 커피로 스스로를 챙겨주다 보면 조만간 미약하고 희미하지만 분명한 낱실 같은 에너지가, 심장으로부터 입꼬리까지 전달될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하루는 비록 즐겁지 않더라도 너무나 소중하다. 어떻게 매일매일이 즐거울 수 있겠는가.
다소 풀죽거나 짜증이 솓구치는 날에도 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보자. 사실 그럴때 드는 생각은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의 건강한 내면의 목소리보다는 외부에서 오는 불필요한 생각들로 비롯되기 마련이다. 그것들에 내 마음의 창을 내버려두지 말자.